윤여정과 돌리 파튼

배우 윤여정(사진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배우 윤여정(사진제공=후크엔터테인먼트)

영화 ‘미나리’의 오스카 상 수상에서 사람들이 제일 놀란 것은 윤여정의 나이 74세였다. 70세 넘어까지 배우를 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나이에 세계적인 영화상을 수상했으니 더욱 더 놀라운 일이었다. 예전엔 여배우라면 20대부터 시작해 기껏해야 40대 초반까지 활동하는 직업이었다. 드라마 <전원일기>에 출연할 노년의 배우가 없어서 김수미가 32세 때부터 할머니 역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젊을 때 예뻤던 얼굴이 늙어서 추해진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여생을 은둔으로 보내는 여배우도 흔했다. 금발에 푸른 눈, 얼음 같은 신비한 미모의 전설적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그랬다. 고작 36세에 배우를 접은 후 반세기 가까이 일체의 공식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은둔하며 살다 죽었다. 늙은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지 않고 그냥 전설로 남아 있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1990년에 그녀의 부음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아니, 이 전설의 여배우가 아직도 살아 있었어?”라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생물학적으로는 84세에 죽었지만 실제로는 36세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Dolly Parton Medium Curls with Bangs.(출처=stylebistro)
Dolly Parton Medium Curls with Bangs.(출처=stylebistro)

지난 1년 동안 미국에서는 한 70대 여배우가 소셜 미디어에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며 선풍을 일으켰다. 영화 <나인 투 파이브>에 출연했던 배우이고, 그레미상을 아홉 번이나 받은 컨트리송 가수이며, 휘트니 휴스턴이 불렀던 I will always love you를 작곡한 돌리 파튼(1946년생)이 그 주인공이다.

74세 생일이었던 작년(2020년) 1월, 그녀는 각기 다른 4개의 소셜 미디어에 각기 다른 복장의 사진을 올렸다. 우선 링크드인(직업 네트워크)에는 회색 수츠에 흰 스카프를 리본처럼 묶은 직장여성 타입의 사진을 올렸다. 페이스북에는 사슴 자수의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은 편안한 모습을 올렸고, 인스타그램에는 나팔바지와 상의를 블루진으로 통일한 캐주얼 룩을 올렸다. 그리고 데이트 상대 찾기 네트워크인 틴더에는 토끼 귀 머리장식에 수영복 차림을 한 옛날 플레이보이 클럽 버니(bunny) 복장을 올렸다.

다른 3개의 사진도 놀랍지만 특히 틴더에 올린, 가슴과 두 다리가 거의 다 드러난 버니 복장의 육감적인 몸매는 경이로웠다. 과거 같으면 늙은 외모를 감추기 바쁜 흘러간 배우에 불과했을 74세의 나이에 반(半) 나체로 전 세계인, 그것도 젊은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기다렸다는 듯 인스타그램 가입자 수십만 명이 #돌리파튼챌린지 해시태그를 달고 저마다 자신의 네 가지 모습을 올렸다. 소위 ‘돌리 파튼 챌린지’ 선풍이었다.

‘챌린지’란 소셜 미디어에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얼굴이건, 책이건)을 자기 식으로 변형하여 올리는 광범위한 따라하기 게임이다. 그렇게 올리는 맥락 없는 독립 사진을 한국 젊은이들은 ‘짤’이라 말하고 영어로는 밈(meme)이라고 한다.

시니어 세대의 글로벌 약진

시니어의 약진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에서도 그래니 시크(granny chic)니, 그랜드밀레니얼(grandmillennial)이니 하는 신조어들이 생겨났다. 지난 대선에서 공화, 민주 양당의 대선 후보가 모두 70대였고 당선자인 조 바이든은 80세에 육박했다. 연예계의 시니어 파워도 놀랍다. 2019년 10월말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와 람보 : 라스트 워>에서 여주인공 린다 해밀턴은 63세, 남 주인공 아놀드슈왈제네거는 73세였다.

한국의 트로트 열풍도 시니어 약진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임영웅을 비롯해 영탁, 장민호, 이찬원, 김희재, 김호중 등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하였는데, 이들을 향한 팬덤의 중심에 시니어 세대가 있다. 그들은 이때까지 수줍게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즐기던 트로트를 이제는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세대 역주행을 하면서 젊은이를 거쳐 어린 세대까지 트로트의 인기 흐름이 내려가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식품에서는, 인절미, 흑임자, 쑥 등 전통적으로 시니어의 입맛이었던 메뉴가 대세로 떠올랐다. 2020년 새로 출시한 흑임자 케이크는 13만개, 쑥, 흑임자 라테는 20만 잔이 팔렸다고 한다. 할머니와 밀레니얼을 합친 할매니얼 입맛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시니어들은 젊은이의 전유물인 패션모델에까지 도전했다. 2019년 현대백화점이 주최한 ‘시니어 패셔니스타 선발대회’에 전국에서 1,5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선발 과정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는데, 시청자 온라인 투표에 10만 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최첨단의 가상 화폐 투자에도 눈을 돌린다.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을 방문하는 주 고객이 5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20~30대는 스마트폰으로 코인을 사고팔아 굳이 거래소에 나올 필요가 없지만, 노년층은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거래소를 찾기 때문에 이렇게 방문자 수가 많은 것이다. 또 다른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의 노년층 이용자도 작년 10월 7만6765명에서, 올 4월엔 70만1018명으로 6개월 사이에 10배로 올랐다.

투자자들 중에는 건축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사람, 의류 수선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투자금으로 들고 온 사람 등 평소에 금융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니어는 결코 매력적인 기호가 아니다

몇 살부터 시니어라고 불러야 할까? 2017년부터 시행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고령자고용법)’ 제19조 제1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법정 정년 연령은 만 60세이다. 다시 말하면 금년 현재 1961년생 이전의 출생자들은 모두 시니어 세대다. 그런데 1955년부터 1963년 사이가 베이비붐 세대여서, 시니어 세대의 인구수는 다른 세대보다 훨씬 많다. 2020년에 시니어 인구수는 약 810만 명으로, 국민 100명 중 약 16명이 시니어로 추산되었다. 신참 시니어들은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골프, 테니스, 스키 등의 레저를 즐기거나 명품 옷을 즐겨 입는 등 현대적 소비문화에도 익숙한 세대다.

새로운 시니어는 물론이지만 아무리 나이 많은 시니어에게도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저항심리가 있다. 자신의 실제 연령보다 젊게 지각하는 집단이 자신을 실제 연령과 같게 지각하거나 혹은 실제 연령보다 많게 지각하는 집단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상품을 구매한다는 연구 논문도 있다. 활발하게 소비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스스로 시니어라는 것을 부정해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시니어’는 시니어층으로부터 외면 받는 기호(記號)이며, 시니어들이 되고 싶지 않은 세대의 이름이다.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젊음’이다.

유쾌한 시니어

그런 점에서 윤여정의 경우는 매우 유의미한 이정표로 여겨진다. 이혼이 큰 장애로 인식되던 시절에 이혼하여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냉혹한 세상에 던져졌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채 꿋꿋하게 배우라는 직업을 지켰으며, 마침내 70대의 나이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나이 듦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노인층 특유의 권위의식이나 경직성도 없으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유쾌한 노년이다. 이 여배우를 보며 동년배의 노년층은 고마움을 느끼고, 젊은이들은 희망과 위로를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하기는 당당하게 자기 일 하며 사는 시니어가 동년배의 노년층에게만 희망이 되라는 법은 없다. 아무리 젊은이들이라도 자신의 사회적 인생이 이제 10년 또는 20년밖에 안 남았구나, 라고 초조해 하기보다는, 인생은 유장(悠長)하므로 정년퇴직 후에도 계속 내 일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때 느긋함과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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