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양도세와 보유세 부담이 대폭 커지는 가운데 다주택자 상당수가 '버티기 모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달 말 잔금을 완납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매물을 내놓고도 호가는 시세 수준에서 내리지 않아 '거래 절벽'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다주택자들의 절세 매물 증가로 올해 2∼4월 증가세를 보였던 아파트 매물은 이달 들어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9일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전국의 아파트 매물은 10일 전보다 줄었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일제히 감소했다.

제주(-7.7%)에서 감소 폭이 가장 컸으며 전북(-5.9%), 경북(-4.6%), 인천(-3.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서울(-1.2%)과 경기(-1.7%)에서도 줄었다.

유거상 아실 공동대표는 "6월 1일 보유세 기산일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며 "현실적으로 5월 말까지 잔금을 치르는 계약이 성사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의 아파트 매물은 올해 초 4만 건을 밑돌다가 지난 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4월 들어 4만8천건을 넘어섰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재산세 등의 보유세 기산일인 6월 1일 이전에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다주택자들이 늘면서 매물이 쌓인 것이다.

6월 1일 이후에는 조정대상지역에서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율이 현재보다 10%포인트 올라가는 것도 매물 증가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달 들어 서울 아파트 매물은 4만6천∼4만7천건대로 다시 줄어들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시장에 나왔던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들어갈 때가 됐다"며 "6월부터 다주택자의 절세 매물이 아예 자취를 감추고, 하반기에 대선 이슈가 부각되면서 개발 호재 발표와 규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하면 아파트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중개업계에서는 다주택자들이 대부분 버티기 모드로 전환해 거래 절벽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남구 개포동에서 영업하는 A공인 중개업소 대표는 "5월 말 잔금 완납 조건을 내건 매물도 많지 않다"며 "매도 의향이 있는 다주택자도 시세 수준의 배짱 호가를 고수하고, 매수 의향 손님들도 초급매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개포동 일대는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B공인 중개업소는 "보유세를 버텨보겠다는 다주택자들이 많아졌다"며 "5월 말 잔금 조건으로 내놓은 물건도 전화하면 갑자기 팔지 않겠다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지난해 12월 7천527건에서 올해 1월 5천776건, 2월 3천865건, 3월 3천758건으로 3개월 연속으로 감소했다.

지난달은 아직 신고 기한(30일)이 남아 있긴 하지만, 3월보다 더욱 줄어든 2천198건을 기록 중이다.

송파구 잠실동의 C중개업소 대표는 "다주택자 매물은 현재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5월 말까지 살 테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버티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잠실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고, 최근 거래도 더욱 줄어들면서 이 지역에서 폐·휴업하는 부동산도 많다"고 소개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D공인 대표는 "거래절벽이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매도 호가는 기존 최고가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급매물 출회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압구정동과 같은 재건축 추진 지역은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매물 감소가 확연하다.

이따금 성사되는 계약에서는 신고가 경신도 이어지고 있다.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전용면적 76.5㎡는 이달 들어 25억2천만원에 매매 계약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3일 같은 면적의 종전 최고가(24억6천300만원·10층)를 경신한 역대 최고가다.

이 단지에 있는 E공인의 중개사는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고 매물이 죄다 들어갔다"며 "매물이 부족해지면서 가격도 처음으로 25억원을 넘겼다"고 밝혔다.

이달 조합설립 인가를 목전에 둔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도 매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최근 역대 최고가인 7억5천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이 단지 근처에서 영업하는 E공인 중개업체 사장은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은 뒤에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될 예정이라 며칠 뒤에 잔금을 치르는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됐다"며 "다주택자는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말고 버티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개포동의 A공인 대표는 "신축과 재건축 아파트로 시장이 양분되는 양상"이라며 "대부분 신축 아파트로 변모한 개포동 같은 지역보다는 압구정동이나 반포동 같은 재건축 추진 아파트가 많은 지역의 매물·거래 감소가 더욱 뚜렷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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