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칼럼] 우리민족끼리?
[김석우 칼럼] 우리민족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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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체제 이완 극복 위해 배타적 민족주의 신화 만들어
상종 못할 사상의 차이와 동포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 모른 척하는 것이 '우리민족끼리'인가?
'다름' 인정하는 개방사회를 만드는 것은 깨어난 자유 시민들의 책임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손 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회장은 일본의 최고 부자가 되었다. 소수자(minority)에 대한 차별이 심한 일본 사회에서 조센징 3세로 태어나 고교를 중퇴하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에서 사업을 일으켜 세계 굴지의 기업가가 되었다.

그는 1990년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였다. 사업을 잘하려는 방편으로 국적을 바꾼 것이다. 일본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으로는 불편한 게 많기 때문이다.

손 마사요시는 일본 국적 취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손’이라는 성(姓)을 지킴으로서 일본인이 아닌 한인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지킨 것이다. 바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애초 일본 법무성은 귀화 심사 과정에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지 않고 귀화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손’을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일본 국적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뿌리를 지우고 일본인으로 동화(同化)하라는 의미다.

일본 법무성이 귀화 허가를 질질 끌자, 손 마사요시는 꾀를 썼다. 미국에서 만나서 결혼한 일본 국적 부인의 협조를 얻어 먼저 남편인 ‘손’씨 성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일본인의 성씨 중에 ‘손’씨 성을 창설하고, 부인은 최초의 일본인 손씨가 되었다. 그리고선 손 마사요시도 법무성에 손씨 성으로 귀화 허가를 신청해서 받아냈다.

손 마사요시의 일본 귀화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에서 민족과 국적이 어떻게 얽혀 있고, 그 속에서 개인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지를 짚어보기 위해서다.

인류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겨우 3백 년도 지나지 않았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전쟁 이후 유럽에서의 민족국가들이 탄생하여 국제사회의 기초가 되었다. 인종, 언어, 종교, 문화를 함께하는 집단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하였고 그 토대 위에서 국가를 세운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을 의미하는 ‘국적’과 ‘민족’이 일치하는 사회다.

그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전후 처리의 결과 국경선이 수없이 바뀌었다. 국경선이 바뀌면 모국으로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은 새 국가의 소수민족으로 남게 된다. 그 소수민족 문제가 전후 처리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소수민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인권신장으로 발전하였다.

민족과 국적의 일치 현상이 깨어지고, 불일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알자스 로렌지방이 좋은 예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국적은 바뀌어도 개인의 권리는 보장한다. 소수자의 민족적 정체성을 존중한다. 이웃 나라로 생활근거지가 바뀌면 그곳의 국적을 어렵지 않게 취득한다. 직업이나 생활의 편익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까지 바꾸라고 강요받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보장해준다. 자신의 문화를 누리고, 종교행사도 자유로이 행하고,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1966년 유엔규약 제27조가 이를 잘 집약했다.

동아시아에는 일본이 앞장서서 유럽의 근대화를 뒤따랐고, 민족주의도 함께 도입하였다. 근대 일본국 건설의 에너지로 민족적 우월성을 이용했다. ‘야마토(大和)’ 민족이라는 신화(神話)를 만들어 일본 제국건설의 원동력으로 삼고 대외침략과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과 억압까지 정당화하였다.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고 포로학대, 군대위안부와 같은 심각한 전쟁범죄도 일으켰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기본적인 의식은 약했다.

한반도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이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로 폭발하였다. 해방 후 국가건설에도 추진력이 되었다. 아편전쟁 이후 쇠락한 중국에서도 과거의 영광을 찾기 위하여 선구적 지식인들이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포함하는 중화민족이라는 애국적 개념을 발전시켰다.

동북아 3국에서 민족주의의 열기는 뜨거웠고, 민족은 국민과 같아야 한다는 사고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주의적 사고가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제2차대전의 패배로 일본 사회는 민주화되었다. 그런데도 차별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야마토 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야마토 민족이 아닌 소수자(minority)가 존재하면 불편해한다. 그래서 외국인이 귀화하려면 자신의 뿌리를 완전하게 버리고 일본 사회에 동화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차이가 나는 소수자로 남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소수자가 재일 한인이다. 동화하지 않는 소수자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차별하는 것이다. 즉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야마토 민족이라는 관념이 국가의식과 연계되어 국적을 민족과 동일시하였다. 이러한 민족과 국적의 연계는 한반도와 중국에도 전파되었다. 따라서 국가라는 권위 아래서 개인의 존재나 권리가 왜소해지는 구조가 되었다.

창당 100주년이 된 중국 공산당은 개혁과 개방, 그리고 국민소득의 증가로 일당독재체제가 이완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는 방편으로 중국의 전통사상을 끌어들이려 한다. 또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중화민족주의로 결속을 강화하려 한다. 다시금 배타적 민족주의의 신화를 만드는 것이고, 그 기초는 국가주의라 할 수 있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여 미국과의 패권을 다투면서 ‘중국몽’,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100년의 꿈을 목표로 추구하고 있다. 시진핑 장기집권체제를 굳히면서 주변국 관계에서 조공체제를 복원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에 대응하는 일본도 보편적 가치의 존중과 다양성을 포용하기보다는 축소 지향적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려고 한다. 중국과 똑같이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이웃 한국과의 우호 관계를 회복하고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장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

더욱 시대착오적인 일은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일어나고 있다. 난데없이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에 맞추어 배타적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서로 상종하지 못할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할진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같은 동포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 과연 같은 민족이 할 짓인가? 폐쇄된 우리 안에 갇혀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객관적 사실과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막는 것이 동포애인가? 대북전단금지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으로 전 세계의 웃음꺼리가 되는 것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할 짓인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위에 건설한 대한민국이 국제화를 이루어 동아시아 3국 중에서는 앞선 점이 많다. 공산주의자들의 모순된 선전 선동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력 있는 개방사회를 만드는 것은 깨어난 자유 시민들의 책임이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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