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지난 4월 2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1년 3개월 재임 기간 동안 코로나19 방역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코로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대권 행보를 위해 직을 내려놓음으로써, 코로나 전쟁 중 ‘탈영한 사령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의 백신 수급정책이 차질을 빚으면서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 전 총리가 미국이 백신 수출 금지를 취할 가능성에 대해 ‘깡패짓’이라고 규정, 외교의 전문성을 의심받고 있다. 스푸트니크V 도입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 지사를 비판한 점도 구설에 올랐다. 무엇보다도 백신 물량이 충분하다는 발언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백신이 과잉 공급될 경우 책임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재임기간 중 백신 사령탑으로서 책임 회피를 하려 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백신은 미 국방물자생산법 적용되는 전략물자...‘깡패짓’ 발언은 미국 법체계 비난 행위

정 전총리는 퇴임 1주일째인 지난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백신과 대권가도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모더나 백신을 미국이 제 때 풀 것 같지 않다”는 진행자의 발언에 “미국이 금수조치를 취한다면, 그걸 가로채는 거나 마찬가지다”며 “그건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규정했다.

진행자가 “미국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백신을) 주더라도 쿼드 동맹국부터 주겠다고 한다”라고 지적하자 “터무니없는 걱정을 만들어낼 일이 아니다. 미국이 어떻게 그런 깡패짓을 할 수 있겠냐”라고 다시 ‘깡패짓’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계약금까지 다 준 걸 미국이 수출을 못하게 하고 중간에 가로채면 우리가 그냥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주일 전까지 방역 사령탑을 맡았던 전 총리로서 과연 적절한 발언이었는지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미국은 백신에 대해 원료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백신을 전략물자로 판단하고 수출을 금지하는 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른바 국방물자생산법이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이 그 법에 근거해 금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냉혹한 외교 현실 눈감은 채 미국을 비난, 백신난 해소에 도움 안돼

야권의 핵심 관계자는 “백신 공급과 방역에 대한 책임자로서 지금 현재 부족한 백신에 대해 어떤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이 미국을 비난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외교의 기본도 모르면서 저런 상태로 백신 외교를 했다는 것이 놀랍다”고 지적했다.

 

정세균 전 축무총리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전 축무총리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본인의 정치적 행보 때문에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사임한 것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그런데 냉혹한 현실과 국제정세 앞에서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얘기를 함으로써, 오히려 국민 불안만 가중시킨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백신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자국내 법에 따라 금수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서 비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백신을 구해와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는 실정이다.

정부의 백신수급 문제점 꼬집은 이재명도 공개 저격

정 전 총리는 ‘스푸트니크V(SputnikV) 백신'과 관련한 발언에 대해서도 비난을 받고 있다. 같은 날 진행된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자가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도 자체적으로라도 스푸트니크V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 백신에 대해 청와대에 공개검증을 요청했다”고 질문을 했다. 정 전 총리는 “우선 검증을 청와대에 요청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건 식약처가 하는 거다. 그리고 이 지사도 중대본의 중요한 일원이어서 중대본에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말로, 이 지사의 대권행보를 견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전 총리는 만약의 경우를 위해 이미 복지부에서 지난해부터 스푸트니크V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백신의 구매와 관련해서는 전체적으로 식약처나 질병청이나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돼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중앙정부가 할 일이 있고, 지자체가 할 일이 따로 있다, 방역과 관련해서 백신을 구해오는 건 중앙정부의 몫이고, 접종을 하는 것은 지자체가 중심이 돼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이 지사가 나서서 스푸트니크V 도입을 검토하고 건의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백신 수급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스푸트니크V 도입을 제안해,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이 지사가 이번에 스푸트니크V 이야기를 해서 검증을 시작하게 되는 건 아니다’라는 것이 정 전 총리의 주장이다.

백신 수급 불안의 구원수로 등장한 스푸트니크V가 도입될 경우, 그 공을 이 지사가 혼자 독차지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발언으로 평가받는다.

“백신수급에 문제없다”는 주장 되풀이하는 정세균, 공감능력 제로 비판받아

그러면서 정 전 총리는 ‘백신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비난을 받았다. 정 전 총리는 “우리가 이미 계약한 물량이 7900만 명 분이다. 인구의 70%인 3500만 명에게 접종을 하면 집단면역이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러면 현재 계약한 물량 자체가 최소 필요량의 2배이다”라면서 “거기에다가 한참 전부터 정부는 미국 제약회사하고 추가 물량을 논의하고 있다. 그 추가 물량은 내년에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7900만 명분은 사실은 내년까지 쓸 수 있는 물량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또 계약을 더하면 그건 어떻게, 그 물량이 만약에 남으면 누가 책임지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모더나와의 계약이 무산될 위기에서 백신 수급 상황을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심정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야권의 핵심 관계자는 “정 전 총리의 발언은 한마디로 공감능력이 제로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백신 구매에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 전 총리는 지난 16일 사퇴를 발표했다. 국회 대정부질문을 앞둔 시점에서 정 전 총리의 사퇴는 무책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 마지막날인 21일,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금은 코로나19와 전쟁 중 아니냐"며 "전쟁 중에 총 사령관이 전장을 떠나는 건 군대용어로 소위 `탈영`아니냐"고 지적하면서 정 전 총리의 사퇴를 비판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이에 대해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코로나와의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령관이 떠났다는 점에서, 정 전 총리의 책임감 공방은 대권가도에 올라선 그를 계속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