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는 이처럼 '안티페미니즘'이라는 낙인을 찍겠다는 위협을 통해 서울시에게 지원과 자리를 요구하는 중이다. 우파는 여기에 수세적으로 응할 필요가 없다. 박원순 9년 동안 서울시로부터 여성단체와 여성계로 흘러간 지원금 내역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미심쩍은 부분은 철저히 파헤쳐야한다. 박원순 시절 서울시와 시민단체 간에 형성된 카르텔에서 여성계만이 예외일 리 없다. 여성계는 자기 손에 쥔 돈과 자리를 절대로 놓지 않기 위해, 지금 '안티페미니즘'이니 '혐오의 정치'이니 하는 말로 호들갑을 떠는 중이다. 여성계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이념적 알리바이 만들기, 이것이 바로 지금 진행 중인 '안티페미니즘' 소란의 본질이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이대남 지지율과 페미니즘은 무관한가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유권자 층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55.3%,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34.1%의 지지율을 보였다. 눈여겨 볼 점은 성별에 따른 지지율 격차가 컸다는 사실이다. 오세훈 후보는 20대 남성으로부터 72.5%, 여성으로부터 40.9% 지지를 받았다. 무려 30% 이상의 차이다. 

'이대남'(20대 남자) 몰표의 성격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국민의힘 이준석은 민주당이 여성주의에 '올인'한 결과, 그 반작용으로 남성이 국민의힘을 지지했다고 분석했다. 우파들은 대체로 이 입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반면 여성계와 좌파진영은 이와 같은 분석이 젠더갈등을 유발한다면서, 논의 자체를 '안티페미니즘'이자 '혐오의 정치'로 규정한다.

보궐선거 이후 '이대남'과 페미니즘 간의 상관관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한 기사는 한겨레21의 〈바보야, 문제는 '이남자'가 아니야〉(2021.4.16)와 뉴스톱의 〈페미니즘 때문에 민주당이 졌다고?〉2021.4.21) 정도를 뽑을 수 있다.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중요한 사회현안을 변수로 지지율 변동과 그 상관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두 기사의 논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 대통령에 대한 '이대남'의 지지율은 원래 '이대녀'보다 낮았다. 둘째, '이대남'은 '공정'이라는  가치에 민감하기 때문에 관련 악재가 터질 때마다 지지율이 하락했다. 셋째, '이대남'의 지지율 변동에 있어서 '젠더갈등'의 영향은 적거나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이제 두 기사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접근해보자. 우선 문재인 정부가 공정이라는 가치를 져버렸고, 이것이 '이대남'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기사에 나온 것처럼 '이대남'의 지지율을 빠르게, '이대녀'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하락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에 대한 '이대남'의 지지율이 가장 급락한 시기는 2018년 하반기였다(주간동아, 〈文 정부 지지율에서 20, 30대 남녀 격차가 심한 이유〉, 2019.10.12). 여론조사 업체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대남' 지지율은 2018년 6월 81%에서 8월 58%까지 폭락했다. 이후 같은해 10월 63%로 상승했다가 11월 51%로 하락했다. 두 시기 각각 '혜화동 페미니스트 시위'와 '이수역 폭행 사건'이 있었다(중앙일보, 〈"文, 여자만 챙긴다" '이영자'보다 심각한 ‘이남자’의 변심〉, 2018.11.23). 문정부가 공정을 내다버린 상징적 사건인 조국 사태가 일어나기 1년 전이다. 

주간동아 2019년 10월12일 기사 〈文 정부 지지율에서 20, 30대 남녀 격차가 심한 이유〉에 첨부된 문재인 정부 지지율 추이 그래프.(출처=주간동아)
주간동아 2019년 10월12일 기사 〈文 정부 지지율에서 20, 30대 남녀 격차가 심한 이유〉에 첨부된 문재인 정부 지지율 추이 그래프.(출처=주간동아)
중앙일보 2018년 11월23일 기사 〈"文, 여자만 챙긴다" '이영자'보다 심각한 ‘이남자’의 변심〉에 첨부된 문재인 정부 지지율 추이 그래프.(출처=중앙일보)
중앙일보 2018년 11월23일 기사 〈"文, 여자만 챙긴다" '이영자'보다 심각한 ‘이남자’의 변심〉에 첨부된 문재인 정부 지지율 추이 그래프.(출처=중앙일보)

앞서 언급한 두 기사는 이 문제를 적당히 퉁쳐버리거나 누락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다면, '이대남' 지지율과 '젠더갈등'의 상관관계가 미미하다고 결론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2018년 하반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이대남'과 '이대녀'의 지지도는 15~30% 격차를 유지해왔다. 

20대 남녀 사이에 '젠더갈등'은 엄연히 존재한다. 19세에서 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은 74.6%, 남성은 51.7%가 자신이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 차이는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커진다. 그리고 성별갈등이 증폭되는 공간으로 온라인을 주목했다(뉴시스, 〈청년들 성별갈등 어쩌나... 여 75% 여성차별, 남 51% 남성차별〉, 2021.3.11). 또한 남녀 모두 직장과 학교에서 성차별을 느끼고 있으며, '젠더갈등'이 심하다는 입장(63%)이 그렇지 않다(31%) 보다 2배 이상 높다(한국일보, 〈우리 사회는 젠더 이슈에 얼마나 민감한가〉, 2021.2.25). 

즉, '젠더갈등'은 학교·직장·온라인 등 일상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굵직한 사건에 따른 지지율 변동 분석에만 의존할 경우 이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젠더갈등'과 '이대남'의 상관관계는 오세훈을 지지한 '이대남'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선호(選好)와 그것이 투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해보면 간단하게 규명할 수 있는 문제다. 관련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여성계가 ‘안티페미니즘’ 타령을 하는 이유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의 2018년 12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대남' 76%가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좌파와 여성계는 이런 결과를 보면 혀를 찰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오늘날 악무한(惡無限)의 '젠더갈등'을 만들어온 진원지임을 유념해야한다. 

이대남은 왜 페미니즘을 싫어할까. 첫째, 젊은 남성에게 여성은 양보와 배려가 아닌 경쟁의 대상이다. 현재 성평등이란 명분으로 시행되는 여성우대 정책은 '역차별'로 독해(讀解)될 수 있다. 진학·취업 등 각종 영역에서 경쟁이 심해질수록 '작은 배려'에 대한 반발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가 "공부해라", "외워라"하는 식의 꼰대식 태도로 이들을 윽박질러봐야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그럴 때마다 과거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린 '늙은 남성'이 심적(心的) 채무를 후속세대에게 넘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구(舊)세대 남성이가 떠드는 페미니즘이란, 대부분의 경우, 가부장의 잔반(殘飯)을 떠먹여주는, '오빠가 키워준 페미니즘'에 가깝다.

 둘째,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될 때 자주 보이는 우악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개인의 죄악을 남성 일반의 죄악으로 돌린다. 걸핏하면 일어나는 '해시태그' 운동이나, 유명 페미니스트의 기고문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한다. 심지어 어떤 페미니스트는 20대 남성은 연애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훈계하기도 했다−그는 이번 선거에서 박영선을 지지했다.

이러한 태도는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원의 교육영상은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시민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의식을 주입하고, 죄인인지 아닌지를 날마다 판단하여 시민권을 부여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비판하면 조롱받거나 소위 '찐따' 취급을 한다.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페미니즘을 주도한 여성계의 위선적 행태다. 정의기억연대 사태, 박원순·오거돈 성범죄 사건에서 보여준 여성계 인사들의 기회주의적 처신은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좌파진영 시민운동은 썩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계는 수위(首位)를 다툰다. 잡범에게나 어울린 죄목을 달고 있는 윤미향을 정리하기는커녕 비호하고 있는 수준이 여성운동의 현주소다. 

이토록 부패한 여성계가 자기 분수도 잊은 채 도덕적으로 군림하며 여성인권을 떠들고 남성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했다. 죄인이 일반인을 예비범죄자 취급을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와 같은 행태는 여성계에 대한 비토정서를 강화시키고, 나아가 그들이 외치는 페미니즘이 얼마나 같잖은 당파투쟁의 잔기술인지 스스로 폭로할 뿐이다.

'이대남'의 몰표 속에는 분명히 '젠더갈등'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계는 젠더갈등을 선거 분석 요인에서 이를 소거하고자 한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포괄적 성교육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등 페미니즘 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8년 2월 27일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초ㆍ중ㆍ고 등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발표 및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등 페미니즘 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8년 2월 27일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초ㆍ중ㆍ고 등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발표 및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몇 년 동안 여성계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2030세대 여성의 높은 지지를 유지·확장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한 징표로서 각종 여성우대정책, 여성단체 지원, 여성단체 출신의 정치적 기회보장 등을 요구했다. 즉, 여성계는 자신에 대한 지원이 페미니즘의 실천이며, 그 실천을 통해 여성의 지지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는 달랐다. 우선 보궐선거의 원인이 박원순과 오거돈의 성추행에 있었다. 여성계는 도저히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국민의힘은 선거 막판에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도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라고 주장할 수 없다. 실제 여성계가 페미니즘의 몫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득표율 1.68%, 20대 여성에 한정하자면 15.1% 뿐이다. 

결국 여성계는 여성 유권자를 대표하지도 못했고, 그들이 주창한 페미니즘의 위력은 8만 여표에 불과한 '초라한 표(票)다발'이 전부였다. 게다가 페미니즘이 '이대남' 이탈의 요인이라는 혐의마저 받고 있다. 일부 여성계 인사들은 민주당이 여성주의에 '올인'한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원칙에 충실하고자했다면, 민주당 후보의 출마를 막았어야 했다. 그것이 여성주의다운 '올인'이다. 여성계는 민주당 낙선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해 봤나? 고작해야 자신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읍소(泣訴·눈물로 호소함)하는 수준 아니었나.

지금 여성계가 할 일은 '자아비판'이다. 남녀를 갈라치기 해서 '젠더갈등'을 유발한 책임에서 여성계는 자유롭지 않다. 여성계는 갈등을 유발한 대가로 각종 지원과 자리를 보장받았다. 심지어 여성단체 비위와 민주당의 성추행 사건 앞에서도 기회주의적 작태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대해 '안티페미니즘'을 운운(云云)하는 것은, 과거의 운동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결코 변하지 않겠다"는 고집, 이것이 '안티페미니즘' 타령의 이면(裏面)이다. 

앞으로 우파 정당이 여성표를 잡겠다는 명분으로 섣부르게 여성계의 요구들을 쉽게 수용해서는 안 된다. 모든 여성정책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떤 정책이 저들의 주머니 채우기에 이용될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여성계가 페미니즘을 외치는 본질적 목적은 '보급 투쟁'과 '조직 보위'이며, 그 행태 또한 지극히 당파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여성계는 우파정당을 계속 압박할 것이다. 보궐선거 바로 다음날인 지난 8일 여성단체는 서울특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빙자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향해 "서울시정(市政)에 성(性)평등한 삶을 위한 모든 정책·제도·지침·예산·실천을 요구한다"고 외쳤다. 어떤 여성 연구자는 "10년간 발전한 서울시 여성 정책과 '젠더 거버넌스'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여성신문, 〈“오세훈 선택한 20대 남성,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아니다”〉, 2021.4.9). 박원순의 '거버넌스'는 시민단체에게 돈을 퍼주는 명분이었다. 오세훈 시장을 바라보는 여성계의 우려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여성계는 이처럼 '안티페미니즘'이라는 낙인을 찍겠다는 위협을 통해 서울시에게 지원과 자리를 요구하는 중이다. 우파는 여기에 수세적으로 응할 필요가 없다. 박원순 9년 동안 서울시로부터 여성단체와 여성계로 흘러간 지원금 내역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미심쩍은 부분은 철저히 파헤쳐야한다. 박원순 시절 서울시와 시민단체 간에 형성된 카르텔에서 여성계만이 예외일 리 없다. 여성계는 자기 손에 쥔 돈과 자리를 절대로 놓지 않기 위해, 지금 '안티페미니즘'이니 '혐오의 정치'이니 하는 말로 호들갑을 떠는 중이다.

여성계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이념적 알리바이 만들기, 이것이 바로 지금 진행 중인 '안티페미니즘' 소란의 본질이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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