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사면론’ 급부상
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사면론’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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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에 대한 요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심화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분야의 패권 전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할 총수의 부재가 위기감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삼성전자에 사실상의 ‘공격적 투자’를 압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삼성전자 측에 기존의 시안 반도체 공장 증설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글로벌 강국들의 압력 틈바구니에 낀 삼성전자가 어떤 결단을 내려야할지는 복잡한 함수관계를 담고 있다. 전문경영인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오너인 이 부회장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시장상황에 맞춰 ‘신 반도체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정 재벌을 봐주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가 이 부회장 사면과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미중간의 반도체 패권 다툼이 이 부회장 사면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오규석 부산시 기장군수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자체장인 오 군수의 사면 요구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반기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손경식 경총 회장부터 오규석 기장군수까지 정계와 재계에서 ‘이재용 사면’ 건의

오규석 기장군수는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 군수는 호소문에서 "'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말에 솔직히 건강 걱정보다는 화가 앞섰다"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면 그가 있어야 할 곳은 구치소가 아니라 경영 일선이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무너지고 피폐해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지방투자가 절실하고 또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오 군수는 "코로나19와의 경제 전쟁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이라는 족쇄를 채워 참전시켜 줄 것을 대통령님께 간곡히 읍소한다"고 덧붙였다.

오 군수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2월에도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글로벌 경제 경쟁을 위해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을 요구한 것은 오 군수뿐만이 아니다. 16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이 부회장 사면을 정부에 정식으로 건의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 부회장 사면 이야기를 꺼냈다"면서 "다른 경제단체장도 이에 지지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이 벌어졌는데 이 부회장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된다는 점에서 사면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경제계 주요 인사 가운데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손 회장이 처음이다.

손경식, “삼성전자 반도체 주도권 유지하려면 이재용 복귀 필요해”

손 회장은 지난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이 이른 시일 내 경영에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칫하면 한국이 반도체 강국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이 불가피하며 ‘광복절’이라는 구체적인 사면 시점까지 언급했다.

이처럼 이 부회장의 사면 요구가 거세지는 배경에는 반도체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양 국가의 투자 압박에 고심이 깊은 상황이다.

 

‘미국 주도 반도체 생태계’ 추진하는 바이든, 삼성에게 추가 투자 압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삼성전자에 투자 압박을 가한 것도 사면과 관련해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대책 화상회의에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을 초청했으며, 반도체와 배터리 등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차량용 반도체에서 촉발된 공급부족 사태가 스마트폰, PC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주권’ 확보를 안보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으로의 줄서기를 강요받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국 주도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선언했다. 5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투자계획을 밝히면서 파운드리 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요구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기업인 TSMC가 1위이고 삼성전자가 2위이다. 바이든이 TSMC와 삼성전자를 정조준해서 추가 투자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20조원 달러 규모의 반도체 추가 투자계획을 밝혀왔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그 이상의 투자를 압박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다. 중국 산시성 시안의 공장에서도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시안공장의 증설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반도체 추가 투자를 해야할지, 또 추가 투자를 할 경우 오스틴과 시안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등이 모두 고민거리이다.

삼성전자, 총수 부재 장기화로 신사업 플랜 확정 못해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부재로 글로벌 생산기지 운영 등 반도체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중대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기업인들과 교류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단할 수 있는 인물은 이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총수 부재로 기업의 투자나 전략 결정이 늦어지면 해당 기업은 물론 나라 살림살이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한 차례 경영이 멈춘 경험을 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 부회장이 2018년 2월까지 구속돼 경영이 멈춘 바 있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9조3400억원 규모에 인수한 것 말고는 별다른 경영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 공백은 기업의 신사업 진출과 주요 전략 결정 등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라며 “공백이 길어질수록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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