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正史)를 제대로 정리한 후 어디까지가 정사이고 어디부터가 야사 혹은 지어낸 이야기인지 밝혀야 한다. 최소한 학교에서는 그 구분을 명확히 하여 가르쳐야 한다. 또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균형있게, 냉정하게 가르쳐야 한다. 이런 교육이 위선 없는, 도덕적인 인간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는 고의로 역사를 왜곡하는 강사나 저자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런 ‘거짓말쟁이’는 교육 현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자녀들이 불량식품처럼 달콤한 그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도록 학부모들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황희 정승 20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청백리의 후손으로 명문가 자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라났다. 그래서 황희 정승에 관한 미담은 거의 다 알고 있다. ‘계란유골’이란 고사성어까지 이어지는 황당한 얘기도 진위를 의심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잘 알려진 이야기 외에도 황씨 집안에만 전하는 듯한 일화도 있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황희 정승이 세상을 떠난 후 나랏일을 상의할 원로가 없었다. 그런데 명나라에서 공작새를 선물로 보내왔다. 조선을 골탕 먹이려 공작새가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작새를 굶겨 죽였다가는 커다란 외교 문제가 생길 판이었다. 고심하던 조정에서는 황희 정승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황희 정승 부인에게 물었다.

“황희 정승이라면 뭔가 도움이 되는 말씀을 남기셨을 것입니다. 대감께서 돌아가실 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말은 무슨 말이오. 남긴 재산 하나 없이 이렇게 가면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보니 딱 한 마디합디다.”

“무슨 말씀이셨는데요?”

“거미를 먹는 공작새도 사는데 하물며 사람이 살 길이 없겠느냐고…….”

이렇게 황희 정승은 죽어서도 나라를 구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공작새가 거미를 먹고 사는 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황당무계한 얘기다. 하지만 난 반평생 동안 황희 정승의 순백과 같은 청렴함에 대해서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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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임진강변에 서 있는 황희 정승의 반구정

몇 년 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을 모시고 임진각, 파주 등에 다녀오게 되었다. 버스 안에서 느닷없이 역사 해설을 맡은 나는 반구정을 지나며 청백리 황희 정승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늘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은 한 사람이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황희 정승이 사위의 살인을 덮도록 청탁했다가 파면당한 일은 알고 계시죠?”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나는 그때까지 황희 정승을 거의 무결점 인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황희가 좌의정 시절, 그의 사위 서달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의정 맹사성까지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가 세종에게 발각되어 파면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무식했던 탓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황희 정승에 대한 얘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이런 비리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정보가 없으니 인물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황희 정승의 미담과 그가 저지른 과오를 함께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일까?

퇴계 이황의 경우도 비슷하다. 학교에서는 그의 곧은 선비 정신과 이해하기도 어려운 사상에 대해서만 가르친다. 그러나 “부귀가 음탕을 부른다”라는 자신의 가르침과는 달리 그가 36만 평의 땅을 소유하고 300여 명에 이르는 노비를 거느린 대지주였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말과 실생활이 다른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교육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 교육의 문제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앞의 황희나 이황의 경우처럼 잘한 일이든 잘못한 일이든 어느 한쪽만 가르쳐 완벽하게 좋은 사람 아니면 모든 면에서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이다. “이러이러한 좋은 일을 했지만 저러저러한 나쁜 짓도 했다”라는 식으로 냉정하게 가르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런 평가는 현대사 인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또 다른 문제는 과장과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인기 강사가 역사 내용을 너무 심하게 왜곡했다며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만큼 인기를 얻으려면 이미 많은 왜곡을 저질렀을 것이다. 점점 더 자극적으로 강의하다 보니 나중에는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역사를 자극적으로, 거짓말을 섞어서, 부풀려서, 왜곡해서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야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생각의 근거는 또 무엇일까?

이제껏 학교에서 역사적 사실로 배운 내용 중 아예 사실 무근인 이야기도 의외로 많다. 고려 시대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얘기도 그 중 하나다. 《고려사》에는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얻어가지고 와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당시 원나라에서는 목화가 금수품목이 아니었으니 훔쳐올 필요가 없었다. 목화가 서민의 의복 문화를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생각하면 문익점이 위대한 사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를 도둑으로까지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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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동상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에 대한 이야기에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다. 지금도 많은 어린이용 역사책에, 김정호가 지도를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한반도를 세 번이나 돌고 백두산에 여덟 번이나 올랐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런데 중인으로 추측되는 김정호가 전국을 이렇게 누비고 다니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흥선대원군에게 바쳤는데 흥선대원군은 “나라의 기밀이 누설될 위험이 있다”라며 그를 옥에 가두어 심문했고 대동여지도 판각을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실록은 물론 당시 범죄자의 심문 기록을 모은 《추안급국안》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김정호가 종횡무진 전국을 누빈 얘기나 흥선대원군이 그를 옥에 가뒀다는 얘기는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어독본》에 있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하느라 쌩고생을 했고 대동여지도의 가치를 모르고 오히려 김정호를 벌줄 정도로 조선의 위정자는 무지했다고 말하고 싶었던 일제의 ‘창작’이라고도 해석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왜곡은 일본만 한 것은 아니다. 헤이그에 밀사로 간 이준이 자신의 배를 갈라 회의장 테이블에 던졌다는 얘기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설마 이것도 일제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내 강의에 들어왔던 탈북자 수강생은 눈이 동그래져서 “그거 사실 아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북한에서도 이준 열사가 회의장 안에서 할복했다고 가르쳤던 모양이었다.

물론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에 대한 과장이나 허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조지 워싱턴의 벚나무 이야기도 전기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둑을 막아 네덜란드를 구한 소년 이야기는 미국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둑의 나라 네덜란드로 건너가 마치 사실처럼 그 소년의 동상까지 서게 했고 그 동상이 또 ‘실화 인증’을 돕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요”라고 말한 적은 없으며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는 잔 다르크는 마녀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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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시에 황제릉으로 만들어진 고종의 홍릉

이야기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 부풀리고 살을 붙이는 것과 역사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권력을 잡은 세력에 의해 집필 당시부터 왜곡된 부분이 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우리에게는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정사(正史)가 있다. 또 《일성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은 ‘조사하면 다 나온다’라는 유행어를 실감케 할 정도로 촘촘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을 것이라며 통째로 《조선왕조실록》에서 버려진 ‘고종실록’과 ‘순종실록’도 당시 만들어진 기초 사료들을 뒤지면 어느 부분이 왜곡되었고 어느 부분이 진짜 역사인지 웬만큼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정사를 제대로 정리한 후 어디까지가 정사이고 어디부터가 야사 혹은 지어낸 이야기인지 밝혀야 한다. 최소한 학교에서는 그 구분을 명확히 하여 가르쳐야 한다. 또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균형있게, 냉정하게 가르쳐야 한다. 이런 교육이 위선 없는, 도덕적인 인간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는 고의로 역사를 왜곡하는 강사나 저자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런 ‘거짓말쟁이’는 교육 현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자녀들이 불량식품처럼 달콤한 그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도록 학부모들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우리의 역사 교육이 제대로 방향을 잡으려면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다 파악하여야 하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바로잡을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다지 희망적이진 않지만 역사 교육이 왜곡을 벗어나 정도(正道)를 찾는 것을 내 세대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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