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길 연대 의대 명예교수

I. 들어가는 말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해 12월에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초안)을 의견수렴용으로 발표하였다. 그 내용 중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교육 강화` 등을 명시한 부분이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반대하는 시민 청원이 일주일새 3만 명을 돌파하였다.

미디어의 보도에 따르면 청원인들의 반대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자녀에게 동성애를 가르칠 수 없다”, "편향된 교육이다", "성인권 교육에서 말하는 성소수자의 범위가 동성애 등을 넘어 기계 성애자, 심지어 동물 성애자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인지 범주가 명확하지 않다“, ”학생들에게 이성(남녀 양성을 의미하는 듯)이 아닌 다른 제3의 성을 인정하게 하는 것인가", "종교적인 가치관 등에 배치되며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설프게 하다간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성인지 개선 교육이 페미니즘 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 한다” 등이다. GMW연합은 학생인권종합계획안 대해 “전반적으로 헌법상 교육의 중립성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으며, 개별적으로 학생 신앙의 자유와 학교 교육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분석했다.

그러자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주장은 전혀 틀린 말이며,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는 "좌익 공산주의 혁명 사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공식 해명하였다. 이즈음 차별금지법 도입을 찬성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나서서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지지하며,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운동을 조직해오며 발전시킨 혐오선동세력들은 서울시 학생인권종합계획 수립과정에서도 왜곡된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 “이들이 학생인권종합계획에 대한 본질적인 오해를 기반으로 조직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그 과정에서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로 표현하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끝없이 재생산하는 지금의 상황은, 후퇴 없는 학생인권종합계획의 강력한 추진이 왜 필요한지를 더욱 여실히 보여줄 뿐이다“라는 등의 지지선언을 발표하였다.

매일경제 2021년 1월 19일자 기사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우려의 내용을 볼 때, 오해를 할만 하다고 하였다. 즉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성인권 교육은 일찍이 여성가족부에서 일선 학교에 제공한 고등학생 대상 `성인권 교육` 자료에 따라 작성한 것이므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이해하고 배우는 내용과 방식에 따라 동성애를 인정하고 조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게 된 것이라 하였다. 조선에듀 2021년 2월 1일자 기사는, 국민희망연대라는 단체가 “인권 교육 시행여부와 그 내용에 대해 사회적 합의부터 하는 것이 순서”라면서 “이 과정이 생략된 학생인권종합계획안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계획안을 원점부터 재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하였다.

서울시교육청은 2월 15일 청원에 답변으로,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은 “특정 이념과 성 정체성을 강요하는 반인권적 교육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성인권 교육은 개인의 성적 권리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서 출발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상호 안전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이라며 “성차별을 해소하고 왜곡된 성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월 15일 예장합신 동성애대책위는 “서울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은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특히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이 “성 소수자 학생들의 성별 정체성 혼란을 단순히 인권으로 인정해야만 하는 계획으로, 창조원리에 따른 타고난 양성으로 교육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사악한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2월 2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등 30개 서울 지역·교육단체는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원안대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조선에듀 3월 10일 기사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교육청은 “최종안 내용은 초안에서 큰 틀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세부적인 표현과 문구 등이 다듬어질 예정이지만”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고 하며, 논란은 거세질 듯하다고 보도하였다.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은, 교육청은 이러한 논란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인데, 그렇다면 아예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초안)을 만들 때 처음부터 보수적 성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했었다고 본다. 교육청이 왜 그러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이 와중에 3월 18일 “'성인권 교육'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은 '가짜뉴스'”라는 글이 나왔다(미디어 오늘 2021.03.18.). (이하 칼럼으로 지칭한다) 이 칼럼에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소수자에 대해 비과학적이고 차별 조장적인 내용이 고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수치스런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그 과학적 타당성을 의학자의 입장에서 검토하려 한다.

우선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필자는 동성애자나 기타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다만 가능한 한 과학적 사실을 알림으로 사람들이 적절한 판단을 하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II. 동성애란 무엇인가?

칼럼에서 “성적 지향은 성적 행동, 성적 정체성, 성적 매력, 심리적인 성적 욕구 등 4가지 항목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원래 동성애의 교과서적 정의는 ① 동성애 성교 행동(homosexual behavior), ② 동성애적 성적 끌림(homosexual attraction), ③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homosexual identity), 이 3가지가 핵심이다.

먼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homosexuality의 한국어 번역어인 동성애의 애(愛)는 성애(性愛)이다. 동성애(homosexuality)는 동성간 사랑(愛)이라기보다 동성간(homo-) 섹스(sex)가 핵심이다. 동성간 섹스의 핵심은 항문성교이다. (동성애에 해당하는 우리 말은 남색, 비역, 계간 등이다) 동성애 성교에는 구강성교, 상호자위 등도 포함된다. 동성간 끌림과 동성애 정체성은 내면적이어서 외적으로 감출 수 있지만, 동성간 성행위는 드러나는 행위이다.

요즈음 각종 학술단체들은 동성애 정의에 슬쩍 감정적 끌림(emotional attraction)을 추가하고 있다. (칼럼에서 말한 심리적인 성적 욕구가 이를 지칭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정서적 끌림은 성적 끌림이 아니다. 친구끼리의 우정은 정서적 관계로서, 흔히 브로만스로 표현되며, 서로 보고 싶어 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 이런 감정적 끌림은 흔히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동성애 정의에 포함시키면 동성애의 범위가 매우 넓어진다. 그러나 우정이나 브로만스는 결코 동성간 섹스가 아니다.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관계가 “성적이 되면” 우정은 손상을 입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동성애는 동성간 성적 관계이다. 청소년들은 이 점을 분명히 알고 혼동스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III. 동성애의 원인

1. 동성애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칼럼이 주장하는 바는 거의 전적으로 “동성애는 유전한다.”라는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칼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칼럼은 “과거에는 동성애가 후천적 원인으로 생기는 것으로 인식했으나 그것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캔자스 대학의 마크 조실린 교수 등은 10년간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유전자 결정론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동성애 행위 등에 대한 당위성이나 도덕성 등을 일반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되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성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동성애가 유전된다는 주장은 최근에 밝혀진 유전학적 연구결과들과 다르다.

① 1993년 Dean Hamer에 의해 Xq28라고 부르는 동성애 유전자(gay gene)가 발견되었다는 논문이 미디어에 대서특필 되었다. 그러면서 동성애가 유전된다(Born that way)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이 가설은 반복 실험에서 재입증되지 못했고, 결국 이 이론은 부정되었다. 그러나 부정된 사실은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유전설은 여전히 인터넷에 떠돌며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일반인은 물론 지식인들도 여전히 동성애는 유전된다고 믿고 있다.

② 칼럼이 소개하고 있는 Bailey는 동성애에 대한 일란성 쌍둥이 연구로 유명한 연구자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같기 때문에 한쪽이 동성애자라면 다른 쪽이 동성애자일 확률이 100% 이어야 한다. 그러나 1991년 Bailey 등이 조사해본 결과 일란성 쌍둥이에서 동성애자 일치율은 약 50% 내외였다. 그러나 연구대상 선정에 편향성이 있다는 비판에 다시 연구한 결과 20%로 떨어졌다. 2008년 스웨덴의 Långström 등의 연구에서는 일란성 쌍둥이 일치율은 약 10%였다. 이들 연구에 의하면 동성애 원인은 환경 탓 또는 후천적일 가능성이 더 크다. 10%의 일치율도 유전 때문이라기보다 공통된 자궁내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공통된 부모의 양육방식 탓일 수도 있고, 공통된 라이프 스타일(삶의 경험) 때문일 수 있다. 이후 대규모의 쌍둥이 연구는 없다.

③ 게놈연구(Genome-wide associated study. GWAS)는 첨단적 유전 연구 방법이다. 2012년 Drabant 등이, 2017년 Sanders 등이, 그리고 2019년에 Ganna 등이 동성애에 대한 GWAS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는 한결같이 모두 “단일한 동성애 유전자”(single homosexual gene)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과거 Dean Hamer가 주장하였던 Xq28은 이 연구에서 전혀 유의미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가장 대규모의 연구로, 2019년에 Ganna 등이 발표한 GWAS는 동성애자 28,486명, 대조군(비동성애자) 469,42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그 결과는 “동성애 유전자”는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반면 이성애자보다 남녀 동성애자 모두에서 유의하게 많다는 것으로 발견된 2개의 유전자 변이는 우울증, 조현병(정신분열병) 등 정신장애와 관련된 것으로 유전자들이었다. 남자 동성애자에서만 발견되는 두 유전자 변이는 각각 남자 대머리와 후각에 관련된 유전자 변이이고, 여성에서 발견되는 유전자 변이는 양극성장애(조울병)와 관련되는 유전자였다. 이 5개 유전자 변이를 다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개인이 동성애자일 확률은 1%이내였다. 즉 동성애 자체의 유전자는 없지만, 우울증, 조현병(정신분열병), 양극성장애 의 원인되는 유전자를 많이 가질수록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동성애 행동과 유전적으로 관련 있는 행동 특성들이 확인되었는데, 여기에는 외로움, 경험에 대한 개방성(다양한 경험을 환영함), 위험행동, 주관적 웰빙 낮음, 흡연, 마리화나, 섹스 파트너 많음(문란성), 어린 나이에 임신함, 주요우울증, 조현병(정신분열병), 주의력결핍과잉운동장애(ADHD), 등이 포함되었다. 즉 이런 특성들을 많이 보일수록 동성간 성행위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성호르몬 때문이라는 2D/4D 손가락 비율, 신경증성 등도 조사되었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게놈 연구는 동성애의 생물학적 원인에 대한 결정적 연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연구는 오히려 LGBTQ 공동체에 스티그마를 줄 수 있다는 논평이 있다.

기타 선천성 이론도 입증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뇌구조설, 호르몬 가설, 형가설(면역가설), 등이 있다. 이 모두 가설 수준이며, 실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그런데다 이 가설들은 모두 남자 동성애자들에 대한 가설일 뿐, 여자 동성애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1991년대 Simon LeVay가 제안한 뇌 구조설은 시상하부의 일부인 INAH3가 이성애자 남자에 비해 동성애자 남자에 (여자처럼) 작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주장한 연구의 대상 중에 에이즈를 앓다가 죽은 동성애자가 많아,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런 연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동성애와 이성애자의 뇌가 다르다는 연구들이 있었으나, 재확인되지 않았고, 또한 동성애 행위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호르몬 가설은 “태아가 어머니 자궁 내에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 탯줄을 통해 반대 성 호르몬에 많이 노출된 결과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또한 이 가설을 인간에게 실험할 수도 없다. 단지 간접적 근거중 하나로 남성호르몬에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는 왼손의 약지와 검지 길이의 비율(2D/4D ratio)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문들은 결과가 일정하지 않다. (2019년 GWAS 연구에서도 이 부분은 입증되지 않았다) 산모에서 부신피질 장애로 남성호르몬이 과잉 생산되는 경우 태아가 어떤 영향을 받는가를 보았을 때도 성지남과는 상관이 없었다.

2000년대에 나온 형가설(면역가설)(fraternal-birth-order effect)은 형이 많은 남자 막내 동생에 동성애자가 많다는 발견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하나의 가설이다. 즉 태아기에 산모에게 “남자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는 가정을 하였을 때, 남자 아기를 거듭 임신하면 남자에 대한 항체가 많이 누적되는데, 그때 막내로 태어나는 남자의 뇌가 그 많은 항체의 공격을 받아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 항체란 개념은 정립되지 않았다. (형이 많은 남자 동생에 게이가 많다는 주장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막내가 형들에게 신체적 및 성적 트라우마를 받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2. 발달이론

즉 동성애가 유전되는 것 또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후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동성애의 후천적 원인이라는 말은, 태어난 후 성장과정 내지 발달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경험들에 의해 동성애가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이는 꽤 상식적이며 이해가 가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 개인의 현재의 인간의 인격 또는 행동방식은 과거 경험의 누적된 결과라는 것은 잘 알려진 지식이기 때문이다.

동성애 원인을 발달이론으로 설명하자면, “동성애는 어려서부터의 경험(주로 트라우마)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초 프로이트는 “동성애는 소아기 트라우마에 의한 정신성발달(psychosexual development) 상의 중단(arrest) 때문이다“라는 고전적 정신성발달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 이론을 근거로 정신분석가들은 동성애를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해 왔다. 수 십 년 동안 그 성공 사례는 수많은 저술로 나타났는데, 그런 정신분석가로는 C. G. Jung, Wilhelm Stekel, Abraham Brill, Melanie Klein, Helen Deutsch, Anna Freud, Sandor Rado, 그리고 1960년대의 I. Bieber, E. Bergler, C Socarides 등이 있다. 이들의 연구들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하다. 왜냐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정신분석은 상당히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적 가족이론은 자식들이 어렸을 때, 부모-자식 간의 삼각관계에서 자식들에게 부정적 경험이 동성애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난폭하거나 무심한 아버지, 소유적인 어머니 같은 상황이 소년으로 하여금 동성애자로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동성애의 심리적 원인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심리학자로서는 Joseph Nicolosi, 미국심리학회 회장이었던 Nicolas Cummings 등이 있다. Nicolosi는 게이의 경우 아버지의 부재, 남성성의 부족으로 인한 보상심리 등등이 동성애의 원인이라 주장한다.

동성애의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은 동성애가 유전된다기보다 발달적 내지 정신사회적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동성애자 전환치료의 금지에 따라 정신분석에 의한 연구는 더 이상 나오지 못하고 있다. 즉 차별금지는 의학발달을 막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에는 주로 심리학 분야에서 발달이론에 따라 설문조사나 심리검사 같은 자료수집 방법을 통해 동성애의 원인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연구들이 동성애가 어려서의 트라우마, 특히 성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정신분석적 이론과 일치하는 것이다. 소아기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소년의 체육기능의 부족이나 외모나 행동방식이 소위 “젠더비순응”(gender non-conforming)이어서,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이후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남(지향)의 발달에 문제를 야기한다는 주장도 있다. 동성애 옹호자들은 이 젠더비순응도 타고난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 근거는 주로 동성애자들의 “기억”이다. 그러면서 트라우마 때문에 동성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동성애적 행동이 나타나 부모나 주변사람들로부터 트라우마를 받게된다는 가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연구가 있다. 2013년 Robert 등은 통계분석 상 트라우마 경험이 먼저이고 이후 동성애적 행동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3. 기타

학습이론은 알콜중독이나 도박중독에서처럼 “동성애 중독”을 설명하는데 적절하다. 즉 한번 쾌락을 맛보면 반복하고 싶어지고 반복하다보면 중독이 되며, 일단 중독이 된 후 이를 중단하면 금단현상이 나타나 중단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쾌락과 중독현상에 대한 뇌 메카니즘(뇌의 보상회로)은 잘 알려져 있다. 소위 1960년대 유행한 동성애 혐오치료(aversive therapy)는 이 이론에 근거하는 것으로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사회적 원인으로, 동성애자가 도시에,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에 많다는 것은 동성애 원인에 사회적 요인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 사회적 요인들이 동성애의 직접적 원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4. 선택이론

인간은 기계적인 동물과 달리, 의지(will)라는 덕목이 있어 자신들의 성행위 자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동성애 행동에 대해서도 자기 의지의 힘으로 동성애를 할 수도 있고, 그만 둘 수도 있고 바꾸기를 선택할 수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동성애자들은 가끔 또는 자주 이성과 성관계를 갖기도 하고 금욕하기도 한다. 성애가 타고난 본능이라도 금욕과 통제가 가능하기에, 세계의 고등종교들은, 동성애는 물론 이성애라도 성이 신앙에 방해된다면 금욕하라고 권해 왔다.

이제 동성애자들 중에서도 “당당하게” 동성애가 자신의 선택의 결과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성애자이면서 스스로를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표방하기도 한다.

5. 동성애는 자연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유전이 아니다) 그래서 치료될 수 있는 것이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동성애가 유전하기에 평생 변하지도 않고 치료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동성애는 치료되어 왔으며, 2000년대부터 동성애자가 자연적으로 이성애자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기 시작하였다. 이 현상을 성지남 유동성(fluidity)이라 한다. 전반적으로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고,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유동적이다. 특히 청소년 동성애자들 경우는 사춘기가 지나면서 대부분 이성애자의 정체성으로 변한다. (따라서 소아청소년기 때의 어떤 성교육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연구 중에 특히 Lisa Diamond의 연구가 돋보인다. 그녀는 그 자신 레스비언으로서, 많은 레스비언 소녀들은 사춘기를 끝내면서 이성애자로 변화한다고 “용감하게” 주장하며, “여성의 성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내어놓고 있다.

실제로 동성애는 치료된다는 증거들은 충분히 많다. 과거 오랫동안 정신분석으로 동성애를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해 왔다. 그 성공 사례는 수많은 저술로 나타났다. 1970년대 동성애의 정상화 이후 정신분석적 전환치료가 억압되면서, 대신 정신분석 기법과 인지행동치료 기법을 통합한 회복치료(reparative therapy)가 나타났다. 또한 오래전부터 기독교에서 탈동성애 사역(ex-gay ministry)도 성공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동성애자들을 성공적으로 전환시킨다는 연구논문들이 있다. 유명한 예로서 1973년 동성애를 미국정신질환분류(DSM)에서 삭제 할 때, 중재역할을 하였던 Dr. Spitzer가 2003년 동성애가 치료로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논문으로 출판하였다. 이 논문은 동성애자들의 맹렬한 반발을 받았다. 2012년 Spitzer는 자신의 논문으로 동성애자들이 상처받은 것에 대해 사과의 말을 하였지만, 논문 자체는, 학술적 잘못이 없었기 때문에, 끝내 철회되지 않았다. 전미국심리학회 화장인 N. Cummings는 전환치료는 동성애자의 권리이며, 실제 효과가 있으며, 비윤리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술단체들은 동성애자들에게 전환치료 대신 확인치료(affirmation therapy)를 받으라고 권한다. 이는 상담을 통해 동성애를 확정하고 당당하게 살라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확인치료가 윤리적이라는 주장은 많으나, 실제 효과가 있다는 임상적 연구논문은 매우 드물다.

6. 토론

동성애 학자들이 무척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생물학적 원인론이 입증될 만한 것이라면 벌써 연구결과가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생물학적 원인을 입증하는 연구는 더 이상 없고, 오히려 반대되는 사회심리학적 연구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칼럼 저자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서 Bailey와 Diamond 등의 2016년 논문을 주로 인용하였는데, 이는 그때까지의 동성애 옹호 연구자들의 연구논문들을 가장 업데이트하여 종합한 것이다. 이 논문은 동성애 원인으로 호르몬적, 유전적, 사회환경적, 비사회환경적 영향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성애가 타고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증거로서 ① 동성애는 소아기 젠더비순응과 관련이 높다는 것, ② 일란성 쌍둥이에서의 일치율, ④ 남자 동성애에서의 형가설, ⑤ 성전환 수술을 해도 원래의 성지남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자들은 2012년 발표된 GWAS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시간차이 때문에 2017년 및 2019년의 다른 두 GWAS는 당연히 소개되지 않았다. 아마 이들이 포함된다면 유전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힘을 잃었을 것이다.

Bailey 등은 동성애의 사회적 원인으로서는 오로지 ① 동성애 성인에 의한 소년들의 모집(recruitment), ③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정신분석 이론과 어느 정도 일치), ③ 동성 혼인을 한 양친의 영향 등만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①과 ③의 이론은 동성애 반대론자들이 동성애자들의 비도덕성을 비판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Bailey 등은 이러한 사회적 원인의 영향은 미미하며, 이러한 가설들은 검증하기 어렵고, 다른 여러 요인들에 의해 오염되고 왜곡된 결과라 하였다. 그러면서 Bailey 등은 2000년 이후 1980년대까지 활발하였던 정신분석이론이나 트라우마 관련 발달이론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매우 편파적인 처사이다. 당연히 동성애의 “선택” 이론도 무시하고 있다. 그래도 이 논문은 동성애자들에게 신경증성(neuroticism)이 있다는 것(정신분석의 노이로제 이론과 어느 정도 일치함), 동성애가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사실 등을 인정하고 있다.

IV. 동성애는 정상인가?

우리는 동성애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가진다. 첫째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정신장애 목록에서 제외하였는데, 그 근거는 과학적이 아니었다. 둘째, 정상이라고 주장하려면 동성애가 자타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는데, 과학적 사실은 그렇지 않다.

1. 동성애 정상화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과정이 있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성혁명(프리섹스 운동), 68학생운동, 히피운동 그리고 인권운동(노동자운동, 흑인운동, 여성운동 등)이 한창이었다. 이즈음 1969년 게이 폭동을 계기로 게이 인권운동도 일어났다.

게이활동가들은 동성애가 정신장애라는 사실이 있는 한 인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미국정신의학회를 향해 동성애가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결정을 하라고 맹렬하고 강압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 시위는 전형적인 게릴라 극장(Guerrilla theatre)이였다. 3년에 걸친 폭력적 시위와 그리고 동성애자 정신과의사 회원들의 요청으로 결국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 이사회가 굴복하였다. 그러나 정신분석가들을 포함한 일부 회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회원투표”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52% 찬성으로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결정하였다. 당시 그런 결정의 과학적 근거는, 곤충학자 킨제이의 소위 1948년 『킨제이 보고서』의 동성애자가 많다는 보고와 1956년 Evelyn Hooker라는 심리학자의 “동성애자들이 심리검사 결과 이성애자와 다름없다”라는 논문 두 가지였다. 이 두 연구서는 연구방법상 결정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이러한 결정에 즉각 동조하여, 미국심리학회, 미국 의학회, 미국 교육학회, WHO 등 학술단체들도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규정하였다. 한편 4년 후 1977년 시행된 여론조사에서는 회원 68%가 동성애는 병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이미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의사학자 Bayer는 이 사건은 과학사에서 과학이 사회적 이슈에 굴복한 첫 번째 사건이라 평가하였다.

이후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동성애가 정상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나아가 이를 근거로 전환치료와 기독교의 탈동성애 사역을 금지하려 하였고, 이어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혼 합법화 등을 추진하여, 오바마 정권 때까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그들은 성정체성 장애(트랜스젠더)도 정상화를 시도하여 성공하고 있다. 나아가 소아성애, 가학-피학증, 근친간, 수간 등도 정상화하는 논의도 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동성애는 정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도 확고히 하기 위해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그 증거를 유전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은 결국 성혁명(sexual revolution)의 과정으로 보인다. 그 최종 목표인 소위 폴리아모리( polyamori, 다자연애-모든 종류의 섹스를 정당화 함)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 근거보다 사회전체에 불고 있던 사상적, 문화적 및 정치적 풍조에 휩쓸린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 풍조란 최근에 “정치적 올바름(PC)”이라는 사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정치-사회-문화적 풍조가 이제 우리나라에 인제 상륙한 것이다.

2. 증상

동성애 자체는 이미 미국정신의학회가 정신장애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동성애적 끌림과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내면적이라 겉으로 나타나지 않아 타인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간 성행위는 상대(파트너)가 있어 동성애로부터 쾌락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해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주먹을 휘두르는 행동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상대가 있어 그 주먹에 맞으면 자신과 상대에 고통과 장애가 생겨난다.

의학적 사실로서 동성애는 많은 병적 현상과 관련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간 성교행위는 병적일 수 있으며, 범죄일 수도 있다.

① 동성애에는 결과적으로 불임과 연결된다. 임신 장애는 의학적으로 병이다.

② 항문성교는 감염병을 다수 발생시킨다. 즉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들보다 각종 성병, 에이즈, 간염, 이질 같은 소화기계 장애, 항문손상 같은 신체적 합병증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③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들보다 우울증, 불안장애, 약물남용, 자살 등 정신건강문제가 더 흔하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이런 정신건강문제는 사회적 차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성애가 합법화 된지 오래된 선진 서구 국가에서도 이런 정신건강문제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의 나쁜 정신건강은 과거의 불행이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동시에 동성애의 원인과 공통적이기도 하다.

또한 차별 때문에 정신건강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소수자 스트레스 모델(minority stress model)에 맞지 않는다. 이 모델은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의 경우에 입증된 바, 사회적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숙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동성애 행위가 성적 쾌락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건강 면에서 불리하다는 것과 자신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정신건강이 나쁠 수 있다. (그래서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동성애자들에게 동성애를 정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확인치료를 권한다)

④ 동성애는 사회적으로도 해롭다고 볼 수 있다. 동성애적 인간관계에는 불륜, 무책임성, 폭력 같은 현상이 많다. 동성애는 동성애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고 생명을 단축시킨다. 성병과 에이즈, 간염 같은 전염병은 동성애자에서 양성애자에게 감염되고, 양성애자에 의해 이성애자들에게도 감염을 일으킨다.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들의 불임문제는 인구를 감소시킬 수 있다. 정신건강문제는 전염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간접적으로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해로움을 야기할 수 있다. 동성혼인을 한 커플에게 양육 받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동성애가 어떤 악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다.

물론 이성애적 관계에서도 고통, 질병, 관계의 문제 등이 있다. 그러나 동성간 관계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더 심하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V. 동성애 행위의 당위성과 도덕성

칼럼은 “유전자 결정론에 의해 동성애 행위의 당위성과 도덕성을 일반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동성애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또한 동성애가 유전된다고 해서 그 행동이 당위성이나 도덕성이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의학에서는 알코올 중독이나, 싸이코패스에 유전적 성향이 강하지만, 이들 행동들이 당위성이거나 도덕성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에게 병적 또는 범죄적 충동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 특유의 지성과 도덕적 판단으로 자제할 수 있다. 정신의학은 충동을 자제하기 어려운 경우를 충동조절장애라는 병으로 본다.

1. 동성애 행위에 당위성

동성애 행위에 당위성이 있다고 하려면 그 전제로서 동성간 성교를 위한 별도의 성욕이 있어야 한다. 즉 동성끌림(homosexual attraction)이 “생래적”(natural)이어야 한다. 그런데 동성간 성욕이 발동하는 것은 생래적이라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원래 성욕은 생식을 위해 이성을 향하여 발동하게 되어 있으며. 이성간 생식행동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 이것이 자연(nature)이다. 동성을 향하여 성욕이 발동하는 것은 이성을 향하게 되어 있는 성욕이 (무언가에 막혀) 방향을 틀어(deviate) 동성에게로 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동성을 향해 성욕이 나타나면, 이후 그에 이어지는 성교는 항문을 사용하되 이성간 성교의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말하자면 동성애는 동성의 몸을 도구로 하는 자위이다. 따라서 동성간 성교는 당위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어쩌다 동물에서 보는 동성간 성적 행동을 인간의 동성애와 같다고 보고, 다 같은 “자연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동물행동은 결과적으로 “자연”에 적응하기 어렵다. 동물의 행동으로 인간을 정당화하는 것은 인간을 동물로 격하하는 스스로의 모독 행위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내지 진화론적 관점이다.

2. 동성애 행위의 도덕성

칼럼은 "타인과 사회에 해악을 가하지 않고 책임 있게 성적 활동을 한다면 이를 금기시할 근거가 희박하다"고 썼다. 또한 칼럼은 "성 소수자는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내포된 전제조건으로 성 소수자는 다른 사람이라고 구별 짓는 것“을 비판했다.

의학은 동성애를 병이 아니라고 선언했지만, 의학적 연구가 거듭됨에 따라, 동성애 행위가 “자타에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나타냄으로 비도덕성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성병을 숨기거나 일부러 퍼트리려 한다거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무책임하고 폭력적이며 문란하고, 동성혼인에서 이혼이 많다는 점 등 그 라이프 스타일이 비도덕적이라는 증거들을 다수 드러나고 있다.

3. 정당하고 도덕적인 성

인류사회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서는 일부일처제적 결혼 내에서의 성행위만 당위성이 있고 도덕적이 된다고 본다. 칼럼에서 말하는 “왜곡된 성인식”이라는 것은,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동성애를 병으로 보는 인식을 지칭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의학적 사실들은 동성애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고 병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당하고 도덕적 성은 남녀가 일부일처제적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가족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인류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서는 정당하고 도덕적인 성을 소아와 청소년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IV. 청소년 학교 성교육

청소년은 어떤 인간이며 그들을 어떻게 교육하여야 할까?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도 의학에서 구할 수 있다.

1. 청소년은 누구인가?

대체로 청소년기는 성적·정신사회적 성숙을 가져오는 신체적·정서적 과정으로 시작되어 독립과 사회적 생산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기까지로 잡고 있다. 사춘기(puberty)는 대체로 신체적 변화에 초점을 두고, 청소년기(adolescence)는 사회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둔 개념이다. 둘은 동시에 진행되지만 진행속도가 일치하지는 않아 그 불균형 때문에 청소년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청소년들이 청소년기에 성취할 발달과제는 정체성의 형성, 성격구조의 안정화, 직업 및 자율성과 관련된 인생목표의 설정, 가족 및 부모로부터의 독립 등이다. 특히 이때 청소년들은 나는 누구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장차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정체성에 고민하게 된다. Erikson에 의하면, 정체성 확립에 실패하면 역할혼란(role confusion)이라는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가 온다.

이 시기에 뇌의 발달과 더불어 사고능력이 크게 발달하는데,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며 미래지향적 사고가 발달한다. 이 시기는 Piaget가 말한 형식적 조작단계(formal operation stage)에 해당된다. 청소년들은 창조성이 왕성하여 특히 시 쓰기나 음악활동을 많이 하고, 체육에 몰두하거나, 사상이나 도덕, 휴머니즘, 종교 등에 심취하기도 한다. 부모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은 인생의 전 시기에 걸친 과정이지만, 이 시기에는 특별히 자율의 문제가 대두된다. 옷차림, 머리모양, 학업, 친구관계, 식성, 이성교제, 방의 정리정돈 등의 여러 면에서 부모와 자식의 의견이 대립한다. 부모의 거부적 태도는 청소년에게 쉽게 분노반응을 일으킨다.

이 시기에 도덕성을 확립하게 된다. Piaget의 설명에 의하면, 소아기에는 단순히 부모가 정해준 기준을 따라 행동하고, 학령기가 되면 법칙을 받아들이나 예외를 인정할 줄 모르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전체적으로 사회를 위해 좋은 것인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도덕법칙을 알게 된다.

청소년과 부모와의 관계는 세대차이로 나타난다.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청소년의 욕구와 그들을 자신들의 틀 속에 가두어두려는 부모나 기타 사회적 권위자의 요구가 충돌하게 된다. 다수의 부모들이 그 한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갈등상황 속에서 부모 자신들의 무의식적 욕구나 공상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부모의 칭찬이나 꾸중을 잘 받아들여 세대간 차이를 극복해간다.

청소년은 물론 초기 청년기의 뇌도 아직 미숙하다.

흔히 청소년기가 지나면 성인이 된다고 한다. 즉 청소년기가 끝나는 18세경 뇌가 완전히 성숙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혁명가들과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청소년들이 미숙하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그들도 성을 즐길 능력과 권리가 있다고 옹호한다. 그러나 의학은 청소년은 심신 모두 아직 미숙하다고 본다.

더구나 최근 뇌과학은 뇌의 충분한 성숙을 위해서는 20대 중반까지 기다려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첨단 뇌영상연구들은 청소년들의 뇌세포 숫자는 충분히 증가해 있어 기억력이 뛰어나고 청소년기 특유의 순수한 논리 전개가 가능하지만, 뇌세포들 간의 연결(시냅스)은 여전히 과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소아는 물론 청소년들에서, 행동과 연상이 재빠르고, 엉뚱하기도 하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주의가 산만하고, 감정적으로 충동적이고, 그리고 지적 판단에서 이상적이기도 하지만 미숙하다. 즉 청소년은 무언가 위대한 것을 꿈꾸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과학은 뇌세포와 그 시냅스들이 충분히 정돈되는 나이는 20대 중반, 즉 대학 졸업 때라고 본다. 대학생들은 반발하겠지만, 대학시절은 결국 후기 청소년기이다. 미국 CDC도 청소년 성교육에서 24세까지의 청년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그들이 여전히 사회적 권위들로부터 훈육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현재의 과학적 사실이다. 현실에서도 현대사회에서는 청년들의 학업기간이 길고, 그 때문에 직업인이 되거나 결혼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이를 정신사회적 유예기간(moratorium)이라 한다. 이 기간 동안 “자유롭고 무책임한” 청소년들의 성을 절제시키기 쉽지 않다. 따라서 그만큼 성교육이 중요하다.

2. 학교 성교육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초안)은 결국 “학교”에서 소아와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거창하게 성 철학, 성 사회학, 성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학교성교육”은 당장의 청소년기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천가능한 성윤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 성윤리는 단순할수록 좋다. 즉 어른들은 성을 “절제”하여야 하고, 어린 청소년들의 성은 “통제”되어야 한다.

'성인권 교육’이란?

우리는 소아든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인권교육을 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소아청소년에 대한 “성인권 교육”에는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우리는 청소년 성인권 교육론이 성혁명론과 연결되기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정신기능이 미숙한 청소년에게 결정권을 주면, 그렇지 않아도 성욕과 충동성이 넘쳐나는 청소년들은 욕구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계획서로서는 성인권 교육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인터넷을 통해 성인권 교육을 받아보았다는 한 성인의 후기를 읽어보았다. 거기서의 성인권 교육이란 생식, 성평등, 성차별, 성폭력 예방, 동성애(양성애 무성애 포함),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특히 주목되는 바는 성차별에 관련하여 <외모 빼고 인사하기> 캠페인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인사할 때 “어머,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피부가 엄청 좋아보여요! 오늘따라 예뻐 보이는데요? 어머, 꿀벅지시네요!​” 이런 말들도 어떻게 보면 성인권을 지켜주지 않는 말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 터놓고 얘기해요”라는 시간은 어린이에게 성에 대한 바른 상식을 알려주라는 것으로, 아이에게 (그림으로) 남자와 여자의 신체부위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솔직하게 터놓아서인지 아이가 큰 거부감 없이 읽더라는 것이었다.

성적 자기결정권

성인권 교육의 핵심은 아마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르치고 실습시키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프리섹스를 인권으로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나 동성애 옹호나, 프리섹스의 궁극인 다자연애도 이 성적 자기결정권 이론에서 출발한다.

자기 결정권은 인간이 완전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과연 인간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판단을 하는 충분히 성숙한 존재인가? 더구나 청소년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히 성숙한가? 상식적으로도 청소년은 아직 미숙하다고 보기 때문에, 집에서나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교육”을 하는 것이다. 청소년 뇌의 미성숙이라는 과학적 사실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자칫 청소년들에게 (결혼 전에) 성행위를 조장할 뿐 아니라. 동성애 등도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근래에 청소년들의 성적 비행이 증가한다는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해 청소년 성교육 옹호론자들은 학교의 성교육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성교육을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청소년들의 성적 비행의 증가는 학교의 성교육 부족 이외에 다른 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고 본다. 즉 청소년들의 판단이 미숙한데다, 부모는 (살기에 바빠) 무심하여 훈육을 포기하고 있고,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성혁명 이론을 이끌고 있고, 미디어들(TV, 인터넷, 등등)은 돈을 벌기 위해 대놓고 “진보된” 성 문화를 무수히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리섹스를 옹호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혼전 순결 대신 콘돔을 사서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1980년대 미국에 에이즈가 창궐하기 시작하였을 때,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막는답시고 학교 성교육 아젠다를 선점하였고, 그래서 돈도 벌었던 역사와 비슷하다)

차별 금지

성(sex)차별은 우리도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남자와 여자 간에는 차이가 있으며,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함으로 인류가 번성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상호보완하여야 한다는 것은 남녀 각기 자신의 고유의 기능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이 보장된다.

우리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 그들도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성애 행위가 앞서 말한 자타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지적은 당사자들에게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동성애 행위에 대한 의학적 연구와 지적은 차별이라 할 수 없다. 또한 동성애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도 차별이 아니다. 오히려 동성애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그럴 기회를 막는 것은 또 다른 인권유린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를 법으로 정하는 것은, 이런 연구 활동과 과학적 사실을 맑히는 것과 치료를 권하는 것을 징벌하려는 것으로 보고 더욱 반대한다. 차별금지는 교육과 설득과 공감으로 해야지, 법으로는 무리이며,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3. 성혁명 이론과 청소년

성인권 교육옹호자들은 청소년들을 미숙하다고 보는 것에 반대하고 그래서 당연히 청소년들에게 자유로운 섹스를 허락해야 하고 그래서 성교육을 제대로 해주어 원하지 않는 임신과 성병과 폭력을 피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가? 이는 일찍이 1920년대에 공산주의자이며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정신분석가였던 빌헬름 라이히가 『성혁명』이라는 저술에서, 청소년들에게 기성 체제에 반발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혁명의 전투원으로서 안성맞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즉 자신들의 성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청소년들의 합류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주장 때문에 그는 당시 공산당에서도 추방되었고, 정신분석가협회에서도 추방되었다. 이처럼 청소년 심지어 소아에게도 성욕이 있으므로, 성인들이 이들을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 소위 소아성애론자들의 이론인 것이다. 이처럼 프리섹스, 동성애 옹호, 소아성애 옹호 등은 성혁명과 연결되고, 또한 모든 혁명은 맑시즘과 연결된다.

그런데 지금의 다수의 지식인들이 은연중에 이런 “성혁명” 사상을 옹호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스스로 엘리트로서 인간 계몽과 사회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이런 계몽과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기독교라고 생각하고 기독교에 저항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여기에 더하여 필자는, 성혁명은 혁명가 자신들의 내면적인 성적 갈등을 마스터하려는 행동 또는 합리화하려는 시도로 본다. 성혁명가 자신들의 성행동은 하나같이 “혁명적”이었다. 예를 들어 사드는 무수히 투옥당했고 소아성애자로 죽었다. 빌헬름 라이히는 오르가즘 숭배자로 결국 사기죄로 감옥에서 죽었다. 킨제이는 양성애자이며 그 부부는 각자 외도에 동의하였었다. 미셀 푸코는 동성애자로서 에이즈로 죽었다.

청소년 성인권 교육 옹호자들은 성혁명의 궁극적인 목표가 지상에 다자연애(polyamori)의 파라다이스를 이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소아와 청소년들 끌어들이는 것이다.

V. 성교육의 실제

1. 교사의 준비

성교육은 아무나 할 수 있는가? 최소한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려면 교사는 성교육자로서의 자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① 무엇보다도 성교육자는 소아청소년들에게 성교육하기에 앞서, 자신의 성적 갈등을 해결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칫, 자신의 개인적 성적 갈등 문제가 자신도 모르게 성교육 장면에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기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극단적 예를 들면, 프리섹스 옹호, 노출증, 외설증, 유혹적 발언 등이다.

② 성교육자들은 LGBT의 실상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동성애는 물론 트렌스젠더도 유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③ 교사들은 성혁명의 목표를 눈치 채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성문화의 현상을 보면 성혁명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비혼의 증가, 출산의 감소, 포르노산업와 매춘의 증가, LGBTQ 사람들의 증가, 미디어에 나타나고 있는 다자연애의 세계 등이다. 성혁명이 추구하는 파라다이스는 “불임의 파라다이스”일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이래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개방적 성교육의 확대를 주장하려면, 교육자가 청소년들이 성행동을 확대한 결과를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교육청의 지침대로 가르쳤을 뿐이다”라고 하면 무책임한 교사이다.

2. 성교육의 실제의 몇 가지 예

① 소아청소년에게 성교육을 하는 것에, 성숙정도, 즉 나이에 따른 한계와 절제가 있어야 한다. 이는 영화에 19금이 있는 것과 같다.

미숙한 소아와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거나, 적라라하게 생식과정(성교장면 등)을 보여주거나, LGBTQ를 자세히 교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미숙한 청소년들에게 “권리”와 더불어 과다한 정보를 주면, 그렇지 않아도 성욕이 한창이고 충동적인 청소년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여 “성적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청소년층에 각종 안전사고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충동성과 모험심 때문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자아와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권위에 반항하기 마련이다. 성교육이 반항적 행동을 방임하거나 조장해서는 안 된다.

개방적 성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적 억제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미약하다.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으니까 덩달아 학교 성교육도 개방적이 되면, 성 개방은 더 상승적이 될 것이다. 학교교육이나 특히 성교육은 보수적이 되는 것이 적절하다.

② 성소수자 인권문제는 교육하되, 다른 소수자 (여성, 노동자, 인종, 장애자 등) 인권문제들과 통합적으로, 기본적인 것, 즉 “모든 사람들은 인권이 존중하여야 한다.”는 수준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 즉 “사회에는 드물지만 성소수자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다른 소수자들과 같이 인권을 존중하여야 하며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정도로 가르치면 된다고 본다. 조금 확대한다면 성소수자라는 집단에 LGBTIQ 등이 있다는 소개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③ 교실에 성소수자(gender non-conforming 어린이나 청소년)가 발견될 때 처신도 미리 교육받아 두어야 한다. 현장에서 성소수자 개념을 언급하면 당사자에 스티그마를 줄 우려가 있고, 아이들 사이에 따돌림 문제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 피해자에게는 성소수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적 차원에서 지지를 보낸다. 성상담은 매우 예민한 업무이다. 개인적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조심스럽게 부모에게 알리고 전문가를 찾도록 인도하는 것이 좋다.

3. 기어이 LGBT 교육을 한다면,

① 무엇보다 동성애와 우정을 구분해 주어야 한다. 이는 LGBT 성교육에서 정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동성간 우정을 동성애처럼 말하면 동성애를 조장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예를 들면 감정적 끌림을 동성애라고 말해주면 친밀한 친구가 있는 청소년은 아마도 내가 동성애자 아닌가 고민할 것이다. 친구를 만나 기쁘고 흥분하는 것은 결코 성적 흥분이 아니다.

② 동성애를 제대로 가르치자면, 동성애가 실제로 무엇인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도 알려야 한다. 동성애란 동성간 성교가 본질이다. 동성애란 동성간 섹스, 즉 항문성교, 구강성교, 상호자위, 등등을 말한다. 그리고 동성애의 결과로서 불임, 성병의 위험, 신체적 합병증들, 사회 적응 문제, 우울증이나 불안 정신건강 문제, 자살, 약물남용 등에 대해서도 알려야 한다.

이런 내용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그래서 차라리 LGBT 교육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바이다.

③ 성인동성애자들이 청소년들을 모집(recruit)한다는 문제도 경고해야 한다. 물론 동성애자들은 반박하지만, 그들이 우정과 케어를 가장해서 순진한 소아와 청소년들에게 접근한다는 비판이 있다. 성욕은 왕성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청소년에게 동성애자인 형뻘 되는 사람이 닥아 와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친근하게 돌보아주면, 그 청소년은 동성애자가 아닌데도 그 사람의 동성애 파트너가 되기 쉽다.

④ 기타 트랜스젠더에서 성전환 수술은 결코 성을 바꾸지 못할뿐더러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것, 간성은 의학적 병이라는 것 등도 가르쳐야 한다.

VI. 맺는 말

동성애가 유전된다는 과학적 사실이 성인권 교육의 근거라는 주장에 대해, 실제 과학적 사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동성애는 유전된다는 증거는 없고, 오히려 발달이론이 설득력이 있다. 이것이 과학적 사실(fact)이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사실은 대중 미디어가 다루지 않기 때문에 대중은 여전히 “동성애는 유전이다” 그래서 “정상이다“라는 오해 속에 있다. 이런 동성애 유전자가 없다는 연구결과들이 대중에게 확산하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자연히 바뀔 것이다. 따라서 이에 근거한 청소년 성인권 교육은 자제되어야 한다.

또한 성인권 교육에 핵심되는 이론인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①, 성인권 교육이란 성혁명적 사상에 기초한 교육으로 생각하고 이를 비판한다. ② 과학적 사실들을 연구하고 밝히는 것은 결코 차별조장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건강한 성으로 회복하는 길을 제시한다. ③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라 하더라도 성윤리는 지켜져야 한다. 성윤리는 전통적 일부일처제적 가족윤리에 기초한 절제된 성행동이다. 따라서 ‘성인권 교육’이 전통적 성윤리에 한정된 것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통적인 성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차별조장적”이 아니며, 국제적으로 수치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본다. ④ 성교육 교과 내용이,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리고 뇌 발달 수준이 아직 미숙한 소아청소년의 수준에 맞게 절제되어야 한다. 물론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성교육은 통제이고 억압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자제를 교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자제”에 기반한 교육방침은 인류의 오래된 경험과 지혜가 축적된 결과이며 전통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으로:

① 청소년들에게 지적 능력이 아직 미숙하다는 사실과 그래서 교육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사실을 들어, 확실하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

② 성교육이 섹스 자체에 집중되면 오히려 불필요한 호기심을 조장하고, 충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섹스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면 그렇지 않아도 미숙한 소아나 청소년은 스스로 실험해 보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따라서 단순히 전통적 일부일차제적 가족체계와 혼전 순결을 “엄격히” 가르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좋다고 본다.

③ 성적 자기결정권은 아직 청소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미숙한 청소년은 자기결정권을 “자유”와 동일시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거부할 권리”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냥 거부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본다.

④ 청소년들의 충동성과 그 결과인 성병과 임신에 대한 경고를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임신과 성병과 폭력의 예방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도 연령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⑤ 절제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성적 충동성을 완화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체육과 야외활동, 예술활동, 집단적 이성교제 같은 것이다.

⑥ 학교에서 성에 대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아예 가르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학교 성교육이 없어도, 가정에서 부모의 모범을 통해 그리고 사회 관습과 문화를 통해 제대로 “절제하는 성”을 전수시켜 사회를 잘 발전시켜 왔었다.

최종 결론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적하고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인권”이 아니라 “인권을 빙자한 대한 진보적 개방된 성교육”이다. 따라서 어린 소아와 청소년들에게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교육이나 개방적인 LGBT 교육은 하지 말고,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즉 성적 자기결정권과 LGBT 문제는, 나중 진짜 어른이 된 든 후 다양한 실제 사회적 경험과 이론적 공부를 통해 합리적으로 깨달아 가도록 미루는 것으로 지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한편 “학교 성교육”은 경고적이고 억제적인 성교육을 함으로 학교 밖의 과다한 개방성의 영향력을 상쇄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전통적인 일부일처제적 성윤리와 가족의 소중함 등을 가르치면 충분하다고 본다.

대안 제시

1. 소아청소년 시절에 정신적 트라우마, 특히 성적 트라우마를 예방하는 것이 교육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일선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나아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인성교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2.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하여 성 평등 교육 자료에 있어, 보수적 성교육 자료도 같이 포함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로서 각 학교(학교장)는 그 둘 중에서 선택하거나 통합하거나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3. 아예 처음부터 성교육 안을 만들 때 보수적 성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교육청은 왜 그러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성혁명가들과의 논쟁에서 미리 염두에 둘 것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필자의 논의는 기존 상식과 과학적 증거가 일치한다는 데 근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혁명가들이 내심 간직하는 전제는 이와 기본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있다. 성혁명가들이 주장하고 싶은 인간의 완전함과 최고의 도덕성은 인간의 가능한 모든 욕망을 억제하지 말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성취하는 것이다. 즉 성혁명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한 프리섹스의 파라다이스이다. 따라서 욕망의 절제를 요청하는 사람들과는 논쟁 자체가 어렵다. 그러나 성혁명가들은 프리섹스의 파라다이스는 불임의 파라다이스로 결국 인류문화를 “용감한 신세계” 같은 파국으로 이끌 것임을 알아야 한다. 거기서는 인간을 공장에서 생산하며, 그런 인간에게는 아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이성을 향한 성욕 자체가 없다. 우리는 이런 세상이 출현하는 것을 막아야 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과학 뿐 아니라 철학적 및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민성길 연세의대 정신과 명예교수(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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