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박원순 용비어천가'를 띄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향해 '발언 자제'를 호소했지만, 임 전 실장은 아랑곳않는 상황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적극적으로 두둔하는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발언이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갈수록 그 도가 높아진다. ‘박원순 용비어천가’ 수준이다. 임종석의 발언에 대해 말을 아끼던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24일 급기야 난감함을 토로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임종석의 이같은 발언의 배경은 무엇일까? 패색이 짙은 4.7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깜짝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지지층 결집용’이라는 해석부터 ‘대선판 흔들기’라는 관측까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영선, “피해 여성 상처 건드리는 발언 자제해주길” 호소

박 후보는 24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에 대해 곤란함을 토로했다. 앞서 임 전 실장은 ‘성추행 사건’의 당사자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향해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고 두둔했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은 ‘피해자 2차 가해’라는 논란을 낳았다.

이에 박 후보는 "개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긴 그렇지만, 앞으로 그런 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지금 피해 여성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라며 "그런 상처를 건드리는 발언은 자제해주는 게 좋다"고 밝혔다.

진행자가 박 후보에게 “임 전 실장의 발언은 지지층 결집용이란 해석인데, 박 후보 입장에선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보나”라고 질문하자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23일 임 전 실장의 발언에 대해 박 후보는 “요즘 임 전 실장과 연락을 잘 하지 않아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박영선 호소에 아랑곳하지 않는 임종석, 24일 ‘박원순 재평가’ 강조

박 후보가 라디오 발언을 통해 "앞으로는 그런 일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임 전 실장은 전날(23일) 박원순 전 시장의 청렴함을 칭찬한 데 이어, 24일에는 박 전 시장의 서울시정을 호평하는 발언을 하며 ‘박원순 재평가’를 강조했다.

박 후보가 공개적으로 ‘발언자제’를 요청했지만, 임 전 실장은 꿋꿋하다. 자신의 발언이 박영선 후보 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모를 정도로 정무감각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재 박 전시장을 옹호할 경우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서울시장 이후를 겨냥한 대선 행보’라는 분석까지 제기된다.

임종석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는 글을 올려 2차 가해 논란을 빚었다. [임종석 페이스북 캡처]

박영선이 낙선돼야 이재명 중심의 여권판도가 흔들려?

“서울시장에 박영선 후보가 당선되면 지금의 이재명 지사나 이낙연 전 대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된다. 친문의 86세대가 제3의 후보가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그래서 일부 강성 친문 세력 중에는 박영선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는 해석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서 야권의 개편 못지않게 여권 내에서도 엄청난 변화와 분열이 예상된다. 그 첫 포문을 임 전 실장이 연 것으로 풀이된다.

임종석의 계산법, 투표율 낮은 보선에선 지지층만 투표장 나오면 승리?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재결집을 위한 승부수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임 전 실장은 “박원순 시대의 서울이 보수인사가 시장을 담당했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도층이나 보수층이 ‘2차 가해’라고 맹비난을 해도 ‘집토끼’만 확실하게 잡으면 선거승리가 가능하다는 계산법인 것이다.

평일에 치뤄지는 보궐선거의 특성상 지지층만 투표장에 나와도 여론조사 흐름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즉 임 전 실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소극적인 지지층은 어차피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 박 후보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임 전 실장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박 전 시장에 대해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에 비해 박 시장 시절엔 안전과 복지가 두드러졌다”며 “아픔과 혼란을 뒤로하고 성찰과 평가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뉴타운 개발과 도심 초고층화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토목 행정은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의 상징”이라며 “거기에 20개가 넘는 자율형사립고를 허가해 일반고를 무력화하고 고교교육 서열화를 악화시킨 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임 전 실장은 “그의 관점과 철학이 서울의 요구를 모두 채우지도 못했고 때론 지나치게 고집스러워서 세상물정 모른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며 “아픔과 혼란을 뒤로하고 선거를 다시 치르는 이 시점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성찰과 평가도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한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 문제와는 별개로 그의 재임 시절 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뤄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앞서 23일 임 전 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은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이자 진취적인 사람이었다”며 “그의 열정까지 매장되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해 ‘용비어천가’ 논란이 일었다.

조국 등 강경 친문 세력은 임종석 발언에 ‘좋아요’ 눌러

이 글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조한기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문대림 전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 등이 '좋아요' 혹은 '슬퍼요'를 누르며 공감을 표했다.

23일 불거진 임 전 실장의 돌발 발언에 민주당 내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박원순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습하던 참에 임 전 실장의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민주당 책임론'이 재차 부각됐고,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자 당 지도부와 박영선 후보가 공식 사과를 했다. 이후 박 후보 캠프에서 뛰던 이른바 '피해호소인 3인방' 남인순, 진선미, 고민정 의원까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임 전 실장은 24일에도 박원순 재평가를 강조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임종석 페이스북 캡처]

정의당, “민주당은 2차 가해가 선거전략이냐” 맹비판

정의당마저도 임 전 실장의 발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2차 가해가 선거전략이냐"면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어떤 이유로 치러지는지 모르지 않을 터인데 선거를 목전에 두고 대놓고 2차 가해를 하는 것은 매우 악의적"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통해 "임종석 전 실장이 용산공원 의자에 '박원순'이라는 이름 석 자를 새기고 싶다고 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치가 떨리는 언행이요, 만행에 가깝다"고 맹비난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 승리가 아무리 중요해도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며 임 전 실장을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사람들이 박영선이 시장 되는 것을 원하지 않나 봐요. 선거 프레임을 박원순 복권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니"라고 비꼬았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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