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진영 인사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출간했을 때 통쾌하기는커녕 짜증이 났다. 이제 우익은 이런 것까지 빼앗기는구나. 물론 현 정권이 우익만 괴롭힌 건 아니고 전 국민을 달달 볶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애초 타깃은 우익이요 나머지는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 부수적 피해)의 성격이 짙은 것 역시 사실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가해자 측 일부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돌아섰고 그걸 보고 피해자들이 좋다며 박수를 치는 꼴이다. 부끄러웠다. 창피했다. 김종혁이 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그래서 반갑고 고맙다. 중앙일보 출신으로 JTBC에서 오랫동안 앵커를 맡았던 김종혁은 귀족 진보 시대에 골병이 들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댄다. 솔직히 모르는 내용,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총정리에 가깝다. 그러나 꿰어야 보배다. 무작정 사실만 나열한다고 끝이 아니라 그게 논리적이고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어야 그때부터 제대로 된 비판이다. 그런 면에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다시 한 번 반갑고 두 번, 세 번 고맙다.

귀족 진보의 시대

첫 장은 ‘귀족 진보의 시대’다. “악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뿌리내린다.”라는 조지 브로드스키의 경구로 시작하는 이 장은 귀족 진보를 궤변론자이자 언어의 보편성을 파괴하는 인간들로 규정한다. 정말이지 5년 동안 지겹게 들었다. 말이 말을 먹는 소리, 말은 말인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해서 절대 안 되는 소리 등등. 가령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한밤중에 컴퓨터를 바꿔치기한 게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존이라는 설명에서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재능의 한계를 느낀다. 그런 위대한 논리를 개발한다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타고나는 천부의 영역이다. 보통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구사하지 못할 언어의 영역을 이 귀족진보라는 분들은 자유자재로 누비고 마르지 않게 쏟아낸다. 보좌관과 접촉한 사실이 없었다며 수십 번 부정하더니 보좌관에게 전화번호를 전달했다는 증거가 나오자 그게 지시는 아니라는 말도 충격이었다. 때려놓고 폭행은 아니었다, 훔쳤지만 도둑질은 아니었다와 하나 다를 게 없는 이 말은 논리의 보편성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논리의 보편도 우스운 사람들에게 언어의 보편성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호소인’으로 둔갑했다. 안다.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진 무죄 추정의 원칙 어쩌고저쩌고. 그러나 그건 법률의 영역이고 일반인들의 정서와 언어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을 귀족 진보라고 이름 붙였나보다. 귀족들의 언어는 일반인의 언어와 다르니까. 일반인의 유치한 언어와 논리와 언어의 보편성에서 완전히 해방된 귀족들의 언어는 절대 같을 수 없으니까.

두 번째 장의 제목은 ‘골병드는 대한민국’이다. 100% 동의한다. 현재 대한민국 각 부문 별 상황은 둘 중 하나다. 이미 망했거나 아니면 망하고 있거나. 저자는 구체적으로는 원전과 부동산을 든다. 우리의 에너지 정책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쉬운 길 놔두고 험한 산에 새로 길을 내가며 갈 수 있는 한 최대한 어렵게 가고 있다. 그렇게라도 산을 넘으면 다행이다. 방향을 잘못 잡아 산을 넘어봤자 난데없는 곳이 나온다. 가까운 후배는 이혼 직전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무렵 아파트를 사려다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말에 조금 기다려 보자고 한 게 화근이었다. 아시다시피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고 후배의 아내는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났다. 당시 살 수 있었던 아파트에 이제 그 돈으로는 전세도 못 들어간다. 어디 한 두 사람 이야기일까. 단지 원전과 부동산 문제뿐일까. 두 개의 장이 더 있지만 책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으니까.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용기를 내자고 한다. 주눅 들지 말고 패배의식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제대로 된 보수의 길을 찾아가자고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살짝 추상적이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 뭐부터 해야 하나. 저자 입장에서 하기에 겸연쩍은 말을 대신 해드린다. 무조건 이 책을 사셔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보다 훨씬 많이 팔려야 한다. 베스트셀러에 올라야 하고 서점마다 쌓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이슈가 된다. 그래야 사회적 어젠다가 된다. 마침 서울과 부산의 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다.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 최적의 상황이다. 압도적인 베스트셀러의 제목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것보다 더 좋은 선거 슬로건이 있을까. 그게 서울과 부산에 살지 않아 투표권이 없는 분들이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이다. 이미 사셨다면 몇 권 더 사시라. 주변에 나눠주시라. 저자는 위축되지 말고 보수 커밍아웃을 하자고 한다. 그 커밍아웃을 이 책을 나눠주는 것으로 하시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두 번 다시 경험해야 하지 말 나라로 확실히 규정하고 이 참에 반드시 바꿔야 한다.

* P.S 저자가 인세 욕심에 이 책을 썼으리라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수익이 많이 나면 보수주의 민간 연구소 정도는 세우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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