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항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제 왕정을 다시 세우자는 이,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자는 이 모두를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리는 만행이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펜앤드마이크 본사가 위치한 이곳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홍익빌딩에서 불과 십 수 미터(m) 떨어진 곳에 충정공(忠正公) 민영환(1861~1905)을 기리는 조형물이 서 있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 광무제(고종)의 사촌형제로서, 1905년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 민영환 그 자신이 자결로써 생을 마감한 바로 그 장소다.

국가보훈처가 운영 중인 ‘공훈전자사료관’에 공개된 독립유공자 공적조서(功績調書) 내용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962년 민영환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追敍)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되며, 대한민국장은 그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이다. 즉, 민영환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있는 인물임을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다.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했음을 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제정한 헌법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임시헌장과 대한민국헌법은 공(共)히 대한민국의 정체(政體)를 ‘민주공화제(국)’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영환이 목숨을 버려가며 지키려고 했던 대한제국은 오늘날 헌법에 해당하는 ‘대한국 국제(國制)’에서 대한제국의 정치 체제를 “이전부터 오백 년간 전래하시고 이후부터는 항만세(恒萬歲)에 불변하오실 전제(專制) 정치”(제2조)로 규정하며 황제에게 무한한 군권(君權)을 부여했다. 민영환이 지키려 한 체제가 ‘민주공화제(국)’이 아니라 ‘전제군주정’이었음은, 그가 충성을 다한 대상은 각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가운데 권리·의무의 관계로 맺어진 시민(市民)이 아니라 유교 질서의 최고봉에서 어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황제였음은 자명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감히 민영환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반드시 환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는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공로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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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공 민영환을 기리는 조형물의 모습.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해 있다. 2021. 3. 15. / 사진=박순종 기자

문제는 이런 식으로 독립유공자 목록에 오른 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훈전자사료관’에 등록된 독립유공자 수는 2021년 3월15일 기준 1만6685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에는 이승만(1875~1965) 초대 대통령과 같이 명백하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건국을 목표로 활동해 온 인물이 있는가 하면 좌익 아나키스트 무장 조직인 의열단(義烈團) 단장으로서 광복 이후에는 북한 정권 수립에 관여하며 한반도에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려 한 김원봉(1898~1958)과 같은 인물도 있다. “김원봉이 꿈꾼 조국(祖國)이 과연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같은 것이었을까?”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결단코 “아니오”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이승만과 김원봉을 같은 독립유공자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나는 자유·우파 세력에 독립유공자 목록에 오른 1만6685명의 인물을 전수 조사하는 사업을 벌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 ‘민주공화제(국)’ 건설을 위해 노력한 이들을 제외하고 왕정복고를 주창한 이들 또는 좌익용공 세력에 가담한 이들은 독립유공자 목록에서 전부 제거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독립유공자는 ‘항일운동’을 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이는 모두 ‘독립’이라든지 ‘광복’이라든지 하는 말의 개념에 관한 명시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건국’의 동의어요, ‘광복’의 동의어인 ‘독립’—독립유공자는 마땅히 ‘대한민국 건국’에 공을 세운 이가 누려야 할 칭호여야만 한다. 단순히 ‘항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제 왕정을 다시 세우자는 이, 공산주의 정부를 세우자는 이 모두를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리는 만행이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일은 독립유공자의 정의(定義)에 대한 재검토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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