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시즌이 온다...세월호, 5.18, 노무현, 6.15
언제까지 5.18을 좌파의 전유물로 남겨둘 것인가
좌파 관점에서도 전두환에 대한 재평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좌파의 전유물이 된 5.18에서 우파의 지분을 확대하는 게 급선무
우파는 혐오와 배제 일변도로 5.18을 대하는 것부터 버려라
반기업·반시장·반자본주의·반대한민국 진영 분열시키려면 5.18과 좌파를 분리시켜야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4월부터 광주광역시에는 다양한 기념식이 열린다. 세월호 추모 행사가 그 출발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전교조 등 광주의 교사들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각종 추모 행사에 동원하곤 했다. 광주는 어느덧 세월호의 성지 비슷한 위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세월호 행사는 메인이벤트인 5.18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다. 5월 그날이 다가오면 전국에서 추모객이 몰려오고, 정치권 인사들은 5.18의 의미를 기리는 메시지를 발표한다. 광주가 전국적인 도시가 되는 행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도 5월 23일이어서 ‘가신 님’들에 대한 추모와 적폐세력(?)들을 향한 분노를 끌어내는 데는 최적의 시간 배열이다. 이어서 6월이 오면 6.15 남북공동성명이 지닌 평화와 민족화합의 메시지가 강조되면서 주요 행사가 마무리된다. ‘건국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6.25도 비슷한 시기에 다가오는 기념일이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기념 일정의 핵심은 역시 5.18이다. 그럼에도 5.18 행사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5.18의 의미가 국가적으로 인정되고 심지어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5.18 묘역에 찾아와 무릎을 꿇어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성립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는 보수우파 시민들이 5.18의 의미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쪽자리 5.18’은 광주시민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보수우파 진영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합의와 화해에 이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5.18과 건국, 산업화 등이 모두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5.18 평가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전두환 등 신군부가 무리한 진압에 나섰던 배경이다. 좌파 진영에서는 전두환이 극악한 살인마라는 결론에서 5.18의 해석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5.18의 실체적 진실의 규명에도, 역사적 화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분석의 틀이 필요하다.

1980년 당시 신군부는 일부 정치군인의 소그룹이 아니었다. 전두환 등 신군부 주역들이 박정희 정권에서 가졌던 위상도 그렇지만, 5공화국 성립 과정에서 재계와 관료집단, 언론이나 학계 등이 보여준 협력적인 태도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즉, 신군부는 대한민국 주류 우파 진영의 대표라는 위상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1980년 상황에서 이들 주류 우파 진영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 이후 리더십 공백을 신속하게 메울 수 있는 차세대 주자들을 세우고, 외교와 안보 및 국내 정치 경제 상황을 안정화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남북의 적대적 분단이라는 구조 위에서 1970년대의 베트남 공산화와 오일쇼크 등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주류 우파들이 박정희의 유고와 국내의 정치 사회적 혼란에서 느꼈을 공포와 혼란을 고려하면 당시 그들의 안정화 욕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의 창출과 이전이 불가피한데, 이런 경우 주류 세력은 최대한 신속하게, 혼란과 피해를 줄이면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게 된다.

전두환은 그러한 이행의 책임자였다. 그런 이행 과정에서 피해와 유혈이 발생했다고 해서 그걸 악의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것은 편협하고 단편적인 시각이다. ‘전두환 살인마’ 주장은 그런 오해와 왜곡을 초래하는 악의를 담고 있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의도적으로 학살할 계기나 배경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의 봄’ 불과 몇 달 전 박정희 정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부마항쟁이 광주 유혈 진압에 끼친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부산과 마산 일대의 파출소와 방송사, 구청, 세무서, 전화국 등이 파괴되고 경찰차 등이 불탔다. 경찰 병력만으로 수습이 불가능해지자 청와대는 공수부대 투입을 결정했다. 당시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 이 결정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부대 투입으로 부마항쟁은 빠르게 수습 단계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이 경험이 신군부측에 남긴 교훈이었다. “소요사태를 가장 빠르게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는 수단이 공수부대 투입”이라는 교훈이 신군부 핵심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신군부는 주로 영남 출신 정치군인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한계이자 비극이었다. 즉, 부마항쟁과 광주 5.18의 차이를 이해할 인식이 결여돼 있었던 것이다. 1960~1970년대를 관통했던 호남의 상대적 소외감과 피해의식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조직했던 김대중의 영향력 등을 신군부는 간과했다.

그들은 부산과 마산처럼 광주에도 공수부대를 투입하면 소요사태를 신속하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것이 5.18의 참상으로 이어졌다. 호남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판단 착오가 불러온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걸 살인마의 의도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두환에 대한 재평가는 진보의 관점에서도 필요하다. 전두환의 5공화국은 5.18의 후유증 때문에 정치적으로 비하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박정희 체제의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요소를 대폭 완화한 정권이라고 볼 수 있다.

통금해제, 중고등학생 교복 및 두발 자율화, 컬러TV 방송 허용, 프로스포츠 시대 개막, 국가보안법의 연좌제 폐지 등 사회적 유연화와 함께 경제에서도 수입 자유화와 개방과 경쟁,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는 원칙을 강조했다. 최초의 평화적 정권 이양으로 이어진 6.29 선언은 어느 날 평지돌출로 이루어진 결단이 아니라 5공의 전반적인 유연화 개방화 기조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두환 살인마’ 설이 좌파가 5.18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메뉴라면, 북한군 투입설과 폭동설 등은 우파가 5.18을 비하하는 무기라고 할 수 있다.

5.18 당시 북한군이나 북한 정권이 사태에 일정하게 개입했을 가능성을 전면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광주 전남의 고정간첩 등이 활동했다는 정황 증거도 존재한다. 하지만, 몇백 명에 이르는 북한군이 광주에 나타나 무장 투쟁(?)을 벌였다는 주장은 ‘전설 따라 삼천리’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무엇보다 ‘광수 몇 호’ 운운하는 지만원의 주장은 근거를 잃은 지 오래다. 황장엽이나 1980년 당시 대여섯 살이던 인물까지 북한군으로 우기다가 망신을 당한 상황에서도 우파들이 지만원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은 진영 전체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북한군 투입설은 우파 진영이 광주와 호남에 대해서 품고 있는 뿌리 깊은 적대감을 드러낸다. 5.18에 반대하기 때문에 호남을 비판하기보다는, 호남을 미워하기 때문에 5.18까지 폄하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북한군 투입설은 5.18의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5.18과 호남을 증오하는 우파의 정치적 속살을 드러내는 역기능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5.18이 좌파의 전유물이 되고, 좌파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가장 결정적인 자산이 된 것에는 우파의 책임이 적지 않다. 즉, 5.18을 호남 혐오에 동원하는 바람에 광주와 호남이 좌파와 손잡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얘기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원래 북한군 투입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했다가 자서전에서는 그런 의혹을 지지한 것도 우파들의 이런 분위기에 휩쓸린 결과라고 본다. 전두환이 구체적인 증거가 아닌 막연한 짐작을 내세워 북한군 투입설에 뒤늦게 합류한 것은 전두환 개인에게도 그렇지만 우파 진영 전체에도 불행한 결과이다.

우파와 좌파가 5.18에 대해 견해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싸웠고, 애국가를 불렀으며, 북한에 대해 ‘김일성은 오판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으며, 심지어 거동수상자를 잡아 계엄군에게 넘기기도 했다는 사실을 덮어버리는 데 있어서는 좌우가 일치 협력한다. 당시 광주에서는 부상자를 위한 헌혈 행렬이 이어지고 행정과 치안 공백 상태에서도 큰 사건사고가 없었다.

이는 5.18 당시 투쟁에 참여한 광주시민들의 결정적인 동기가 대한민국 헌정수호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당시 광주시민들은 신군부의 개입으로 ‘서울의 봄’ 즉 민주화가 무산되는 등 헌정질서가 무너진 것에 대해 저항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12.12로 권력을 틀어쥔 신군부보다 광주시민들 쪽에 헌정수호의 명분이 더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파들이 혐오와 배제 일변도로 5.18을 대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무엇보다 5.18은 1980년 이후 40여 년에 걸쳐 이미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었다. 이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80년 5.18까지의 32년보다 더 긴 세월이다. 이 거대한 세월 동안 축적된 정치적 상징자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그런 시도는 우파 진영 전체를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구제불능의 퇴행세력으로 낙인찍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이다. 그보다는 5.18에 내재된, 대한민국 헌정질서 수호의 노력이라는 우파적 가치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좌파의 전유물이 된 5.18에서 우파의 지분을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처럼 5월 묘역에 가서 무릎을 꿇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좌파에 의해 오염되어 왔던 5.18의 부정적인 유산에 대해서도 냉철한 비판이 필요하다. 특히 온갖 부정적인 사건과 비극을 5.18의 상징자산과 결합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세월호가 대표적이다. 5.18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사건이지만 전국민적인 추모 정서를 자극하는 비극성을 활용하기 인해 좌파들이 적극적으로 5.18과 결합시켰던 것이다. 5.18 행사에 세월호 유족들을 초대해 상석에 앉혔던 것도 그런 의도를 보여준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반기업 반시장 반대한민국 가치를 내세우는 세력의 집권이었고, 결국 성공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총체적인 폭압과 국정 파탄은 그 결실이다.

지금 광주에서는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의 재개발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아파트 개발 등 상업용지로의 활용인지 아니면 역사적 유물로서의 보존 가치에 방점을 둔 재개발인지를 둘러싼 대립이다. 코스트코 입주 무산, 광천동 신세계 증축 무산, 첨단지구 빅 마트 무산 등 광주에서 기업 활동이 전개되려는 조짐만 보여도 재연되는 사태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시민단체들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불만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골목상권 보호, 친환경 개발, 대기업에 의한 시민재산 침탈 방지 등을 내세운다. 그 결과 광주시민들의 상업시설 이용 중 45% 가량이 호남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통계도 있다.

광주의 저개발과 낙후로 인한 피해자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청년들은 해마다 5천 명씩 일자리를 찾아 광주를 떠난다. 전국 광역시 가운데 광주가 소멸 1순위라는 전망과 함께 ‘광주광역시? 차라리 광주군으로 돌아가자’는 자조섞인 한탄도 나온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광주의 쇠락과 광주시민들의 불편을 먹이 삼아 밥벌이를 하고, 정치적으로 출세길을 찾아간다.

더욱 심각한 것은 광주에 기반을 둔 좌파들이 집권하면서 이런 광주의 분위기, 광주의 기준이 대한민국 전체를 잠식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호남화·광주화’라고 할만한 현상이다. 박원순의 서울시정 9년 동안 서울시의 주택난이 구조화된 것도 크게 보면 광주화 현상의 일환이다. 지금 전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LH사태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 5.18과 좌파의 결합이 놓여 있다. 5.18의 가장 큰 후유증은 광주를 거의 영구적으로 반기업 반시장 반자본주의 반대한민국 진영으로 묶어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안된다.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수호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5.18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광주와 호남, 5.18을 반대한민국 좌파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노력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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