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교수.

이번에도 죽지도 않고 또 돌아왔다. 각설이 타령이 아니라 공영방송 타령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은 극심한 정쟁의 장이 됐었다. 선거에 승리해 집권한 정파들은 한결같이 거의 우격다짐으로 공영방송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파행을 반복해왔다. 이번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이전 어떤 정권보다 더 강하고 집요하게 방송을 비롯한 언론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이전 정권들과 달리 정권 초기가 아니라 거의 끝물에 공영방송 타령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2019년 중반에 터진 ‘조국 사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검찰개혁에 매달리다 실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 말기에 공영방송 거버넌스 – 말이 좋아 거버넌스지 공영방송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정략적 대안들 – 개편과 관련된 여·야 방송법 개정안들이 발의되어 논의되고 있고 정부·여당은 KBS수신료도 인상해 주겠다고 한다.

여·야가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들을 보면, 현 정권 이후에도 자신들의 KBS와 MBC에 대한 통제력을 담보 혹은 더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에서 자기 정파의 지분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여당 발의 법안들이 주장하는 ‘공영방송 이사추천위원회’나 ‘사장추천위원회’ 는 국민대표성이라는 형식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각종 시민단체와 공영방송 내부종사자 지분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 안은 공영방송 이사를 여·야가 거의 동수로 추천해 집권 여당이 사장 임명에 필요한 2/3 특별다수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을 정치판으로 만들어왔던 정치권이 공영방송을 더 정치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서 승리한 정파에서 주는 일종의 전리품처럼 여겨졌던 공영방송 인식이 더욱 고착되게 될 것이다.

솔직히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여·야 정파가 모두 깨끗하게 철수하면 된다. 지금처럼 공영방송을 국민들의 의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보는 낡은 인식을 정치권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한 공영방송은 존재 의미도 없고 더 이상 생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공영방송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지만 한마디로 ‘정치권력과 상업적 이해로부터 독립되어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 자체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실제 제도와 운영방식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어쩌면 완벽한 공영방송 제도란 원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영국의 BBC 거버넌스도 여러 차례 변화되어 왔다. 최근에는 2004년 출범했던 ‘BBC트러스트’를 해체하고, 2017년에 ‘BBC이사회’를 부활하고 규제는 방송통신위원회(Ofcom : Office of Communication)가 담당하는 이원체제로 전환했다.

제도적으로 볼 때 BBC의 공영방송 거버넌스가 완벽하다고 하기 어렵다. 공영방송에 대한 외부규제는 독립성을 약화시킬 수도 있고, 이사회에 내부구성원들이 다수 포함된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BBC가 한 세기 이상 공영방송의 아이콘이 되어왔던 배경에는 합의의 정치문화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영방송은 제도적 완벽함보다 다양한 이해집단들간 합의 위에 존립하는 관념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이 정치적 불공정과 방만한 경영, 자사이기주의 같은 적폐 중에 적폐가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합의와 상호 존중의 정치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21세기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의 거센 도전과 최근에는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신종 미디어들의 공세로 공영방송 입지가 급속히 좁아지고 있다. 평균 시청률 30%를 상회하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은 고사하고, 1개 유튜버보다도 못한 시청률과 광고수입을 올리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30대 이하 세대들은 방송 자체를 아예 보지 않고 있다. 그러니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 것인지, 정치인들이 공영방송을 왜 그렇게 장악하려고 하는지 영문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없다.

실제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유용한 수단인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혹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방송을 장악해야 진정 권력을 장악할 있다는 5.16 군사혁명 시절에 머물러있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권력 = 언론장악 = 방송통제’라는 낡은 인식에서 나오는 일종의 관성적 행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정치인식과 정치문화에서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공영방송이 제대로 정착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분명 이대로 간다면 젊은 세대들 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공영방송은 조용히 잊혀져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KBS와 MBC의 이사회 지분과 사장 추천을 놓고 벌이고 있는 여·야간 이전투구는 대부분 국민들의 관심밖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시청률이 바닥을 쳐도 ‘종사자들의 종사자들을 위한 종사자들에 의한 그들만의 공영방송’처럼 말이다.

지금 공영방송이 살아나는 길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왜 필요한 방송인가를 확신시킬 수 있는 처절한 자기반성과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죽지도 않고 다시 돌아온 각설이 타령 가지고는 더 이상 생존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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