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 칼끝을 피하려고 ‘경찰 파쇼’를 불러들이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와 함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 수리가 지난 4일 동시에 이루어짐으로써, 여권 강경파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 종착역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개혁동반자 김인회, “검찰개혁 편중하면 경찰권력 비대화” 경고

윤 전 총장과 신 전 수석의 사표를 함께 수리한 것은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수사청’)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검찰은 기소권만 갖고, 수사권은 다양한 경찰조직으로 남김없이 이관될 수밖에 없다.

유일하게 수사청 조기설치를 밀어붙이는 흐름에 반기를 들어왔던 윤 전 총장과 신 전 수석이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제동장치도 부서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선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문 대통령은 불과 수일 전만 해도 속도조절론을 펴왔다. 갓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국가수사본부의 안착 등과 같은 기존 검찰개혁 마무리에 주력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돌연 여권 강경파에 유일하게 대항하던 윤석열과 신현수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면서 레임덕을 깊게 만들던 여권 강경파에 대한 ‘백기투항’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대는 검찰조직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당했거나 무릎을 꿇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 경우 말고는 속도조절론을 강조하다가 돌연 윤석열과 신현수의 사표를 수리한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10년 전에 문 대통령과 함께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마련했던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조차도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에만 편중함으로써 경찰 파쇼를 초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2018년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 권력기관들에 대한 ‘균형개혁’에 합의를 했는데, 검찰개혁에만 몰두함으로써 경찰권력이 비대화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건국 이래 최대 권력을 손에 쥔 경찰조직

이에 따라 경찰은 건국 이래 유례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하게 됐다.

신설된 국가수사본부는 기존의 경찰청 수사국의 업무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까지 이관받았다. 수사경찰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과거 국정원의 기능까지 담당하는 것이다.

수사청이 신설될 경우, 현재 검찰이 가지고 있는 6대 범죄(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수사권마저 수사청으로 이관된다.

기존의 경찰청 이외에 국가수사본부, 수사청까지 설치해 검찰권력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문 대통령의 ‘검찰 죽이기’는 과거 어떤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자행된 적이 없는 행태이다.

검사는 종종 권력에 반기를 들지만 경찰은 절대복종

더욱이 수사권을 한 손에 쥔 경찰은 ‘군대식’ 상명하복 조직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검찰도 위계질서가 분명하지만 검사 개개인이 독립된 사법기관이라는 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권력이 잘못된 지시를 할 경우 항명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때문에 권력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검사가 항명했던 경우는 적지 않다. 반면에 경찰이 상부나 권력층의 지시를 거부했던 사례는 거의 없다.

모 법조계 인사는 “검찰은 개별 검사가 사법적 판단에 의해 수사를 하고 공소를 담당한다. 조직이라는 바탕이 있지만, 개별적인 사법적 판단이 존중된다”면서 “하지만 경찰은 군대 조직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상명하복 조직이기 때문에 경찰의 비대화는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인회 교수, “조국 등과 합의됐던 권력기관 균형 개혁원칙 무너지고 검찰만 개혁”

문 대통령에게 검찰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진 김인회 교수조차도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경찰 권력의 비대화는 ‘경찰 파쇼’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을 정도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11년 문 대통령과의 공저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김 교수는 5일 보도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검찰 파쇼’를 피하려다 ‘경찰 파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중수청(수사청) 논란은 당연히 검찰 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면서 “여당이 추진하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라는 큰 방향은 검찰 개혁이란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만 지금은 검찰 개혁 제도화 안착에 힘쓸 때다”고 말했다. “지금 검찰 개혁이 일정 부분 마무리됐다. 이 안정화 작업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수사청 설치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중대범죄를 수사할 수사청이 왜 필요한지 그 필요성을 증명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다”면서 “수사청이 설치되면 검찰이 보유한 6대 범죄 수사권이 이관되는데, 왜 필요한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에 공감을 표명한 것이다.

김 교수는 “권력기관 개혁이란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법원 등을 함께 해야지 검찰 개혁만 한다고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한쪽만 개혁하면 다른 한쪽에 권력이 쏠려서 균형이 깨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8년 6월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검찰 개혁의 핵심 과제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경찰 개혁 핵심 과제인 자치경찰제를 동시에 실시한다’고 합의했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검찰 개혁에만 치중했고 결국 균형이 무너졌다”고 단언했다.

조국 사태로 생각이 달라진 문 대통령, 균형개혁보다 ‘충성스런 경찰 권력’이 절실?

김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 대통령과 권력핵심들은 ‘권력기관 균형개혁’이라는 당초의 구상을 깬 것이다. 이는 윤 전 총장의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수사’가 계기가 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정권에 대한 수사’를 당부했지만, 눈치 없이 뼛속까지 검사인 윤 총장은 조 전 장관에까지 칼끌을 들이댄 것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에게는 사법적 판단을 하는 검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경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절대 수사하지 않고, 명령에 따라 반대쪽 진영에 대해서만 수사할 기관이 경찰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추미애 전 장관의 사퇴로 추-윤 갈등이 봉합되었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검찰의 수사권 박탈’에 있음을 알고, 연초부터 계속 사임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내가 물러나면 반헌법적 사법개악 그만 둘 것 아니냐”

윤 전 총장이 직접 밝힌 사퇴의 변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걸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특히 여당이 수사청을 만들어서 6개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권마저 박탈하려고 하는 걸 직을 걸고라도 막겠다”는 것이었다. 수사청 설치를 통해 헌법에 보장된 검찰의 수사권을 막으려는 것 자체를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의 파괴로 받아들인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사퇴에 대해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윤 총장은 자신이 물러남으로써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반헌법적 사법개악을 그만두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이 지인에게 ‘내가 밉다고 검찰조직을 해체하려는데, 그렇다면 내가 떠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그만두면 검찰을 해체하려는 여당의 입장이 달라질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여당 검찰개혁 TF팀장 박주민, “속도조절은 없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의 판단과 달리,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여권 강경파의 움직임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당 내에서 검찰개혁 TF 팀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은 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 전 총장의 사퇴와 관련해, 여권이 수사청 설치를 비롯한 검찰개혁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일부 관측에 대해 "인위적인 속도 조절은 없다"고 밝혔다. 일정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도 "3월 중 발의, 6월 중 처리라는 일정은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의견수렴과 세부적으로 다듬는 시간을 어느 정도 소요할지, 이런 부분이 좀 미지수"라며 "그런 작업을 탄탄하고 담담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고 여지를 남기는 입장을 밝혔다.

박 의원은 수사청 법안은 이미 성안 작업이 끝났지만 그것과 연결돼 있는 형사소송법이나 검찰청법 같은 후속법안들이 서로 모순 안 되게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가지고 당내에서 의견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발의 시점이 보궐 선거로 미뤄질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일정을 말하기는 애매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수사와 기소의 분리, 또 수사권남용의 방지를 위한 여러 기관들의 상호견제시스템 구축, 이런 것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논의돼 온 문제이다. 윤석열 총장 때문에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윤석열 총장 사의가 이 논의를 진행하는데 영향을 미치거나 그렇진 않는다"고 단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만들려는 ‘경찰국가’ 시대는 빠른 물살을 타고 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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