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 국사교과서 연구소 소장, 호사카 전 세종대 교수가 엮은 자료집 검토
당시 일본인 軍위안부 모집업자가 작성한 계약서 양식 실려 있음 확인돼
김 소장, "위안소는 민간인이 경영, 軍이 관리·감독...강제동원 있었다고 볼 수 없어"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2021. 3. 5. / 사진=박순종 기자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2021. 3. 5. / 사진=박순종 기자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위안부 모집 업주와 맺은 구체적 계약 내용을 알 수 있는 계약서 실물이 확인됐다. 이는 ‘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각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것이다.

지난 1일 호사카 유지 전(前) 세종대학교 교수 등 36명의 각계 시민들은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의 존 마크 램자이어(램지어) 교수의 최근 논문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과 관련해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은 학문의 자유라는 탈을 쓴 인권침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작성해 하버드대학 총장과 램자이어 교수 논문의 출판을 예정하고 있는 학술지 ‘법경제학국제리뷰’(IRLE)의 편집장 앞으로 보냈다.

해당 성명에서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성(性)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여성들이 끌려가거나 다른 명목에 속아서 연행되어 도망갈 수 없는 환경에서 성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 계약 내지는 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호사카 전 교수가 엮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자료집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 1》(2018, 황금날)에는 실제 ‘일본군 위안부’ 모집업자가 작성한 계약서의 내용이 실려 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이를 찾아낸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이다.

‘계약증’(契約證)이라는 제목의 해당 문서에는 가업연한(稼業年限·계약기간)과 계약금, 근로장소, 위약시 이행사항 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특이사항으로 이 계약서와 함께 수록된 ‘승낙서’에는 계약서에서 언급한 ‘작부’(酌婦)가 ‘창기’(娼妓)와 동일하다는 점이 명기됐다. 이는 “일본 내에서도 위안소로 데려간 여성들은 ‘창기’가 아니라 ‘작부’(술을 따라주는 여성)라고 해서 ‘작부’ 계약을 맺게 했는데, ‘작부’는 ‘매춘부’와 달랐다”고 한 호사카 전 교수 자신의 주장과도 배치된다. ‘창기’란 ‘매춘부’를 뜻하는 말이다. 계약서에 딸린 승낙서에서 ‘작부’를 ‘창기’와 동일한 용어로 정의했음을 볼 때, 당시 ‘창기’와 ‘작부’가 모두 ‘동일하게 매춘부’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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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약서와 함께 수록된 ‘승낙서’에는 계약서에서 언급한 ‘작부’(酌婦)가 ‘창기’(娼妓)와 동일하다는 점이 명기됐다. 2021. 3. 5. / 사진=박순종 기자

이 계약서를 소개한 호사카 전 교수의 해설을 통해 해당 계약서와 관련된 구체적인 배경을 알 수 있다.

1938년 1월19일 일본 군마(群馬)현에서 중국 상하이의 현지 일본군 특무기관의 의뢰를 받은 위안부 모집업자 오우치 도시치(大內藤七)가 현(縣) 경찰에 체포됐다. 오우치를 체포한 경찰은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을 업자들에게 의뢰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 일본 고베(神戶)현 고베시에서 유곽(遊廓)을 운영하고 있던 오우치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일지사변(日支事變·중일전쟁)에 의한 출정(出征) 장병도 벌써 지나(支那·중국) 재류기간이 수개월이 되고 전쟁도 고비를 넘었기 때문에 일시 주둔 태세가 되면서 장교가 지나 현지의 추업부(醜業婦·매춘부)와 놀아 병에 걸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군(軍) 의무국은 전쟁보다 오히려 화류병(성병)이 무섭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군이 자신에게 위안부 모집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우치는 “영업은 우리 업자가 출장으로 가서 하므로 군이 직접 경영하는 것은 아니”라며 “위안소를 사용한 각 장병들이 (군이 발행한) 쿠폰을 제출하면 업자들은 쿠폰을 모아 이를 군에 다시 제출하고 군 경리(經理)로부터 그 사용대금을 받는 구조로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김병헌 소장은 “오우치의 증언을 검토해 보면 위안부의 모집과 위안소의 경영은 민간인이 담당했으며 군은 이를 관리·감독했음을 알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이 위안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만일 강제로 동원한 것이 사실이라면 일본군 위안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인 여성들도 역시 강제로 동원됐다는 논리인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오히려 군의 관리·감독 하에 있던 위안소에서 일한 위안부들은 보호를 받은 반면, 일본군의 관리 사각지대에 있던 매춘부들은 인권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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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전 세종대학교 교수가 엮은 ‘일본군 위안부’ 자료집에 실린 계약서의 일본어 원문의 내용.(출처=여성가족부 814아카이브)

한편, 이번에 재차 확인한 계약서의 내용과 관련해 ‘일본군 위안부’ 계약 당사자의 도장이 찍힌 문서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계약 내지는 계약서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해당 계약서 갖는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를 격하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계약의 당사자 내지는 그의 유족들이 그들의 과거 치부를 증명하는 계약서를 8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도 낮고, 또 보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계약서 실물을 공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로서는 이 이상의 사료 발견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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