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속도조절’ 요구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여권의 움직임 가속화됨에 따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윤 총장이 자신의 거취를 걸고 공식 반대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시즌1’은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다. 공수처가 첫 수사를 하기도 전에 ‘검찰개혁 시즌2’인 수사청을 밀어붙이는 것은 윤 총장과 검찰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윤 총장과 검찰조직은 이 같은 친문 강경파의 광기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이 ‘문심(文心)’의 대변자 되는 블랙 코미디 가능성 높아져

윤 총장과 문 대통령이 한편이 돼서 친문 강경파와 맞서는 블랙 코디미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윤 총장이 ‘문심(文心)’을 지켜내는 ‘호위무사’가 되는 상황이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삼아 윤총장 죽이기에 전력투구할 때만 해도,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반대진영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문 대통령은 여권 내 권력집단 내에서 윤 총장과 비슷한 처지로 전락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윤 총장으로서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점이다. 7월이 임기인 윤 총장은 마지막 검찰총장이 될 운명에 처했다. 여당의 계획대로 3월 초 수사청 법안이 발의되고, 6월말 국회 통과까지 이뤄질 경우를 상정해서다.

검찰 내부에선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수사청’) 추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검찰 수사권을 6대 범죄로 축소한 지 겨우 두 달 만에 아예 검찰을 해체하려 드느냐”, “헌법이 보장한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은 형사 사법체계 무력화 시도”라는 등과 같은 반응 일색이다. 검찰에게 남아있는 6대 범죄 수사권 전체를 신설 수사청에 이관시킬 경우, 검찰은 기소만하는 공소청으로 전락하게 된다.

수사청과 관련해 따로 의견을 내놓지 않던 윤석열 총장은 여권의 수사청 신설 법안 추진에 대해 ‘불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여권이 수사권 폐지를 밀어붙일 경우 ‘총장 사퇴’라는 최후 카드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총장 “내 목을 쳐라‘ 결단 임박?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은 여권의 수사청 추진에 대해 본인의 거취까지 걸고 반대에 나설지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청 신설이 단순히 ‘검찰 조직의 명운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변화시킬 중대한 사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송광수 검찰총장까지 소환하는 분위기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중수부 폐지가 거론되자,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이 “내 목을 쳐라”고 하면서 중수부 폐지를 반대했던 일화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송 총장의 결사반대로 참여정부는 중수부 폐지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 대선자금 특별수사가 개시돼, 안희정 전 지사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을 구속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 김진욱 공수처장 등 여권 일각서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지지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윤 총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이 주도하는 검찰개혁 시즌2에 끌려가기만 한다면, 검찰의 모든 권한이 뺏기도록 방치한 검찰총장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작년 추-윤 갈등으로 정권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금세 잊혀질 것이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윤 총장이 어떤 형식으로든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의 손에 남겨진 6대 수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일성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아직 윤 총장이 입장 표명을 한 단계가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수사청 신설을 통한 검찰 수사권 박탈(수사·기소 완전 분리) 추진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고, 법안의 구체적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여당 내에서는 이상민 의원이 처음으로 수사청 반대 목소리를 내서 이목을 끌었다. 이 의원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금 이 시점에 중수청(수사청)을 별도 신설하는 건 마땅하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잘 정착·운영되도록 정밀하게 집중관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범계 의원에게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 ‘수사권 안착’과 같은 입장이다.

이 의원은 "중수청이 신설된다면 국가 수사기능이 너무 산만하고 특히 수사기관이 너무 많고 난립돼 국민과 기업에 부담과 압박이 지나치게 가중될 것"이라며 "반부패수사 역량은 산일되거나 혼란스러워 저하될 수 있고 각 수사기관 사이의 관계도 복잡해 매우 혼돈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배제한다고 해도, 별도로 중수청을 신설할 게 아니라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에서 다루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공룡화를 막는 방법까지도 제시했다. “권한의 지나친 집중을 막기 위해 수사와 일반경찰 분리, 수사와 정보 완전분리를 함께 확실하게 조직적·제도적·기능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의원의 주장은 한마디로 ‘졸속, 부실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치열하게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김진욱 신임 공수처장도 2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수사청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갑자기 (제도가) 확 바뀌면 변론권 등에 영향을 받으며 국민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제도 개혁은 국민 입장에서 시간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수사청의 속도조절론에 힘을 실었다.

윤석열 목 치려고 수사청 졸속 설치?...최대 수혜자는 범죄자들

윤 총장이 비이성적인 광기에 휩싸인 친문 강경파의 기류에 맞서 직접 입장을 밝힐 경우, 그 시기는 민주당이 수사청 법안을 당론으로 확정해 국회에 발의한 이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빠르면 3월초가 점쳐지는 상황이다.

전직 고위 검찰 관계자는 여권이 수사청에 속도를 내는 이유에 대해 색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민주당이 수사청 추진에 속도를 내는 건 윤 총장 스스로 물러나도록 만들겠다는 의도이다. 지난해 말 추 전 장관의 동반 사퇴 시도가 실패하자, 새롭게 꺼내든 카드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직 차장검사도 이런 분석에 의견을 보탰다. “수사·기소 분리는 단순한 권한 다툼의 문제가 아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절차를 포함한 국가사법시스템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사청 졸속 추진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걸로 해석된다”고 했다. 따라서 윤 총장이 ‘총장직 사퇴의 최후 카드’를 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자회견 또는 검사 대상 강연 등을 통해 검찰이 왜 6대 범죄 수사에 대해서 수사권을 계속해서 가져야 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수사권 폐지의 최대 수혜자는 범죄자들”이라며 “검찰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검찰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는 검찰보다 국가수사본부나 수사청의 비대화된 권력이 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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