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BS 뉴스공장]검찰 검사장급 인사를 둘러싼 갈등으로 사의를 표명한 신현수 민정수석 사태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문 대통령의 주문과 당부를 깡그리 무시하고, 검찰개혁2로 갈 길을 가겠다는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다. 개혁의 대상인 검찰의 수뇌부도 어지럽긴 마찬가지다. ‘검찰의 실질적 2인자’인 이성윤 중앙지검장도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이렇게 복잡한 시국에 대해 친문 핵심인 김어준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국정현안마다 ‘지침’ 내렸던 김어준, 신현수 파동부터 침묵모드 시작

미묘한 국정 현안에 대해서 친문의 입장에서 ‘행동 지침’을 내려왔던 TBS <뉴스공장>의 공장장인 김어준은 22일부터 지금까지 별 말이 없다. 뉴스공장 방송을 열면서 시국 현안에 대해 짧지만 강력한 논평을 내놓던 ‘김어준 생각’이 잠잠하다.

월요일인 지난 22일은 신현수 민정수석이 4일간의 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재개한 날이었다. 모든 언론은 신 수석을 둘러싼 청와대에 주목하고 있었다. 신 수석이 사퇴를 반려할지, 아니면 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할지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22일 김어준은 군부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협박당하고 있는 미얀마 학생의 호소를 내보냈다. 지난 19일 양곤의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20 여명의 한국어전공 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아시아의 민주주의 선진국인 한국에 관심을 호소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미얀마 여학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김어준은 미얀마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라도 관심을 끊지 말아야겠다’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22일 김어준생각에서는 '19일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호소하는 여학생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사진=TBS 뉴스공장]

이틀이나 국내 현안 묵살한 채 미얀마 사태에 집중

23일에는 대통령이 백신 먼저 맞으라는 이슈에 대해서 나름 논리를 펴가며 문 대통령을 방어하기에 바빴다. 국가 정상이 백신을 먼저 맞는 경우가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에 한정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접종 대상자의 93.8%가 접종을 받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굳이 대통령이 먼저 맞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24일은 다시금 미얀마 양곤대 대학생의 호소를 내보냈다. ‘대한민국 국민들께서 우리의 호소를 귀담아 들어주시고 미얀마 국민들을 제발 도와주십시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얀마 국민들의 노력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십시오’라는 호소였다.

김어준은 “다른나라의 문제에 대해 연대해본 집단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 현대사도 만만치 않아서 우리 앞가림에 바빴다. 이제 그럴 여력이 있는 나라가 되었는데.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주문했다.

23일은 검찰개혁과 관련,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당정협의를 해서 “나는 아직도 민주당 의원이다”라고 말하며, 대통령의 뜻보다 당론을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날이다. 내각의 각료가 대통령의 뜻에 항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김어준은 24일 아침 방송에서 침묵했다.

22일 김어준생각에서는 '19일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호소하는 여학생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24일에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얀마 국민들의 노력을 응원해 달라는 미얀마 양곤대 대학생의 호소를 들려줬다.[사진=TBS 뉴스공장]

25일엔 갑자기 ‘우주로 눈 돌리는 정치’ 선동?

25일 아침 방송은 더 의외였다. 아예 시끄러운 지구를 떠나고 싶은 심정에서였는지, 우주로 눈을 돌리자는 발언을 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7번째로 자체 개발한 우주선 누리호에 대한 얘기며, 미국의 화성 탐사선 퍼시비어런스호가 화성에 착륙했다는 내용 등을 전했다. 퍼시비어런스호가 화성 대기권에서 담아왔다는 바람소리까지 들려줬다.

김어준은 “돈과 기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우주개발이다. 하지만 돈과 기술만 있어도 할 수 없는 게 우주개발이다. 우주개발에는 공동체 야망과 비전이 필요하다. 우주개발을 야기하는 정치가 이제는 필요하다”라는 말로 ‘김어준생각’을 끝맺었다.

김어준생각을 통해 그날의 주요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초대손님의 방향까지 정하던 방송의 틀을 고려할 때, 지난 4일간은 국내 정치와 완전 동떨어진 내용이 방송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 정‧ 청의 불협화음이 도를 넘어선 상황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미얀마 문제를 외면하자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국내 상황이 심각한데, 그건 외면하고 미얀마 문제만 부각시키는 것은 그동안 김어준의 행태에 비추어볼 때 좀 의외다. 김어준이 아무 말을 못할 정도로 당청 간 갈등이 심각한 모양이다”고 비판했다.

[사진=TBS 뉴스공장]

신현수 파동과 레임덕 거론되자, “전혀 문제 없다” 단언

‘김어준생각’이 끝나고 방송되는 아침뉴스 시간에 함께 진행하던 류밀희 기자가 신현수 민정수석 문제를 비롯한 정국 현안에 대해 발언하자,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신현수 민정수석 문제에 대해서는 “별 거 아니다. 청와대 내에서 수석이 사의를 표명할 수도 있고 그런건데, 그걸 두고 너무 크게 문제삼는 것 같다”라고 짧게 정리했다. 민정수석의 사퇴로 국정이 요동치는 것을 강건너 불구경하는 태도였다.

검찰개혁과 관련한 속도도절 문제로 레임덕이 우려된다는 류 기자의 발언에 대해서도 “레임덕을 만들고 싶어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그렇게 ‘대통령 패싱’이라면서 보도를 해대는 거다”면서 “4년차 대통령의 지지율이 견고한데 전혀 문제 없다”고 간단하게 정리를 했다.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피의자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더 황당한 입장을 표명했다. 윤석열 총장의 임기가 얼마 안 남은 검찰 내에서 임기말 현상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일축했다. “윤 총장 임기 이후를 생각하는 여러 갈래의 세력들이 있고, 그 중에 일부가 여론을 떠보는 기사이다.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을 했다.

검찰개혁과 관련된 속도 문제에 대해서 '레임덕을 만들고 싶어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대통령 패싱을 보수언론이 보도한다'며 일축했다. []
검찰개혁과 관련된 속도 문제에 대해서 '레임덕을 만들고 싶어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대통령 패싱을 보수언론이 보도한다'며 일축했다. [사진=TBS 뉴스공장]

이슈전환 노력하지만 뜻대로 안 돼?

검찰의 실질적 2인자이며 친여로 분류되는 이성윤 중앙지검장 문제는 윤석열 검찰총장, 신현수 민정수석, 박범계 장관까지 아우르는 이번 대혼란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 내 파벌 간 알력쯤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린다고 해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야권의 한 인사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당의 내홍이 심각하다고 본다. 친문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김어준마저 논평을 꺼리는 걸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가 복잡하다고 생각된다”고 평가하며 “김어준이 다른 이슈로 물타기를 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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