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친문(親文) 성향의 한 전직 정치인은 박 대통령이 ‘자기 권력을 위해’ 경제발전을 했다고 평하고, 보수 진영 지식인으로 불리는 한 정치학 교수는 ‘박정희 패러다임’은 끝났다고 했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박정희를 ‘용도 폐기’하고 있는 셈이다. 좌파들이야 원조(元祖) 반대세력이니 그렇다 쳐도, 보수 진영 내에서 박정희 패러다임의 현재 가치를 무시하는 행태는 ‘자멸(自滅)의 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독한 자기부정(自己否定)이요 자승자박(自繩自縛)이자, 이제 희미해져가는 아버지의 꿈과 어른의 정신을 미리 거세(去勢)해 ‘우리는 다르다’고 개혁을 가장(假裝)하는 어설픈 ‘살부(殺父)의 욕망’이다. 아버지의 시대를 잡아먹고 큰 후손의 정신은 기껏해야 무지향(無志向)이요, 무이념(無理念)의 맹탕이다. ‘이젠 낡아서 표가 안 된다’고 철부지처럼 소리 지르며 이승만·박정희의 무덤 위에 칼을 꽂고 ‘새로운 보수의 담론’을 외쳐본들 메아리도 남지 않을 것이 뻔하다. 보수는 진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처절히도 골몰(汨沒)하여, ‘보수 이념 제거’ ‘중도 좌파 동경’으로 종생(終生)을 고할 것인가?

박정희 정부가 혹독한 정치를 펼친 군사정권(軍事政權)이고 국가주도형(國家主導型) 개발담론(開發談論)을 고수한 독재정권이라고 하지만, 그 시절 관민단합(官民團合)의 기여와 어른 세대의 공로가 없었다면 나라 전체는 물론이거니와 보수 진영 역시 이나마도 남아 있지 못했다. 보수의 원류(源流) 가치인 자유주의(自由主義)와 시장경제(市場經濟)가 이 땅에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나라의 전체 기반을 다시 닦은 시기가 바로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지표 달성 중심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리더십과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정신개조(精神改造) 프로젝트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속성장(高速成長)을 이루었다. 자학과 포기와 나태로 얼룩진 세월을 걷어내고 자조·근면·협동의 새마을정신을 전파하여 국민과 사회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생기(生氣)와 활력(活力)을 불어넣었으며, 결과적으로 민생을 윤택하게 만들어 민심을 안정시켰다. 중화학공업(重化學工業)의 육성과 수출입국(輸出立國)의 실현으로 세계만방(世界萬邦)에 놀라운 이적(異蹟)을 보여줬으며, 일반 시민은 물론 기업인과 협력하여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자부(自負)와 긍지(矜持)가 어린 성공신화(成功神話)를 써내려가 드높은 국격(國格)을 떨치게 하였다. 이조(李朝) 500년의 사농공상(士農工商) 봉건질서와 허례허식(虛禮虛飾)을 타파하고, ‘기술·개발·과학·실용·경제·실리’의 패러다임으로 국가를 대개조(大改造)하여 사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진일보(進一步)한 근대화혁명(近代化革命)을 이루었다.

이 나라가 이처럼 일대혁명(一代革命)을 주도한 박정희 정부를 거치지 않고 그저 후진국과 개도국의 원조나 받아 연명하는 전후(前後)의 폐허(廢墟)에 그쳤다면, 오늘날 중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없었을 것이다. 이조 말엽의 당쟁사화(黨爭士禍)와 같은 당파적(黨派的) 내분(內紛)이 빈발하고 부정부패(不正腐敗)가 창궐하는 수라장(修羅場)이 됐을 것이다. ‘박정희 패러다임’ 즉 박정희식(式) 성장담론·경제발전·정신개조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가동됐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民主主義)’ ‘정당정치(政黨政治)’ ‘자치분권(自治分權)’ ‘민생개선(民生改善)’이 달성(達成)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폐기가 아닌, ‘부활’이 시급하다. 당금 집권세력의 정신세계는 한 마디로 ‘파락호와 백수건달’의 그것이다. 나가서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집안 재산 빼먹기에 급급하다는 거다. 나라의 앞날이야 어찌 되든 나랏빚이 늘든 말든, 5년 동안 혈세 낭비성 보여주기식 정책 강행으로 당장의 민심이나 얻고 생색이나 내자는 거다. 나라 곳간 채우기를 목표로 삼은 박정희 정부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성장보다 복지, 복지보다 퍼주기다. 복지도 박정희 정부의 자력갱생형이 아닌, 나라가 푼돈 쥐어주는 단기부조형에 그친다. 젊었을 때 돈 버는 법 안 배우고 나랏돈 빼먹는 정치꾼을 동경하며 일생을 데모 기획으로 일관한 ‘강경 운동권’들의 사고방식 그대로다.

엉겁결에 권세를 얻었더라도 무식을 자각하면 자기보다 더 배운 사람을 모셔다가 나랏일을 맡겨야 하는데, 그조차도 고집이 세서 안 한다. 대신에 끼리끼리 챙겨주는 동지의식(同志意識)으로 뭉쳐 고관대작(高官大爵)을 곶감 빼먹듯 한다. 국정은 길을 잃어 경제는 파탄 나고, 외교는 무능하며 북한엔 쩔쩔매고, ‘혁명’ ‘개혁’ ‘적폐청산’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이며 권력 누수(漏水) 막기로 5년 임기를 다 보냈다.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상의 삼권분립은 뼈다귀를 만들어 집 지키는 개들에게 던져주고, 자영업자는 못살겠다고 길거리에 나앉아도 비웃음 한 번 날려주면 그만이니, 덕분에 나라의 방향은 소주병 든 취객처럼 위험천만하게 비틀거린다. 협치(協治)와 국민 소통과 합리적 국정 운영의 약속은 ‘똥 묻은 휴지’가 돼 역사의 변기통에 던져진 지 오래다.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의 맹서(盟誓)는 정화조(淨化槽)에서 썩어간다. 이렇게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에서, 성공신화를 쓴 박정희식 국가 대개조 패러다임을 갈망하는 것이 정녕 무리란 말인가? 73년 고목(古木)을 갉아먹고 죽게 하는 애벌레들을 털어내고, 자생(自生)의 활기를 불어넣어 마침내 찬연한 잎을 번성케 하는 재생(再生)의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도전 정신과 의지의 실천, 실질적 성과를 중시하는 ‘박정희 실용주의’가 시급한 것이다.

근면·도전·실용·자립·능률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유효성(有效性)은 통계로 입증(立證)된다. 2019년 9월 7일 자 <조갑제닷컴> ‘한국 現代史는 인류 최고의 업적’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 시절과 겹치는 1965~1980년 사이 한국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9.5%로 세계 9위였다. 논문 <혁명가와 정치가의 차이 – 박정희 집권 18년은 국가혁명의 길이었다>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1년부터 1972년 사이 한국의 수출 총액은 40배, 제조업 수출은 170배, 연평균 수출 증가율 60%를 기록했다. 논문은 “수출이 늘면서 외화 획득은 물론 일자리 창출, 품질 및 기술 향상, 기업 발전, 소득 증대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책 <고쳐 쓴 한국 현대 정치사>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 시절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1962년부터 1971년까지 9%, 1972년부터 1979년까지 10%에 달했다. 책은 “이는 20세기 후반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의미하였다”고 평했다. 책 <4·19와 5·16 – 연속된 근대화 혁명>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5년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비약적 수출 증가에 찬사와 놀라움을 표했고, 외국인 투자가 급증했으며 모토롤라, 페어차일드 등 세계적 회사들이 한국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격월간 잡지 <박정희정신> 2017년 7/8월호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지 4년 만에 농촌의 가구당 평균 소득이 도시와 같아졌다. 7년 동안 3만4000개 마을 중 98%가 ‘자립마을’로 거듭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제반의 혁신을 주도하던 군정(軍政) 시절 이렇게 말했다. “정녕 우리가 이대로는 살 수 없는 것이고, 끝내 이 상태대로 나간다면 앉아서 굶어죽거나 국가의 파멸을 눈앞에 보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확실히 가진 것이 없다. 아니, 할 일이 있어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려울 것이다.’ ‘우리 형편에…’ 이러한 망념(妄念)부터 버려야 한다. ‘하면 되는 것이다’ ‘태산도 하늘 아래 뫼이다’ 우리는 먼저 이 ‘신념(信念)’부터 확고히 하고 무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라도 늦지 않다. 올바른 역사적 방향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일이다. 굶고 빚을 져 가면서도 사치와 호화에 자유를 구가(謳歌)하려는 머리를 돌려야 하는 일이다. 공장의 굴뚝이 하품을 하여도 국회의원만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깨끗이 씻을 일이다. 애인만 만나면 택시를 타야하고 값비싼 식당에 들어가야 한다는 허식을 일체 털어버려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가 없다. 기름으로 밝히는 등은 오래 가지 못한다. 피와 땀과 눈물로 밝히는 등만이 우리 민족의 시계를 올바르게 밝혀줄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지상(至上)’ ‘건설 우선(優先)’ ‘노동 지고(至高)’ 이러한 국민 행동의 강령이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와 혁명과 나’ 中 - 책 <하면 된다! 떨쳐 일어나자>(동서문화사, 2005)

1963년 그가 쓴 이 글은, 2021년 그야말로 ‘헬 게이트’가 열려버린 우리의 오늘에까지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유행이 된 패배주의와 유유상종(類類相從) 갈라먹기, 살벌한 정파 대결 이면에 숨겨진 여야(與野)의 결탁과 야합, 3권 장악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봉건왕조가 된 집권세력의 무지(無知)와 아집(我執)과 독주(獨走), 경제 전반 도살(屠殺)에도 여유롭게 지속되는 혈세 낭비 정책과 ‘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주성’ 경제논리, 전염병 방역을 빙자한 교묘한 감시체제와 엄혹한 통제사회의 구축, 586 운동권 신(新)기득권 세력들의 청년 세대 사다리 걷어차기까지. 이토록 되살아나는 모든 구태(舊態)의 잔재(殘滓)와 폐풍(弊風)을 단칼에 일소(一掃)하고, 청신(淸新)한 나라의 본모습을 되찾아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십이 시급한 이 때. 자포자기(自暴自棄)의 분위기로 물들어가는 사회에 ‘견실하고 올바른 정신의 확립’이 시급한 이 때. 고매하신 좌우 제현(諸賢)들께서는 아직도 ‘박정희 지우기’가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정희 패러다임’은 정녕 폐기처분돼야 할 군사독재의 잔영(殘影)인가? 진정 지금의 보수가 매장(埋葬)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의 보수에 짐이 되는 정신적 유골(遺骨)인가? 유신이 어쩌고 독재가 어쩌고 하면서 인물에 대한 사적인 인상비평을 하기 전에, 그가 남긴 유산의 실체와 정신의 뼈대를 보라. 재건(再建)과 부국(富國)의 리더십을 보라. 배워야 할 계획, 익혀야 할 방법, 새겨야 할 정신의 총체(總體)를 보라.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역사를 바로 보고 ‘계승과 활용의 미덕’을 갖추라는 뜻이다. 박정희를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한 적 없는 이들이 ‘박정희 죽이기’에 나선다. 그들은 박정희를 너무도 모른다.

신승민 독자 (문학평론가/ '한국문예작가연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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