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백신 주사기’ 업체인 풍림파마텍을 방문한 것을 두고 두 종류의 뒷말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 풍림파마텍과 삼성을 공개적으로 칭찬

우선 삼성 그룹이 전사적으로 협력해 풍림파마텍의 ‘FDA 인증’이라는 성공을 이끌어냈으나, 삼성은 쉬쉬하는 분위기이다. 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수감중인 상태에서 ‘이 사실’을 홍보하다가 세간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은 이날 현장에서 삼성그룹 계열사와 관계자를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문 대통령은 “풍림파마텍의 혁신적인 성과 뒤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부의 상생 협력이 있었다. 삼성은 LDS 주사기 수요가 늘어날 것을 먼저 예측했고, 풍림파마텍의 기술력을 인정하여 생산라인의 자동화와 금형기술을 지원하는 등 전방위적인 협력으로 우수한 제품의 양산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풍림파마텍의 LDS(Low Dead Space) 주사기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소잔여형 주사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의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LDS 주사기를 이용하면, 백신 1병당 1명을 더 접종할 수 있다. 일반주사기는 백신 1병으로 5명을 접종하는 데 비해 최소잔여형 주사기는 주사기에 남게 되는 백신 잔량을 최소화해 6명을 접종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20% 증산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코로나 백신 20% 증산효과 가진 풍림파마텍의 LDS주사기, 삼성이 전사적 지원

그런데 삼성은 아이디어부터 제조 중소기업 발굴, 국내외 승인 절차에 이르기까지 관련 계열사를 총동원해 도왔다. 특히 분식회계 재판을 앞두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

LDS 주사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제약업계 시장을 주시하던 삼성에서 먼저 나왔다. 계열사간 회의에서 LDS 주사기의 필요성을 공유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에 적합한 업체로 풍림파마텍을 선정했다. 삼성은 중기부와 함께 조희민 풍림파마텍 대표를 만나 지원 의사를 밝혔으나, 거절당했다. 대기업과의 협업 경험이 부족한 조 대표가 기술탈취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중기부 관계자의 끈질긴 설득 끝에 조 대표가 승낙을 했다. 조미희 풍림파마텍 부사장도 "정부와 삼성을 믿어보자"고 설득한 끝에 조 대표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김종호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은 “삼성의 전문가 30여 명을 풍림의 현장에 투입해 1개월만에 월 1000만 대의 양산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1년 걸리는 일을 1달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다음달부터는 월 2000만개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하고, 국내외에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양산체제 구축 이후 국내외 정부기관으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아 공신력을 얻는 일이 남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풍림파마텍의 서류작업과 인허가 절차 등을 지원해 지난달 15일 식약처 승인을 이끌어냈다. 지난달 18일 FDA에 승인신청을 한 뒤, 이달 17일 승인을 받기까지 전 과정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도왔다. 까다로운 미국 통관 절차 등에 관련된 방대한 양의 서류작업을 도운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미국 제약업체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FDA의 주사기 긴급사용 승인이 빨리 나오도록 힘을 실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화이자 백신의 일부 물량이 국내 조기 도입되도록 애쓴 것으로 전해진다. 풍림파마텍 LDS 주사기가 FDA 긴급사용 승인을 받으면 곧바로 화이자에 일부 물량을 납품하는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쉬쉬하는 삼성, 이재용 구속상태에서 불필요한 오해 차단?...문 대통령, 불법경영권 승계의혹 관련자 고한승 대표도 칭찬해

하지만 그동안 삼성은 자신들의 공을 알리길 꺼려했다. 지난 1월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언론플레이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이 18일 풍림파마텍을 방문하며 축하하는 행사에서도 삼성은 자신들의 공이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 태도를 보였다. 삼성 관계자는 "정부와 중소기업, 삼성이 함께 협력한 것일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자칫 '언론플레이'로 비칠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은 지난달 18일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나온 이후에도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LDS 주사기가 FDA 승인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간 것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삼성이 국익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별도의 댓가를 바라지 않고 지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풍림파마텍 주사기의) 미국 FDA 인증에는 식약처와 함께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도움이 컸다”면서 “오늘 이 자리에 삼성바이오에피스 고한승 대표님이 함께해 주셨는데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매개로 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을 조사하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칭찬한 ‘풍림파마텍’은 구매 대상서 제외...신아양행과 두원메디텍 주사기 4000만개 구매

정부가 구매한 백신주사기가 풍림파마텍의 LDS주사기가 아니라는 점도 논란이 됐다. 문 대통령의 풍림파마텍 방문 전날 질병관리청이 백신 주사기 4000만개 구매계약을 완료했다는 기사가 난 뒤였기 때문이다.

풍림파마텍의 주사기는 지난 17일 미국 FDA로부터 승인을 받아서 화제가 되었다. 문 대통령은 그 다음날 풍림파마텍을 방문했다. 풍림파마텍의 노고를 격려하는 자리에는 신아양행과 두원메디컬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두 회사 모두 LDS 주사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중소기업 풍림파마텍과 신아양행, 두원메디텍이 그 자랑스러운 (주사기 공급)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업체가 생산한 주사기 4000만개를 정부가 구매해 백신접종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전날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4000만개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질병관리청은 주사기 구매를 위해 지난 1월 말에 조달 공고를 내고 주사기 구매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청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1차로 총 38억원의 예산을 들여, 주사기 4000만개를 구매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질병청은 조달 공고 이후 수의계약을 통해 두원메디텍과 2750만개를, 신아양행과는 1250만개의 주사기를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다.

질병청 관계자는 19일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에서 ”최소잔량 주사기의 3월 중 공금가능성 및 물량 등을 고려할 때 두원메디텍과 신아양행의 공급이 적합한 것으로 검토되어 해당업체와 수의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수의계약은 대통령이 풍림파마텍을 방문한 18일이 아니라, 지난 1월 26일에 체결되었다고 한다.

풍림 LDS 주사기, 삼성의 도움으로 화이자와 손잡고 전 세계를 향해

풍림파마텍 주사기는 질병청이 구매하는 4000만개와는 무관한 셈이다. 풍림의 LDS 주사기는 주사 잔량이 84㎕(마이크로리터) 이상 남는 일반 주사기와 달리 4㎕ 정도만 남는 게 특징이다. 신아양행과 두원메디텍의 LDS 주사기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이 남는다. 하지만 질병청의 조달 공고 기준에는 주사 잔량이 25㎕이하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두 회사의 제품은 모두 이 기준을 충족시킨다. 화이자나 다른 백신 제조 회사의 기준도 25㎕이하이므로, 두 회사의 LDS 주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풍림파마텍의 주사기 주사 잔량이 제일 적기는 하지만, 두 회사도 기준 이하이므로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견을 밝혔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신아양행과 두원메디턱의 주사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 다만 FDA의 승인을 받은 제품을 우리 국민들의 백신 접종에 먼저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좀 아쉽다”고 평가했다.

풍림파마텍의 관계자는 “국내 화이자 백신 접종에 사용될 수 있도록 12만7천개의 주사기를 무상으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풍림파마텍은 화이자 본사로부터 일종의 협업 제안을 받은 상태이다. 화이자 백신의 접종에 LDS 주사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화이자를 통해서 여타 다른 나라에 백신이 공급될 때 풍림의 주사기도 함께 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의 도움을 받은 우리 중소기업 제품이 날개를 다는 것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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