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6일부터 코로나 1호 백신으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시작하기로 함에 따라, 방역일선에서 대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65세이상 고령층에 대한 안전성과 실효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이 백신에 ‘양다리 걸치기식’ 입장을 발표했다.

고령층 안전성 검증 안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결정은 방역당국 아닌 개별의사의 몫

고령층에 대한 접종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 최종 결정은 ‘개별 의료진 판단’에 일임한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 면역체계 형성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과제에 대해 ‘면피주의’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1호 백신 접종 대상자는 ‘의료진’과 ‘요양원·요양병원 환자’ 등이다. 여기서 고령층을 제외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선진국에 비해 백신구매가 늦어진 데 따른 비판여론이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대상에 고령층을 포함시킬 경우, 향후 부작용이나 실효성 부족 등의 악재 발생으로 정부의 정책적 오판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개별 의료진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 접종에 대한 결정권을 위임하면, 이 같은 ‘아스트라제네카 리스크’를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령층에 대한 검증이 완성된 화이자 등을 우선적으로 접종하고 있는 독일 등 유럽의 10여개 국가들은 아스트라제네카의 고령층 접종을 일단 배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스위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예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자체를 보류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화이자를 1호 백신으로 공언했으나 공염불에 그쳐

반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0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품목허가를 결정했다. 당초 2월 중순에 먼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됐던 화이자 백신의 일정이 불투명해지면서, 러시아산 ‘스푸트니크V’ 등 다른 백신의 추가 도입 가능성까지 열린 상태다. 백신 도입을 두고 정부 부처간 이견도 드러나면서 백신접종과 관련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백신 구매 실패론을 약화시켜줄 구원군이 당초 예상대로 아스트라제네카가 된 셈이다.

당초 정부는 국내 백신 접종 1호로 화이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화이자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11만7000회분이 2월 중순 경 공급될 예정이었다. 그에 따라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과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9일 오후, 화이자 백신 접종을 위한 합동 모의훈련을 진행하기까지 했다.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에서 보관하고, 접종 전에 해동한 뒤 희석해서 단기간에 사용해야 하는 등 다른 백신보다 관리가 어렵다. 모의훈련은 화이자 백신 접종 과정에서 백신 손실, 접종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화이자 백신의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2월 중순 이후 공급될 것으로 예상됐다가 현재로는 공급 시기가 불투명해진 상태이다. 지난 8일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이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특집 브리핑을 진행하던 자리에서 정은경 추진단장(질병관리청장)의 발언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정 단장은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화이자 백신 약 6만명분(11만7000회분)의 도입 일정에 대해 “코백스와 화이자 간 계약이 이뤄져야 하며, 이후 당국과 화이자 간의 공급 계약과 운송 계획 등 행정 절차도 남아 있다”면서 “이 절차에 따라 공급 일정이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정확한 도입시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화이자 백신 ‘모의훈련’은 보여주기 행사, 실제 도입은 3분기로 늦춰질 듯?

화이자 백신의 도입시기에 대해서는 그간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의 입장과 실무를 맡고 있는 방역 당국의 목소리가 달랐기 때문이다. 도입이 예정된 화이자 백신 물량이 1,000만명이라는 점에서, 도입 시기는 중요한 문제인데도 엇박자를 내면서 정부가 혼선을 자처하는 상황이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인 정세균 총리는 지난 1월 4일 밤, MBC 방송에 출연해 화이자 백신의 조기 도입 계획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정 총리는 MBC ‘100분토론’에 나와 “화이자는 올해 3분기부터 들어오도록 돼있었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가 상생협력을 통해서 2월부터 들여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마 잘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무를 맡고 있는 방역당국에서는 화이자 백신 도입 시기가 2월로 당겨질 것이라는 정부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질병관리청 청장)은 좀더 보수적인 입장으로 “기존에 화이자 백신 도입은 3분기부터 물량이 공급되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있으나, 조금 더 조기에 공급받기 위해 계속 화이자와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아직은 협의 내용에 대해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발표했다. 정 총리의 발언과는 분명한 온도차를 보인 셈이었다.

앞서 방역당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선구매 계약이 체결된 아스트라제네카는 올해 1분기, 얀센 백신은 2분기, 화이자 백신은 3분기에 각각 도입될 예정이었다.

정 총리는 9일 화이자 백신의 도입이 늦어지는 상황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백신·치료제 상황 점검회의에서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화이자 백신 국내 도입 시기는 ‘2월 말 또는 3월 초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화이자 백신의 도입시기가 불투명한 9일의 상황에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위한 합동 모의훈련이 9일 오후에 강행됐다는 점이다. 미리 모의훈련을 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도입시기도 불투명한 화이자 백신을 두고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 모의훈련을 한 부분에 대해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이다.

2월 중 도입 예정인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도입 일정이 확정됐다. 정은경 단장은 “아스트라제네카와 당국이 개별 계약한 물량 150만회분이 2월 마지막 주에 공급 일정이 확정돼 유통 및 배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세균 총리 역시 지난 8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백신 접종 일정과 관련해 “아마 24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들어올 것이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어서 곧바로 접종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국내생산 백신물량이 한국의 1호 백신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75만명분이 이달 24일부터 28일까지 물류센터에 입고된다. 75만명분은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와 개별 계약한 1000만명분 중 일부다. 이번에 공급되는 75만명분은 아스트라제네카 위탁생산을 맡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경북 안동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냉장(영상 2∼8도) 보관·유통이 가능해 초저온 유통이 필요한 화이자 백신처럼 별도의 접종 체계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SK바이오에서 제조된 제품은 식약처 출하 승인을 받으면 경기 평택시 소재 통합물류센터를 거쳐 25일부터 전국 보건소 등 접종기관으로 배송된다. 그에 따라 오는 26일부터 코로나19 백신의 국내 첫 접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해외 백신 초기구매 실패론은 사실임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 “아스트카제네카 접종으로 부작용 생기면 의사가 책임지란 말이냐” 반발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품목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인 ‘최종점검위원회(점검위)’에서 애매한 결정을 내놓아서 논란이 뜨겁다. 점검위가 이날 “만 18세 이상 접종을 허가하면서, 주의사항에 ‘65세 이상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기재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고령층 접종 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에 대해 “추가적인 자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의사가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백신 접종으로 인한 유익성을 충분히 판단해 결정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최종결정권을 일선 의사에게 부여한다는 뜻이다.

‘고령층 접종 신중 결정’ 방침에 대해서 의료계에서는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사이트인 '닥터플라자(닥플)'에서 한 의사는 "65세 이상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부작용이 생기면, 의사의 판단착오로 의사 책임이 된다"는 주장을 했다.

다른 의사도 "한국 의사들이 100년 만에 최고의 권한을 부여받았다"며 식약처의 결정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가나 전문가들도 결정을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 의사들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부나 의료계 모두 별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태이다. 화이자나 모더나 등 다른 백신을 확보한 외국과 달리 현재 국내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가 접종 가능한 유일한 백신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2월중 화이자 백신의 도입이 무산된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백신 품귀 현상으로,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도입이 늦어지는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배제했던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 도입을 추진한다는 점이 그런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스푸트니크V’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이지만, 그동안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2일 국제 의학 전문지 ‘랜싯’에 임상 3상 중간 분석 결과 91.6%의 효과를 나타냈다는 결과가 공개되면서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

고령층에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게임

정부가 5600만명분에 대한 백신 도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재로서는 상반기 접종물량 대부분이 아스트라제네카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웃 일본만 해도 당장 다음주부터 화이자 백신 접종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언제 화이자가 도입될지 불투명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시작해야 한다.

‘화이자는 코로나19 의료진에게, 아스트라제네카는 고령층에게 접종한다’는 기존 예방접종계획의 큰 틀이 깨지면서, 접종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3일 방역당국은 지난 10일의 점검위 허가 결정 심의 내용 등을 종합해 오는 16일 ‘아스트라제네카 접종계획’을 최종 발표한다고 밝혔다. 고령층인 요양병원시설 입소자 및 종사자 등에 대한 접종여부, 혹은 우선접종 대상자 순위 변동여부, 첫 접종 대상자 선정 등이 확정되는 것이다.

고령층들 사이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게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백신 선택권이 없다는 방침을 정함에 따라, 부작용 위험을 무릅쓰고 누가 먼저 백신을 맞을 것인지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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