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요구에 8전8퇴한 홍 부총리...더 이상 소신 굽히지 말아야
'선거용' 4차 재난지원금, 이제는 정치권에 휘둘리지 말고 강단있는 결단 필요
66.8조원에 달하는 4번의 추경, 정부와 여당은 미래세대 부담을 고려하고 있는가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드디어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반란이 시작되는가. “재정운용은 다다익선보다는 적재적소가 매우 중요하고 기본이다”라고 이낙연대표가 국회교섭단체연설에서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보편적 지원과 선별적 지원을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데 대해 홍 부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지난 5일 국회본회의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는 “행정부와 국회는 두 수례바퀴다. 국회가 너무 크면 똑 바로 못간다”면서 “재정건전성을 살펴야 하는 재정당국의 시각을 존중해달라”라는 주문도 했다. 국회 주택정책관련 당정협의회에는 불참하기도 했다. 지난 2년 동안 홍 부총리가 여당의 요구에 대해 처음엔 부정적인 의견표명을 했다가 결국에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하며 입장을 번복하기를 8번이나 반복해 8전8퇴 홍두사미 또는 홍백기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이번 9번째 소신이 관철될지가 관전포인트다.

홍 부총리는 2019년 1월 증권거래세 인하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소신을 밝혔지만 결국 0.05%포인트(P) 인하가 결정됐다. 그해 3월에는 미세먼지 추경을 검토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추경이 편성됐다. 같은 시기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검토한다고 했으나 당정청협의에서 백지화되었다. 작년 4월 긴급재난지원급 70% 선별지급을 제시했지만 4월 총선을 앞둔 여당의 뜻대로 전 국민 지급이 결정됐다. 작년 9월 부동산 감독기구의 설치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부동산거래분석원이 설립되었다. 2차 재난지원금도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2차 재난지원금은 물론 3차 재난지원금도 지급되었다. 10월에는 재정건정성을 위해 재정준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니 결국 국가채무비율 상한을 60%로 설정해 실효성 없는 맹탕준칙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11월에는 대주주 주식양도차익과세 기준을 기존 10억원 유지라는 정치권 요구에 맞서 3억원으로 강화해야한다는 소신이 수용되지 않자 공개 사표를 내기도 했으나 하루 만에 철회하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근년에 들어 홍 부총리의 소신대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러니 홍두사미 또는 홍백기라는 반갑지 않은 꼬리표나 붙고 경제부총리로서 경제팀을 통할조정하는 영이 설 리가 없다. 최근에는 손실보상제를 경제부총리를 제치고 중소벤처기업부에 배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다른 부서나 민간부문으로 이적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심지어 신입사무관들이 종전 1순위였던 기획재정부를 기피한다는 보도도 나올 지경이 되고 있다.

그런데 8전8퇴하면서 홍두사미 또는 홍백기라는 꼬리표까지 붙여진 홍 부총리가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홍 부총리만 아니다. 차관들도가세했다. 지난달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손실보상 법제화를 추진하자, 김용범1차관은 "법제화한 나라를 찾기 어렵다"며 우회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에 정 총리는 "개혁 저항 세력"이라느니 "대한민국이 기재부의 나라냐"며 질타했다. 안일환 2차관은 "미래 세대의 부담인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의 불가역성을 경고한 일본의 `악어 입 그래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해 눈길을 끌었다. 악어 입 그래프는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상향 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세수는 점차 줄어 하향 곡선을 그리는 악어 입 모양의 그래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977년 32%에서 2019년 220%로 7배 이상 증가한 일본의 재정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관건은 설 이후 추진한다는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을 함께 하는 4차 재난지원을 추진하기 위해 설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20~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여당의 2월 추경 논의를 막을 수 있을지 여부다. 4월 서울 부산 재보궐선거 이전에 추경 예산을 편성해 막대한 4차 재난지원금을 풀겠다는 것이 여당의 계산이다. 누가봐도 ‘선거용 추경’인 이번 추경을 홍 부총리가 얼마나 소신있게 처리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여당의 압박이 어느 때 보다 거세다. “재정의 주인은 국민” (이낙연, 3일 당최고회의), “서민 피눈물 외면하면 곳간지기 자격 없다 물러나야” (설훈, 3일 당최고회의), “문정부사람임을 망각하지 말라” (우원식, 3일 당최고회의), “위기에서는 발상의 전환과 대담한 결단이 필요하다 (김태년, 3일 당최고회의), “국가가 국민을 대신해서 빚을 져야 할 시기” (홍익표 정책위의장, 4일 4일 당정협의회), “국가의 곳간 못지 않게 국민의 곳간도 생각해달라”(김종민, 5일 국회본회의 대정부 질문 ),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의 전쟁 상황”이라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책적 유연성이 필요하다”(이병훈, 5일 국회본회의 대정부 질문) 등 일제히 포문을 열어 마치 돌격부대처럼 공격하고 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어려움에는 코로나 외에도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등 여당의 잘못된 정책도 근본적인 문제이고 국가부채가 증가하면 결국은 미래세대가 갚아나가야 한다는 미래세대의 부담도 문제이지만 여당은 그런 부분은 아랑곳 없고 마치 기획재정부의 저항 때문에 돈을 풀지 못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듯한 공세다. 여당은 마치 서민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정의로운 편인데 기획재정부가 곳간만 움켜지고 있어 잘 못이라는 듯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런 추세로 가면 국가채무가 금년 말이면 1천조 원에 도달해 국가채무 천조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GDP에 대한 국가채무 비율도 금년 말에 50%에 육박해 안전 마지노선으로 간주되어온 40%를 크게 상회할 전망이다. 여러 재정지표들이 재정위기가 임박해 오고 있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그러나 4월 보선을 앞둔 여당은 이런 문제는 아랑곳 없이 오직 기획재정부를 압박해 막대한 돈풀기에만 여념이 없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야당도 원론적으로는 반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재난지원금이 실효성이 적다는 것은 여러 분석보고서들이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은 작년 8월 발표한 2020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67.7%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2.5%포인트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1분기에 지원된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기한까지 정해두며 즉각 소비를 유도했지만 경제적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가구들이 지원금으로 아낀 다른 소득으로 저축액을 늘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평균소비성향은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평균소비성향이 하락했다는 것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처분가능소득은 늘었는데, 소비증가율이 그만큼 증가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긴급재난지원금 17조 원(지자체 포함)을 지원했지만 부가가치 유발은 8조원으로 정부징세와 재정지원이 민간부문의 투자와 소비를 축소시켜 국민소득을 감소시키는 구축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한은 거시계량모형 분석도 정부의 경상이전 지출 중심 재정지출의 낮은 재정승수효과로 인해 정부가 1조 투자 땐 국내총생산이 6800억 늘어나지만 현금을 주면 2200억 밖에 늘지 않아서 재난지원금을 다 써도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하고 장기적으론 성장률에 마이너스라는 분석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시카고대의 노벨경제학 수상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도 그의 유명한 항상소득가설을 통해 소비는 일시소득이 아니라 항상소득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지난 해 사상 처음으로 4번의 추경을 편성해 주로 재난지원금 등 재정지출에 충당했다. 4번에 걸친 추경 규모도 66.8조 원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해 글로벌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편성했던 2009년의 2.4배에 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총선을 치루면서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엄청난 현금을 살포해 온 것이다. 이는 바로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심할 경우 재정위기까지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홍 부총리팀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4월 보선을 앞두고 코로나 위기를 앞세워 또 다시 엄청난 현금살포를 강행하려고 하는 여당의 압박을 어느 정도 막아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재정위기의 방조 책임자로 전락할 것인가. 재정위기를 예방한 수훈자로 칭송을 받을 것인가의 기로다. 재정당국의 수장으로서 책무를 다해 이제 홍두사미 홍백기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떼어야 할 때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자유시장연구원장, 선진경제포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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