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적합도 1위인 박영선 예비후보가 ‘졸속공약’으로 서울시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박 예비후보는 ‘서울시 대전환’을 키워드로 내걸고 ‘21분 컴팩트도시’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서울을 21개로 나눈 컴팩트시티는 21분 생활권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이다. 대학에서 도시지리학을 전공한 학력을 살려, 오랫동안 준비해왔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왜 서울을 21개로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황당무계하다.

자신의 전공인 도시지리학의 관점에서 서울을 연구해서 도출한 정책이 아니다. 21세기이니 21개로 나누겠다는 주장이다. 그야말로 유아나 초등학교 1학년생의 학급발표에서나 나올 발상이다. 초등학생이라면 “참 재미있다”고 어른의 칭찬을 들을만한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구는 25개이다. 21개 스마트시티로 나누면 기존의 행정구역인 25개의 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어차피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므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명색이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서울시장 후보의 정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좌절을 넘어서 분노를 느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내용보다는 이미지를 가공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온 탁현민의 닮은 꼴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박 예비후보의 정책공약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① 졸속공약이 만들어낸 코미디 제목, ‘21세기에는 21개 컴팩트도시를’

박 예비후보는 ‘21세기 서울을 21개로 나누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유권자의 궁금증에 답할 의무를 피하기 어렵다. 논리적인 답변이 불가능하면, 그 공약은 포기하는 게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지적이다.

박 예비후보 내건 ‘21분 컴팩트도시’의 기본 개념은 ‘50만명을 기준으로 인구 1000만명인 서울을 21개의 컴팩트도시로 재편해서, 21분 생활권 안에서 생활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예비후보는 “지금이 21세기니까 그런 개념으로 했더니 21개가 되었다. 젊은이들한테 의외로 반응이 좋다”면서 “그런데 노인들은 잘 모른다. 말하자면 ‘아픈 사람은 21분 안에 있는 대형병원에 갈 수 있다’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자면 신월동에 살고 있는 사람이 21분 안에 목동으로 접근해서 병원과 학교 등교가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졸속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급하게 만들다보니 21개로 정한 냄새가 농후하다.

이에 대해 박 예비후보는 “평면적이고 전통적인 행정구역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시공간 개념”이라는 설명을 했다. 하지만 보궐선거를 치르는 ‘2021년’ ‘21세기’ 등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21’이라는 숫자의 정체성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박시영TV에서 21이라는 숫자에 대해 질문을 받자, 박 예비후보는 “이렇게 저렇게 조정하니 21개가 되더라”라고 얼버무렸다.

② 서민 주거대책 빠진 컴팩트도시, 서울에 집 가진 사람만 ‘귀족적 삶’ 보장받아

4.7 보궐선거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부동산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폭등한 집값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에 후보자의 당락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박 예비후보가 제시하는 ‘21분 컴팩트도시’는 이런 고민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대책이다.

서울에 집을 가진 계층에게만 친환경적이고 스마트한 삶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이다. 서민정당을 표방해온 민주당의 후보 머리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게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20평 기준으로 평당 1000만원에 약 2억이면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박 예비후보의 구상이다. 최대 2인까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소규모의 집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주거난의 핵심은 1,2인 가구의 문제가 아니다. 3인 혹은 4인 가족이 살 만한 집에 대한 공급책이 없다는 점이 컴팩트도시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처럼 3,4인 가구의 주거문제는 외면한 채, 21분 컴팩트도시의 수직정원에서 스마트팜을 짓는 도시농부의 꿈을 실현시키겠다는 공약이다. 부동산 현안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 없이, 피상적으로 삶의 질에만 집중한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폭등하는 집값과 전셋값에 서울을 떠나야 하는 서민들의 주거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정책이다. 서울에 남은 ‘귀족들이 향유하는 서울’ 건설에 힘쓰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력 성토했다. 서민을 위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시장이 되겠다는 후보자가 내건 공약치고는, 서민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얼핏 창조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지만, 본질은 ‘탁현민식 보여주기’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영선이 서울시장 되서 스마트시티하면 주거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고, 일반 서민들은 극도의 박탈감을 겪게 될 것이다”, “본인은 서울 시내에 번듯한 집을 가졌고 일본에도 집을 한 채 가져서 그런지, 서민의 삶과 필요에 공감할 줄 모른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③ 25개 구청장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식 공약

서울의 25개 기초자치단체의 수장인 구청장들은 서울시장의 ‘부하’가 아니다. 그런데 박 예비후보는 시장이 되면 서울을 21개로 나누겠다고 주장, 구청장들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4개 구에는 컴팩트도시를 안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25개 구를 자의적으로 21개로 조정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21개가 되었다는 것이 박 예비후보의 변명이다. 하지만 일부 자치구청은 21분 컴팩트도시 때문에 자치구 통폐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이다.

‘21분 컴팩트도시’의 기준인 ‘인구 50만명’이란 잣대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기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인구 50만명(등록외국인 포함)을 넘는 곳은 송파구, 강서구, 강남구, 노원구, 관악구 등 5개구에 불과하다. 나머지 20개구는 모두 인구 50만명 미만이다. 특히 금천구와 용산구는 20만명대, 종로구와 중구는 10만명대에 불과하다. 가장 인구가 적은 중구(13만명)는 가장 많은 송파구(67만명)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방 대도시보다 못한 이들 4개 자치구를 주변 자치구에 흡수통폐합시키면 공교롭게도 ‘21’이란 숫자가 딱 떨어진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이라면 자치구청과 긴밀하게 협조를 하면서 시정을 운영해야 하는데, 후보단계에서 벌써부터 이렇게 일방통행을 보이는 걸 보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고 의견을 밝혔다. 자기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불장군식 발상이 아니라면, 서울시 행정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한참이나 떨어지는 왕초보자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우상호 의원은 TBS의 라디오에 출연해 “서울시의원의 80%가 우상호 지지를 선언했다. 서울시정을 펼칠 때 파트너가 되는 서울시의원의 지지는 큰 힘이 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우상호 의원에 비해 박 예비후보는 안하무인식 행정을 펼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

④ 조은희와 박형준의 공약 ‘표절의혹’

표절의혹도 거세다. 박 예비후보는 ‘21분 컴팩트도시’의 개념을 바르셀로나의 9분, 파리의 15분에서 차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조은희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표절의혹을 제기했다. 자신의 ‘25개 다핵(多核)도시’와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15분 컴팩트도시’ 등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조 예비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조은희의 25개 다핵도시와 박형준 예비후보의 15분 컴팩트도시를 짜깁기하면, 21분 컴팩트도시라는 박영선 후보의 표절 공약이 나오는 것”이라며 “21이라는 숫자를 다시 설명하는 박영선 후보의 해명을 보면서, 역시 서울시 행정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초보운전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직격탄을 쏘았다.

지난 4일 박시영TV에서 표절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자 박 예비후보는 “조은희 구청장이 자신의 것을 베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얘기하는 거하고는 개념이 다르다”면서 “그 사람은 행정 개념으로 25개 구의 다핵도시를 만들겠다는 거다. 나는 행정개념이 아니고, 시공간개념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라는 설명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이나 근거는 제기하지 못했다. 표절이라는 비난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으로 분석된다. 박 예비후보는 도시지리학을 전공해서 도시에 관심이 많고 고민이 많았다고 하지만, ‘21분 컴팩트도시’는 준비없이 급조된 선거용 공약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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