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물론이고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북한 원자력발전소 추진의혹에 대해 정면 반박했으나,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것처럼 의혹은 커지고 있다. 청와대와 문 대통령의 반박이 국민적 의혹에 대해 직답한 게 아니라 ‘동문서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적 의혹을 ‘구시대 유물’로 격하시킨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은 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북한 원전 추진의혹 제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라”면서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이니 정부와 국회, 여와 야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화법이다. 코로나19 등으로 민생이 어려운 것과 북한 원전 추진의혹은 별개의 사안이다. 후자는 국가안보 및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헌법적 사안이다.

즉 정공법으로 사태의 핵심을 짚고, 그 핵심에 대해 팩트를 기반으로 비판을 가하는 게 아니다. 보궐선거를 앞둔 ‘북풍 정치공세’라는 프레임을 미리 씌워놓고 그 틀내에서 야당의 비판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야당과 언론에 대해 ‘겁박’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정권이라면서 정치쟁점을 힘으로 누르려는 태도 보여...국정조사와 특검 등을 통한 의혹 해소는 40년 간 합의해온 게임의 법칙

민주주의 대변자임을 자처해온 문재인 정권이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 사법적 조치 등을 거론하면서 압박을 가하는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행태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정치쟁점은 국정조사, 특검 등의 제도를 통해 그 진상을 규명하고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게 올바른 해법이다. 이는 한국 정치권이 지난 1987년 6.29선언으로 탄생한 노태우 정권 이후 합의해온 게임의 법칙이다.

더욱이 이번 논란은 국민의힘을 포함한 야권이 일반 국민 정서와 무관하게 독단적으로 불을 지피고 있는 게 아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의혹제기에 심정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한겨레 등 친여매체가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보도한 기사에도 의혹을 제기하면서 청와대의 핵심 피하기 태도를 질타하는 댓글이 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극한 대립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더욱이 여권의 답변은 서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와 민주당 의원의 반박이 서로 다르다. 당황해서 서로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재빠르게 북한 원전 의혹에 대해 입장을 직접 표명한 것도 이례적이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장시간 지속돼는 상황에서도 함구로 일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문 대통령은 사태 발생 나흘 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지난 28일 저녁 sbs의 보도로 촉발됐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수사를 진행중인 검찰의 공소내용을 ‘北 원전 건설 추진 문건’ 제하로 폭로한 보도였다. 이로 인해 주말 내내 여권의 보도와 야권의 공세가 이어졌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가 아닐 수 없다” 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북풍공작이다”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김 위원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공세를 이어갔다. 주 원내대표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산자부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이 앞장 서서 월성 원전의 경제성을 조작하고, 산업부의 공문서를 500건 이상 파기한 이유는 무엇이냐"며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우리의 원전을 신속하게 폐기하려 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산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문서 속에 ‘북한 원전 지원 계획’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는 원전을 지어주려고 한 까닭은 무엇이냐? 한 손에 핵무기를 잔뜩 움켜쥔 김정은의 다른 손에 플루토늄을 양산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쥐어 주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더 이상 북한 원전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압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져만 가는 국민적 의혹은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① 문건 작성은 누가 지시?...자발적으로 17개 문건을 작성하는 공무원은 없다/산업부는 ‘정부 공식입장 아니다’고 명기한 새 보고서 공개해 의혹만 증폭

첫째, ‘북원추’ 혹은 ‘뽀요이스’라고 불리는 문건 작성은 누가 지시했는가이다. 청와대는 ‘산자부 공무원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해명에 대해 “우리나라 공무원 중에서 상급자의 지시가 없는데 17개의 문건을 공들여서 작성하는 공무원은 없다”는 조롱이 유행하고 있다. 공무원 사회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실정이다.

1일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불러놓고,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남북협력 사업과 관련,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당시 실무를 맡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정책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것이다”라며 ‘북한 원전 건설 관련 문건을 ‘극비리 원전 건설 추진’으로 연결짓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입장과 달리 여당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론하고 나섰다. 신영대 민주당 의원은 31일 논평에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 감사 방해를 위해 파쇄됐다는 문서 대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생산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월 1일 산업부가 공식 발표한 내용은 여당의 주장과는 또 다르다. 산업부는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된 6페이지 분량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보고서는 산업부 내부 전산망에 보관돼 있다”고 발표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최근 한 방송사가 공소장의 내용을 보도하면서 공무원이 삭제한 목록을 공개했는데,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내부 문건들을 확인해 보니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보고서'가 나왔다"며 "검찰이 복구한 파일과 동일한 문건"이라고 말했다.

산업부가 공개한 문건은 ‘본문 4쪽, 참고자료 2쪽 등 총 6쪽 분량’의 짧은 보고서이다. 서문에는 "동 보고서는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이라고 명시했다. 결문에는 "북-미간 비핵화 조치 내용·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아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으며, 향후 비핵화 조치가 구체화된 이후 추가검토 필요"라고 적혀있다.

문서의 내용도 북한 지역 뿐 아니라 남한 내 여타 지역을 입지로 검토하거나, 남한 내 지역에서 원전 건설 후 북으로 송전하는 방안을 언급하는 등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 산업부의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2018년 이전부터 논의됐던 아이디어 등을 모아서 보고서로 만든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용 보고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산업부가 원본이라고 공개한 보고서에 “내부검토자료이고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님”이라고 명시된 것이 더 큰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해명용으로 급조된 게 아니라면 통상적으로 그런 문구를 적을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② 청와대 보고용도 아닌데...2차 남북정상회담 앞두고 12일 동안 17개 보고서를 미친 듯이 작성?

국민 다수가 품고 있는 두 번째 의혹은 북한 원전 관련 문건 17개 모두가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1차 남북 정상회담(2018년 4월 27일)과 2차 남북 정상회담(2018년 5월 26일) 사이 기간에 작성됐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산자부는 해당 보고서들을 2018년 5월 2일과 15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제작했다.

상식적 논리로 보면, 문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제안하기 위한 실무적 보고서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논란이 되는 북한원전 관련 문건들은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 협력 방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업무 경험 전문가 목록’ 등을 제목으로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KEDO는 지난 1995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대신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북한 원전 건설에 대한 세부적인 방안까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청와대 등의 해명대로 산자부 직원이 개인 수준에서 정책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남긴 것이라고 보기에는 공을 너무 들였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이런 의혹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산업부의 서기관이 2차 정상회담이라는 중대 시기에 청와대에 보고될 문건도 아닌데 12일 동안 17개나 되는 문건을 쏟아내는 열정을 보였다는 주장에 설득당할 만큼 무지한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③ 김 서기관은 ‘신내림’을 받고 문건을 삭제?...어떤 신내림인지 규명해야 국민이 납득

국민이 백번을 양보해서 청와대와 산자부의 해명을 인정해도 의혹은 남는다. 보고서 작성자는 산자부 공무원이고, 남북정상회담 기간에 정부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서 작성했다고 치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출입권한이 없던 김 서기관이 혼자 원전산업정책과 사무실에 들어가 새벽 1시 반까지 파일 530개를 지웠는지’에 대한 답변의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신내림 서기관'으로 불리는 김 서기관은 530건의 자료를 직접 삭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감사원과 검찰이 ‘감사원 감사 전에 어떻게 알고 자료를 삭제한 것이냐’고 추궁하자, “윗선은 없다.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은 줄 알았다”고 진술해, 삭제를 지시한 윗선에 대한 의혹을 부추긴 인물이다. 그는 당시 중요하다고 보이는 문서를 복구하더라도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한 뒤 삭제하다가 자료가 너무 많다고 판단해 단순 삭제하거나 폴더 전체를 지운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신내림 서기관이 왜 삭제를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기에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산자부의 설명대로 (불법성이 없는) 단순 내부 검토 자료라면 당연히 재판에 문제되지 않을 텐데, 왜 삭제했는가, 누구의 지시로 삭제를 했는가?’ 등에 대한 해명은 청와대가 반드시 제시해야 하는 부분이다.

④ 김정은에게 준 USB에 원전제공 안 담겨?...USB 공개만이 유일한 진상 규명 방법/USB제공 사실 두고도 여권내 딴소리 나와 ‘국민적 신뢰’ 상실

문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북한 원전 추진을 제안했는지 여부가 최대의혹이다. 물론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USB공개만이 유일한 진상규명 방법이라는 게 다수 여론이다.

통일부는 지난달 31일 기자단에 배포한 자료에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전달한 'USB'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관련 자료가 포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에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는 원전이라는 단어나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심지어 29일에도 서면 브리핑을 통해 "2018년 이후 남북협력사업으로 북한 지역 원전 건설(을) 추진한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넸다는 USB를 두고도 여권은 거짓말로 엇박자를 냈다.

2018년 4ㆍ27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신경제구상’이 담긴 USB를 건넸다는 보도에 대해 조한기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거짓”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조 전 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도보다리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USB를 건넸다는 기사, 물론 거짓이다”라며 “당시 의전비서관이었던 나와 북의 김창선이 함께 현장에 있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된 장면을 이리 왜곡하다니 기가 찰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4월 30일,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신경제구상을 담은 USB를 직접 전달했다”는 사실을 직접 언론에 알렸다. 당시 문 대통령은 “후속조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주기 바란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여건이 갖춰지길 기다려야 되는 것도 있다”고 지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대해 조 전 의전비서관은 “도보다리 회담 때 (USB를) 건넸다는 데 대한 언급이었다”고 해명했다. 도보다리 현장은 아니어도 당시 회담 기간에 USB가 김 위원장에게 전달된 사실 자체는 맞다며 말을 바꾸었다.

USB를 건넨 사실조차도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는 청와대 측의 변명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었던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 전 비서관과 통화한 뒤 “조 전 비서관에게 확인해보니 ‘도보다리에서 USB 전달은 없었다’는 취지로 해당 글을 썼다고 하더라. 당시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USB를 건넸던 것은 사실”이라고 조 비서관의 말을 수정해서 밝혔다.

USB를 넘긴 것까지는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야권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건넨 ‘한반도 신경제 구상’ USB에 담긴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USB 자료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삭제 자료 공개를 요구’하며, 이를 거부한다면 특검과 국정조사로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영찬 의원은 필요하다면 문제의 USB를 공개할 필요성이 있다는 강경론을 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면밀한 검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청와대가) 필요하다면 (북한에 건넨 USB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정조사나 특검을 통해 김정은에게 건네 준 USB내용을 제한적 방식으로라도 공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관측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