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 충격, ‘북한 원전’ 논란]
“책임져야 한다”...격앙된 감정의 문 대통령
극비리에 진행된 2차 남북정상회담, 文-金 무슨 이야기 있었나
“터무니 없는 주장” 강한 부정에도 관련 정황은 ‘정반대 실상’ 지지
사실 드러날 때마다 번복되는 발언들...청와대와 여권의 ‘자충수’

'북한 원전 추진’ 논란에서 야권이 제기한 “이적행위” 비판에 청와대가 보인 신경질적인 반응은 이 문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역린(逆鱗)’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문 대통령도 지난 31일 “수많은 마타도어(흑색선전)을 받았지만, 이건 터무니없다”고 격앙된 감정을 내비췄다.

청와대는 지난 29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기로 했다면서 이를 “충격적인 이적행위”라고 밝히자 곧바로 “북풍공작이다”, “혹세무민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등 강하게 비판하고 김 위원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주말 사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중심으로 실제 법적 조치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책임져야 한다”...격앙된 감정의 문 대통령

청와대 발표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따로 있다. 바로 “김 위원장은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부분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뜻과 다를 수 없는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 발언이 그대로 담겨 있는 ‘대통령 워딩’이라고 풀이된다.

해당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문건 목록에 북한 원전 건설과 남북 에너지 협력 관련 문건이 다수 포함됐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수사 관련 사항이라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 발언에 책임지셔야 한다”는 말은 문 대통령의 특징적인 화법이다. 지난 대선 토론 과정에서 상대 후보가 매우 난처한 질문을 하거나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을 할 때 주로 사용했다. 다른 후보들은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홍준표 후보는 두 차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네 번이나 들었다.

첫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640만 달러의 뇌물을 수수한 것을 알았느냐”는 홍 후보자의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이 뇌물 받았다고 한 것이냐? 그 말에 책임지셔야 한다”, “(뇌물 수수한 것을) 몰랐다. 그 말에도 책임지셔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그 다음은 “세월호 1,155억 원을 노무현 정부 때 탕감해서 살아났다”는 발언과 “북한인권법 관련해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북한의 허락을 받았다”는 발언에서 각각 나왔다.

‘북원추’ 문건 작성 이후 극비리에 진행된 2차 남북정상회담, 文-金 무슨 이야기 있었나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발전소 USB’를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신경제 구상을 책자와 PT 영상으로 만들어 USB에 담아 직접 김정은에게 건네줬다. 그 PT 영상 속에 발전소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고 언급했다. 언론에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도보다리 회담’ 때 문 대통령이 “발전소 문제...”라고 말한 것도 입모양을 통해서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구두로 그것을 논의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감사 직전에 몰래 삭제한 문건 중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은 2018년 5월 2일부터 15일 사이에 작성됐다. 이는 같은해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과 5월 26일 판문점 북측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 사이의 기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남북한 정상 이외에 당시 국가정보원장이었던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 각각 1인만 배석하고 극비리에 진행됐다. 회담 전후 국내외로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1차 때와는 달리 회담 종료 이후 서면 브리핑 등으로 갈음한 것을 볼 때 사전 협의 없이 ‘북측 제안’으로 열린 긴급 회담으로 해석된다.

만일 양국 정상 사이에서 북한 원전 추진 문제가 논의 되었다면, 이 2차 회담 때 본격적인 의제로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 남측에서 유일하게 배석한 서훈 안보실장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북한 현지사무소 대표를 역임하며 북한 신포 경수로 원전 건설 사업에 깊이 관여한 남북에너지협력 전문가이기도 하다. 한국-미국과 네 차례 회담 직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1월 신년사와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원자력 발전 능력’ 조성 의지를 두 차례 내비췄다. 하지만 이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결렬되면서 관련 언급은 사라졌다.

“터무니 없는 주장” 강한 부정에도 관련 정황은 ‘정반대 실상’ 지지

청와대와 여권은 ‘북한 원전 추진’ 논란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강한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는 문건이 “해당 공무원 개인의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했고, 산업부도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남북협력을 실무 차원에서 검토하고 정리한 것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들은 그 실상이 정반대임을 지지하고 있다. 얼마 전 구속된 산업부 공무원들이 해당 문건을 작성했던 시기는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이 중점 추진된 때다. 산업부가 조작된 경제성평가 보고서를 근거로 월성 원전 1호기의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그런 삼엄한 상황에서 국가전략물자(원전) 북한 이전 문제를 실무급 국과장 3명이서 검토할 수는 없다.

또 해당 공무원들은 ‘북한 원전 추진’ 관련 문건들을 핀란드어로 북쪽을 의미하는 ‘뽀요이스(pohjois)’라는 폴더에 숨기고 제목도 ‘북원추’라는 약어로 표시했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일요일 밤에 몰래 사무실에 침입해 문건의 이름과 내용을 ‘4234’나 ‘ㄴㅇㄹ’ 등으로 덮어씌워 삭제했다. 향후 수사가 진행돼서 포렌식 복구가 이뤄져도 수사 기관에서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실 드러날 때마다 번복되는 발언들...청와대와 여권의 ‘자충수’

청와대와 여권이 이처럼 강한 부정으로 일관하는 것은 ‘자충수’에 해당한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은 사태 수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날 때마다 거짓 반박은 문 대통령의 신뢰를 바닥으로 추락시킬 것이다. 이미 문건에 대한 새로운 팩트들이 보도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감사원과 산업부 취재 결과 ‘북원추’ 문건 에 신포 원전, DMZ 원전, 신한울 원전을 통한 송전 등 세 가지 대북지원 방안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여권 인사의 주장 번복도 이어진다.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 현장에 있던 조한기 전 의전비서관은 “문 대통령이 USB 전달했다는 기사는 거짓”이라고 주장했으나, 문 대통령이 직접 이를 언론에 밝힌 사실이 확인되자 “도보다 리에서 준 것은 아니라는 뜻”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전형적인 말장난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과거 삭제된 문건 속에 북한 원전 추진 관련 내용이 있다는 보도에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반박했으나, 최근에는 “(남북회담) 정식 의제가 아니었다”고 한발 뺀 모습이다. 이후 반대 사실이 드러나면 ‘정식 의제는 아니었지만 비공식으로 이야기가 오갔을 수는 있다’고 발뺌할 것이다.

이 논란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먼저 청와대가 북한 원전 추진 문건 검토를 지시한 바가 없는가. 없다면 그들은 왜 야밤에 사무실에 잠입해 파일들을 몰래 삭제 했는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한 USB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 관련 전문가 명단이나 기술에 관련된 것은 없어야 한다. 또한 2차 남북회담 때 이와 관련된 양국 정상간의 ‘거래’가 있었는가.

유사시 플루토늄 추출이 용이한 중수로 원전은 국내 월성 1~4호기 밖에 없다. 이를 정부가 조작된 보고서로 폐쇄 하기로 결정해 놓고, 북한에는 원전 건설 추진을 검토했다는 ‘초현실적 사실’에 대다수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다. 국가기밀 누설과 한반도 안보 위협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이세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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