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시작될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 접종을 둘러싸고 ‘대혼란’이 우려된다. 정부는 28일 1분기에 요양병원 입소자와 종사자 등을 접종한다는 세부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1분기에 접종될 백신은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공급되는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스트라제네카 회사와 개별 계약한 백신도 1분기부터 도입될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국내에서 처음 접종될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가 유력하다.

노년층 환자와 중장년층 의료진 등의 아스트라제네카 거부 사태 예상돼

그러나 유럽연합(EU) 보건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중장년 및 노년층에 대한 효력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 젊은층에 국한시킨 ‘조건부 판매 승인’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오는 29일(현지시간)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승인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문제는 국내 요양원 입소자가 대부분 노년층이고 의료진 중의 다수가 중장년층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EMA가 젊은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승인할 경우, 국내의 노년층 및 중년층이 실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8일 세부계획 발표서 ‘백신 선택권’ 불인정 강조, 거부해도 강행 시사

하지만 정부는 28일 세부 접종계획을 발표하면서 ‘백신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정 백신 접종을 거부할 경우, ‘다른 백신을 제공하지 않는다. 접종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백신 선택권’ 부인을 강조한 것은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거부 사태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즉 노년층과 중장년층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거부해도 강행한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수립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8일 오후 백신 도입 현황과 예방접종 순서, 안전성과 예방접종 관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오는 9월까지 전 국민의 70%에 대해 1차 무료 접종을 시행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상태이다.

정은경 청장의 설명에 의하면, 아스트라제네카는 1분기부터, 얀센과 모더나는 2분기부터, 화이자는 3분기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이와는 별도로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 물량이 공급된다.

정부는 5만여 명의 의료진을 우선적으로 접종하고 그 다음에 1분기 요양병원 입소자와 종사자, 2분기 65세 이상 노인 등, 3분기 19∼64세 성인 등의 순서로 백신을 접종해 9월까지 전 국민에 대한 1차 접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럴 경우 11월까지는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현재 국제 백신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비롯해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화이자, 모더나 등 4개 제약사와 구매 계약을 체결해 5천6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 노바백스와도 2천만 명 분 구매 계약을 앞두고 있다. 이 계약이 최종 체결되면 7천600만 명 분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EU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실효성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함에 따라 정부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유럽의약품청(EMA) 쿡 청장, 아스트라제네카 ‘반쪽 승인’ 가능성 시사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 방송의 지난 26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에머 쿡 유럽의약품청(EMA) 청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쿡 청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특정 연령대만 쓸 수 있게 승인할 가능성도 있고, 넓은 연령대에 걸쳐 사용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면서 “이 백신이 65세 이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쿡 청장은 “고령층에 효과가 있는지는 지금까지 극소수를 대상으로만 연구가 수행됐다”며 “특정 연령대에 초점을 맞춰 사용을 승인하자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MA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이처럼 ‘조건부 판매 승인’을 심사 중이며, 심사 결과는 오는 29일(현지시간) 발표될 예정이다.

쿡 청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고령층에 효과가 없다’는 독일의 보도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조건부 승인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 경제지인 ‘한델스블라트’와 일간 ‘빌트’는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가 8%에 불과하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독일 언론들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젊은층에 한해서만 사용 승인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가장 먼저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백진 접종계획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독일 언론들, “65세 이상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효과는 8% 불과”보도

그동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서 ‘5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임상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가 8%에 불과하다는 독일 언론의 보도에 대해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면서 학술지 랜싯에 게재된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고령층도 2차 접종 뒤 100% 항체 형성이 이뤄지는 등 강한 면역반응을 보였다고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주장했다.

독일 보건부도 사실이 아니라면서 한델스블라트가 보도한 '8%'는 예방 효과가 아닌 임상 시험에 참여한 56~69세 비율이라고 지적했다.

호주 의학자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중단 의견 제시

하지만 독일에 이어 호주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효능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호주에서도 2월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호주 정부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호주 일부 의학자들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추진을 멈추고, 효능이 더 높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상 3상에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95% 안팎의 효능을 보인 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정량을 모두 투여했을 때 62% 효능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티븐 터너 호주·뉴질랜드 면역학협회 회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집단면역을 형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낮은 효과 때문에 범용할 수 있는 백신이 아니다. 바이러스 통제를 위해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호주의 방역 상황은 안정적이다. 최근 3일 연속 호주의 하루 확진자는 17~19명 선이다. 전체 인구는 약 2500만명인데, 누적 확진자는 2만8658명, 누적 사망자는 909명이다. 따라서 효능이 낮은 백신을 서둘러 접종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효능이 보장된 백신을 더 확보해 맞자는 주장인 셈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우려에 침묵한 문재인 정부, ‘백신 선택권’ 불인정 ‘협박’?

독일과 호주에서의 사례 및 EMA의 조건부 승인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의 백신 접종 세부계획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고령층에 대한 임상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에 대해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금명간 나올 EMA의 결과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8일 정은경 청장의 발표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반쪽짜리 효능 우려에 대한 대응책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백신 선택권’ 불인정이라는 협박성 공고만 했다. 선진국들의 대응을 참고하면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후속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문재인 정부는 더 큰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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