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페스 논란이 뜨겁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논란이 일었고, 반대급부로 남성 아이돌 등을 소재로 허구의 동성애 관계 등 창작물을 만드는 ‘알페스’에 대한 논박이 점화됐다. 성(性)은 하위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므로 전면적으로 규율할 수 없을 뿐더러 규율할 수도 없다. N번방이나 리벤지포르노 같은 극악한 성범죄는 물론, 유명인을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 포르노와 높은 수위의 알페스는 규제해야 한다.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구체적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성은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해야한다. 성인이 사적 공간에서 하드코어 BL물을 보던, 포르노를 보든, 성인용품을 가지고 놀든, 도대체 남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알페스(RPS, Real Person Slash)는 실존 인물을 가공해 가상의 애정관계를 다루는 2차 창작물을 뜻한다. 주로 동성애 관련 내용으로 돼 있으며 상당히 수위 높은 성애물(性愛物, 외설문학)까지 있다. 소설이 일반적이지만 그림이나 만화 형식을 갖기도 한다. 국내에선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남성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는 알페스가, ‘팬픽’이라는 이름으로 성행해 왔다.

최근 알페스 논란이 뜨겁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논란이 일었고, 반대급부로 남성 아이돌 등을 소재로 허구의 동성애 관계 등 창작물을 만드는 ‘알페스’에 대한 논박이 점화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알페스 이용자 처벌’ 청원이 20만명을 돌파했고, 여기에 대항이라도 하듯, ‘딥페이크 포르노’(deepfake pornography, 실존 인물의 얼굴을 합성해 만들어진 가상의 성행위 영상을 이르는 말)를 처벌 해달라는 청원이 여초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다(현행법상 ‘딥페이크 포르노’는 처벌 대상이다). 또 다시 남녀 사이에 세(勢)대결을 벌이는 모양새다.

나아가 1월 19일 국민의힘 소속 하태경 의원과 이준석 전최고위원은 알페스가 “하드코어 포르노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음란물 제작 및 유포로 알페스 이용자를 수사의뢰했다. 하위문화 장르에 대한 갑론을박이 정치권과 사법 영역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좌파진영 지식인과 문화평론가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궤변을 늘어놓으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들의 논점을 비판적으로 정리해 보자.

◇논점 1. 왜 ‘지금’ 알페스를 문제화 하는가

일부 문화평론가들은 알페스가 1990년대 후반 아이돌팬덤과 함께 시작되었다면서, 최근 문제제기 이면에는 어떤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문화평론가 위근우는 알페스가 누구랑 사귀는 것을 상상하고 쓴 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성범죄로 비화하는 것은 ‘허수아비치기’이자 ‘백래시’라고 지적했다. 이택광(경희대) 역시 허구의 창작물에 불과한 알페스 논쟁은 남성들의 ‘맞불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알페스가 20년 이상 존재해온 하위문화이고 그 동안 크게 문제화되지 않았던 것은 맞다. 예컨대 2012년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97〉을 보자. 주인공 성시원(연기·정은지)은 HOT 광팬으로 직접 팬픽을 쓰는 여고생이다. 하루는 자기가 쓴 팬픽을 수업시간에 돌리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혼이 난다. 드라마에서 선생님은 팬픽을 친구들 앞에서 직접 읽어준다. 그대로 옮겨보자.

“우혁은 거칠게 문틈 사이로 승호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승호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아... 윽... 승호의 하얀 입술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이러지 마, 너에겐 칠현이가 있잖아. 그만 돌아가. 싫어. 왜? 넌 이젠 나의 노예니까.”

여기서 우혁은 HOT멤버 장우혁이고 승호는 같은 그룹 토니안(본명 안승호)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2012년, 이 장면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 세대의 상당수는 하위문화로서 팬픽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때의 추억처럼 회상했다. 그런데 9년 후 알페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페미니즘의 득세로 인한 성문화의 규율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이 접속하는 성인사이트를 막아버렸고, 여성아이돌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어떻다는 둥, 남성들의 시각적 욕망이 문제라는 둥, 여자 화장실마다 몰카가 있다는 둥하며, 이 모든 것을 한국 남성의 ‘강간 문화’로 맥락화 시켰다.

또한 N번방사건이 터지자마자 남성들의 입장을 묻는다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고, ‘동시접속자 26만명’이라는 가짜뉴스를 근거로 남성 일반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상당수 남성들은 N번방사건 이후에야 그 존재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참회와 고해성사가 필요한 집단쯤으로 취급받았다.

알페스에 대한 문제제기는 수년동안 남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성규율화와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에 대한 반발이다. 고결한 성도덕으로 남성의 지저분한 성의식을 꾸짖었던 페미니즘과 그 동조세력이 알고 보니 알페스를 즐겨왔고 이를 정당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작가 현진건의 단편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의 현실판 같다. B사감은 여학생들이 받은 러브레터만 보면 히스테리를 부렸다. 학생들에게 “연애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의 지어낸 소리”라고 훈계했던 그녀는, 한밤 중 그 불결한 러브레터에 얼굴을 파묻고 자지러졌다. 러브레터 대신에 ‘B급 문화’을 대입해보자. 지금 알페스를 옹호하는 문화평론가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논점 2. 삭제된 ‘피해자중심주의’

여성계는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항상 ‘피해자중심주의’를 들고 나온다. 물론 이 원칙은 자기 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서 보듯이 남인순과 민주당 여성계인사 상당수는 ‘피해자’ 대신 ‘피해호소인’이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똑같은 일이 알페스 논란에서 벌어지고 있다. 래퍼 손심바는 본인이 등장한 알페스를 거론하며 성희롱은 근절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BTS멤버 뷔도 “상상에서 빠져나와 거기 안좋아”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즉 당사자들이 성적 폭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평소 금과옥조로 떠받들던 피해자중심주의를 과감하게 삭제하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첫째, 위근우와 이택광은 알페스가 ‘허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아무리 창작한 이야기라도 실존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휘갈긴다면, 단순한 허구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등장인물이자 실존인물이 불편함을 느낄 때 ‘허구니까 괜찮아’라고 답할 수 있나. 만약 내가 위근우와 이택광을 주인공으로 ‘BL물’을 ‘허구’로 쓴다면 그들은 쿨하게 받아줄까. 또한 말 그대로 허구의 산물인 성인애니메이션과 게임 컨텐츠를 준엄하게 꾸짖어왔던 여성계가 알페스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문화평론가 황진미는 “대상의 주체성을 말살하고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 삼는 것이 대상화인데, 알페스는 여기에 해당이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장민지(경산대)는 알페스가 “(아이돌)멤버들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100% 인형놀이”라고 항변한다. 알페스 제작자는 자기 욕망에 따라 동성애와 성관계 서사를 구성하고 여기에 아이돌을 등장시킨다. 이것이 대상화가 아니면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관계성 탐구를 이런 식으로 하나. 장은지가 부지불식 간에 누설했듯이 이것은 ‘인형놀이’다. 그러니까 100% 대상화다.

또한 황진미는 알페스가 “아이돌 선망과 경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하다. 선망과 경외를 왜 수위 높은 동성애 창작물로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저 우리는 성(性)과 성(聖)을 통섭하는 문화평론가 황진미가 에로비디오 속에서 어떻게 경건함을 뽑아낼 수 있는지 기대하도록 하자.

무엇보다 황진미의 숭배와 경외, 장은지의 관계성 탐구는 알페스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다. 유독 알페스는 남성아이돌을 상대로 하는 ‘BL물(物)’이 많다. ‘BL물’이란 ‘Boy Love’의 머릿글자를 따와 만든 조어로써 어린 남자들 간의 동성애를 뜻하는 말이다. ‘BL물’이 주를 이루는 까닭은 아이돌을 향한 여성 팬덤의 소유욕이다. 알페스는 연애 대상으로서 여성의 자리에 남성을 끼워넣고 동성애를 관전한다. 비록 가상일지라도 아이돌이 다른 여성에게 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서사 속에서 여성 팬덤은 아이돌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연애와 섹스를 추체험(追體驗)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소유욕은 열애설이 터질 때마다 격앙하는 팬덤의 행태로도 알 수 있다.

◇논점 3.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인가

페미니즘은 언더도그마 위치를 선점하려고 애쓴다. 이를 위해 즐겨쓰는 방식이 언어의 인플레이션이다. 예컨대 이성이 흘겨보면 ‘시선강간’, 리얼돌은 ‘강간인형’, AI쳇봇에게 ‘성착취’라고 부르는 식이다. 그 예민한 감성을 알페스에 적용하면 ‘강간서사’나 ‘성착취 소설’이 되겠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페미니즘의 언더도그마는 남성은 언제나 가해자고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편견에 기반한다. “롤리타는 범죄, 쇼타는 취향”이라는 한 여성철학자의 발언은 예외적 말실수가 아닌 보편적 인식의 발로다. 문제는 이러한 언더도그마가 기술 발달에 기반한 성폭력 문제를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은 폭력의 평준화를 가져온다. 온라인 공간은 여성이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제공했다. 알페스 뿐만 아니라 몰카, 딥페이크포르노, 섹테(아이돌 목소리를 편집하여 성관계시 신음소리를 연출한 음성파일)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 이루질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현재 알페스를 옹호하기 위한 일부 지식인의 궤변과 무리수는 ‘여성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자기 머리 속에서 여성은 도저히 가해자가 될 수 없다. 그런데 가해자라고 지목을 받고 있으니, 아예 ‘가해’ 행위를 소거해 버리겠다는 심산이다. 도그마와 현실이 어긋나면, 도그마를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도그마를 위해 현실을 버렸다.

◇악무한(惡無限)의 대결을 넘어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사회는 성문화와 관련된 담론이 걸핏하면 성대결의 양상으로 비화되었다. 그 때마다 남녀는 두 패로 갈려 상대가 내세운 규율로 서로를 ‘단죄’하며 악무한의 세(勢)대결을 벌여왔다.

성(性)은 하위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므로 전면적으로 규율할 수 없을 뿐더러 규율해서도 안 된다. N번방이나 리벤지포르노 같은 극악한 성범죄는 물론, 유명인을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 포르노와 높은 수위의 알페스는 규제해야 한다.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구체적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성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해야한다. 성인이 사적 공간에서 하드코어 BL물을 보던, 포르노를 보든, 성인용품을 가지고 놀든, 도대체 남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서로가 서로의 ‘B사감’이 되어 위선자 노릇을 할 것인가.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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