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이례적으로 한국 대통령 강노높게 비판 “문, 상황 오판과 대북정책 실패 책임져야”

북한이 14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극성-5ㅅ'이라고 적힌 신형 SLBM을 공개했다(VOA).
북한이 14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극성-5ㅅ'이라고 적힌 신형 SLBM을 공개했다(VOA).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여 남은 시기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동맹국 정상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자제하던 워싱턴 전문가들도 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면서 상황 오판과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2일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김정은이 직접 각종 첨단무기 개발 현황을 과시하며 핵무력 강화를 선언했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의도를 직시하지 않은 채 어떤 도발적 성명이나 위협도 ‘대화 신호’로 오판하는 것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VOA는 “30년 동안 북한 핵 문제와 씨름해 온 미 조야에 북한 지도자의 ‘평화와 비핵화 의지’를 믿거나 주장하는 인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며 “1, 2차 핵위기를 거치며 협상을 통한 ‘단계적 접근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협상의 주역들과 워싱턴의 대화파 전문가들조차 북한의 비핵화 의도에 대해선 진작부터 선을 긋고 비관적 입장으로 돌아선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VOA는 빌 클린턴 정부 때 대북 조정관을 지내며 소위 ‘협상파’로 분류됐던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도 이니 6~7년 전부터 비핵화 협상의 비현실성을 주장하며 제재압박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VOA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은 문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집권 5년 차에 들어서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낙관하면서 답방과 추가 회동 등을 거론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제안이자 심각한 오판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VOA에 “김정은의 최근 8차 당대회 발언을 읽으면서 ‘분명한 비핵화 의지’로 읽힐 만한 신호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며 “오히려 그 반대로 김정은의 당대회 연설은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고 핵 능력을 강화하며 완전한 핵보유국 자격으로 미국을 대하겠다는 북한의 결의를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신호였다”고 말했다.

랠프 코사 태평양포럼 명예회장은 ‘김정은이 평화나 비핵화 의지가 분명히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그가 얼마나 순진한지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VOA는 전했다.

코사 명예회장은 “북한은 (당대회를 통해) 핵무기라는 보검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고, 심지어 핵무기에 대한 말이라도 꺼내려면 첫 번째 조치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쯤은 문 대통령이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만 그의 유산을 통일의 진전과 너무 강하게 결부시키는 바람에 북한에 쉽게 이용된다”고 비판했다.

로버트 매닝 애클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VOA에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가용정보와 반대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니 나로서는 몹시 놀랍다”며 “김정은의 8차 당대회 발언은 분명하고 확실했으며, 핵무기를 북한 안보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2차 보복 공격 능력을 확보하고자 새 미사일과 운반 시스템, 핵무기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를 지낸 리정호 씨는 VOA에 북한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한 미국 조야는 전략 부재에서 비롯된 북한의 단순한 행동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분석해 비현실적인 해법을 내놓곤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대흥총국 선박무역회사 사장과 금강경제개발총회사 이사장, 중국 다롄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을 지낸 리 씨는 “대화 신호 운운하면서 자꾸 김정은의 숨은 메시지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문제의 본질을 흐려 올바른 대응과 거시적 정책을 만들지 못하게 막는다”고 비판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VOA에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을 잊고 있다”며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월 발표한 판문점 선언 1조 1항에서 앞서 채택된 남북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기로 약속했다”고 상기시켰다. 베넷 연구원은 “여기에는 남과 북이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치, 사용을 하지 않고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며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포한된다”고 지적했다.

베넷 연구원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정권의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 약속으로 북한이 핵무기나 핵무기 생산 역량을 갖지 못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도 이 선언을 위반했는데 특히 김정은은 그렇게 함으로써 판문점 선언까지 위반했다”고 했다. 이어 “실제로는 세 명 모두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거나 축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핵무기 생산 역량과 재고를 확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정은이 이미 비핵화 약속을 한 만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협상할 필요가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왜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고 기존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북한에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 해도 이는 문 대통령이 거듭 주장해온 ‘비핵화 대화’가 아니라 북한을 핵 강국이자 동등한 군축 회의 상대로 간주하고 마주 앉아 달라는 요구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VOA에 “이미 헌법에 핵 보유를 밝힌 북한은 냉전 당시 ‘전략무기 제한협상’과 ‘전략무기 감축협상’을 이끌었던 미소관계와 같은 동등한 입장에서 미국과 협상하기 원한다”고 했다.

맥스웰 연구원은 “그런 협상을 시작하면 북한은 미국의 핵무기 감축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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