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 본회의를 열어 야당 합의하에 승용차·자전거·킥보드 등을 택배·배달 운송수단에서 제외하는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을 통과시킨다. 이 법안은 택배기사의 처우개선 등을 담고 있어 ‘택배법’으로 불리운다.

이 법의 핵심은 ‘물건을 이동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의 범위를 정해 놓은 것’에 있다. 물건 구입한 사람에게 해당 물건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용 가능한 이동 수단을 ‘화물차와 이륜자동차(오토바이)’로만 한정했다.

8일 국회 본회의서, 화물차와 오토바이만 운송수단 인정하는 ‘택배법’ 처리

퀵서비스와 음식 배달 등을 의미하는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에서 운송에 적합한 이륜자동차만 물건을 배달할 수 있게 인정한다는 것이다. 똑같이 바퀴가 2개인 자전거는 운송에 적합하지 않아 제외됐다. 또한 가방에 물건을 넣고 전동 킥보드를 이용해 배달하는 것도 안 된다.

이 대목이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당초 화물차 이외에 최근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택배 운송수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입법 취지를 무색케한다.

내연기관이든 전동이든 동력원이 있는 이륜차는 법적 배달 수단이 되고, 두 발의 인력을 사용하는 수단은 안 된다는 점에서 ‘모빌리티 산업의 후퇴’라고 지적받는 것이다.

이렇게 화물차 이외에 오토바이만 운송수단으로 허용한 것은 기존 화물사업자의 반발 때문이다. 기존 산업 이익단체인 화물업계의 요구만 반영해 법안을 밀어붙였다는 지적이다. 화물노조는 “다른 운송수단을 인정하면 화물차 택배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승용차, 자전거, 킥보드 배달은 ‘제2의 타다’ 될 운명

결국 과거 ‘타다’ 논쟁에서처럼 승용차,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 다른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사업체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법의 경계선에 놓이게 됐다.

따라서 2019년에 타다와 택시업계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 양상이 택배업계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시 법 경계에서 운영을 이어가던 타다는 “법 근거도 없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는 택시업계의 반발에 지속적으로 부딪혔다. 이후 정치권이 택시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키자 타다는 서비스를 접었다.

배달업계는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신산업 위축이 불 보듯 뻔해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타다 사태가 끝난 지금 시민 불편과 신산업 위축 말고 남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국회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도 이용되고 있는 승용차·자전거 택배는 물론 유망 신산업인 드론배달까지 법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신산업 발전 저해법’이다”라고 강력 반발했다. 당장 쿠팡 이츠, 배민 커넥트 등은 법에 근거가 없는 사업체로 전락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 법 제정을 위한 과정에서 승용차·자전거 등을 활용해 택배산업을 하고 있는 쿠팡, 배달의민족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이 축소되면 상당수 관련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등에 따르면 현재 승용차·자전거·도보·킥보드 등을 이용하는 택배종사자는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화물노조 격렬한 반대에 화들짝 놀란 민주당, 신산업 포기로 선회

민주당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1차 안에는 화물차, 오토바이 이외에도 드론을 운송수단으로 규정했다. 이후 화물노조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자 화물차, 이륜차를 제외한 다른 수단은 모두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화물노조가 이마저도 반대하자 결국 화물차, 이륜차만을 법으로 인정한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현재 화물업계는 무제한 증차로 인한 운임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영업용 번호판을 통해 차량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영업을 위한 노란 번호판에는 택시면허 프리미엄과 비슷한 소위 ‘넘버값’이라고 하는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화물업계는 다른 운송수단을 인정하는 경우 넘버값이 급락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개별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전국용달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등 조직화된 화물노조의 이런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주당이 과거 타다-택시 논쟁에서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표가 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선진국은 드론산업 키우는데 민주당은 빗장 채워

규제 혁신을 외치는 친기업 시민단체 ‘규제개혁당당하게’ 역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제정안’에 대해 제2의 타다금지법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었다.

이 단체의 관계자는 “지금도 이용하는 승용차·자전거 택배는 물론 유망 신산업인 드론 배달이나 도심항공 모빌리티(UAM)까지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하는 ‘제2의 타다금지법’에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글로벌 공조정책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골목을 누비는데 우리만 뜬 눈으로 바라보란 말인가? 법적 불확실성으로 유망 신산업의 성장을 위축시키는 법안을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거짓말 한 셈, 드론택배 근거 사라져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혁신 사례로 꼽았던 드론택배 역시 추진할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0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드론택배 활용 촉진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며 사업 활성화를 주문했다.

그럼에도 정작 정부·여당은 신산업 성장을 막는 법안을 강행하는 셈이다. 미국 아마존, 우버 등은 3~4년 내 드론택배를 본격 상용화하겠다고 밝혔고, 중국에서도 DJI, 이항 등 드론택배 업체가 급성장하고 있다.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가 되는 일이라면, 대통령의 주문까지도 묵살하는 여당의 입법독재가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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