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정인이가 묻혀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공원묘지를 한 여성이 둘러보고 있다. [사진=펜앤드마이크]
7일 오후 정인이가 묻혀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공원묘지를 한 여성이 둘러보고 있다. [사진=펜앤드마이크]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안데르센 공원묘지. 양부모의 학대로 16개월 밖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정인이의 무덤 주변은 전날 내린 폭설이 햐얗게 덮었다.

영하 10도의 혹한, 겨울바람에도 정인이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가파른 자동차 길이 있지만 눈 때문에 한참을 걸어서야 묘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부부는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

준비해온 하얀 꽃다발을 정인의 무덤에 올리고 한참동안 고개를 떨군 뒤 남편이 먼저 자리를 떠났지만 아내는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못했고,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멀 발치에서 바라보던 택시기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정인이의 무덤은 장남감과 과자, 위로의 글들로 뒤덮였다. 피카추와 뽀로로 아기상어 같은 인형들은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이 가져온 것들이다. 양부모의 학대로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위어 가던 사진을 본 사람들은 햇반에 빨대를 꽂은 바나나 우유도 가져다 놓았다.

엄마와 아이들이 남긴 위로의 글들은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늘나라에서는 꼭 행복해야 돼”...하나하나 계속 읽기어가기가 힘들다.

 

정인이의 무덤은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장난감, 과자, 추모의 글로 뒤덮여 있다. [사진=펜앤드마이크]
정인이의 무덤은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장난감, 과자, 추모의 글로 뒤덮여 있다. [사진=펜앤드마이크]

 

정인이가 묻힌 곳은 인근 교회에서 만든 소아백혈병이나 소아암환우의 수목장 묘역이다. 이 교회 목사님은 정인이가 밤에 무서울까봐 작은 등을 설치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뽀로로 노래도 나오도록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서 유래됐다는 인류 공통의 명언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살아있는 정인이를 지키지 못했다.

경찰은 무려 세 번이나 들어온 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양부모로부터 한창 학대를 받고있던 시기, 정인이를 진료한 소아과 원장은 단순 구내염진단을 내렸다.

경찰을 비롯한 수많은 공무원, 아동학대방지센터 등 공공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정인이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16개월만에 삶을 마감해야만 했다.

정인이 사건은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이다. 췌장은 우리 몸속 깊숙이 있는 장기(臟器). 정인이는 췌장이 끊어질 정도로 심한 학대를 당하고 있는데 이웃도 경찰도 외면했다.

목포에서 배로 1시간 이상 떨어진 먼 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사람들은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며 촛불을 들었다. 정인이 사건이야 말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스템 문제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정인이가 췌장이 끊어지는 학대를 당하던 작년 여름과 가을,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의 정점인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정치권이 나서서 정인이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호들갑이다. 법이 미비해서 정인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없다. 이제와서 또 무슨 법으로 공무원 늘리고 세금 들어가는 센터 만들겠다는 것인가?

정인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여성, 엄마들은 이제 아이놓기를 더욱 주저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출산률은 1.0에도 못 미치는 세계 200위권 이하, 최하위다. 급기야 작년에는 신생아 수가 사망자 보다 적어 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6·25 전쟁 시기인 1950년부터 1953년까지도 대한민국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의 풍조가 시작된 것이 10년이 넘었다고 하더라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사상 최초의 인구감소 나라가 아니라면 뭐라고 말을 해야만 한다.

정인이의 무덤을 내려오는 길. 순례자의 무리처럼 뛰엄뛰엄 사람들이 정인이를 찾아 가파른 길을 오르고 있다. 대부분이 30대 여성이다.

손에는 꽃을 쥐고 있지만, 그들의 얼굴은 침울하면서도 잔뜩 화가 나있다. 성난 얼굴로 시작하는 2021, 대한민국이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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