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향해 뛰어간 2020년, 조선시대로 돌아간 지난 3년이었다
끝없는 피해자, 약자 코스프레...여당의 50년 집권전략
용이 어떻게 가재, 붕어, 개구리의 친구가 되는가?
야당은 영원히 집권가능성이 없는 정당인가?
희생과 감동의 세대교체 드라마 없이는 불가능하다

황승연 객원칼럼니스트

2020년은 우리나라가 과거로 수십 년은 후퇴한 한 해였다. 뒤로 미끄러진 것이 아니다. 아예 뒤로 돌아서서 과거를 바라보고 뛰어갔던 한 해였다. 세상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과거로 뛰어가니 미래와는 두세 배나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과거의 많은 슬픈 기억을 꺼내 자학했던 한해였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더 하자고 특별법을 새로 만들었다. 5.18 특별법도 또 다시 만들어졌다. 40년 전의 일에 대해 수많은 조사가 있었음에도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며 재판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아가 1월 5일부터는 5.18에 대하여 국가가 정해준 것 이외의 것을 말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했다. 전태일도 다시 불러냈다. 새롭게 만드는 노동관계법에 대해 ‘전태일 3법’이라 한단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 및 보상을 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위안부라는 허상을 만들어 평화의 소녀상을 확산시키고 여성들의 그릇된 분노를 자극했다. 동학을 기억하자며 죽창가를 부르고, 120년도 더 지난 일들을 꺼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을 한다며 참여자의 자손들에게 신청을 받고 있다. 그들이 언제 어떻게 명예를 잃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돈을 주면 명예회복이 되는지, 어느 지방은 동학의 후손들에게 매월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했다. 돈에 관심이 적을 것 같은 좌파들이지만 모든 것을 돈과 연결시켜 해결하려한다. 돈을 밝히는 데 있어서 우파들은 비교대상이 못된다.

국제관계에서도 과거로 수십, 수백 년은 후퇴한 몇 년간이었다. 냉전시대에 우리가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의 지배에 들어가지 않도록 도운 미국을 향해 우리나라를 수탈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제국주의라고 한다. 소련군은 해방군이고 미군은 침략군이라는 반미사상에 절어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하며 괴롭힌 중국의 침략과 수탈에는 눈을 감고 있다. 중국에 조공하던 영광스러운 과거를 잊지 못했는지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주석에게 ‘한국이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의 큰 꿈’에 함께할 것이라며 우리를 비하하는 동시에 중국에 극진한 사대를 표현하였다. 이 정부의 초대 중국대사로 간 노영민이 시진핑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쓰고 중국에 충성을 표하였던 것도 기억이 난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고 비서실장이었다. 대통령은 역사적인 상식이 부족하여 그 의미를 몰랐었고, 그냥 비서들이 잘못 써준 탓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이 때부터 우리는 과거 조선시대로 수백 년은 되돌아갔다. 중국과 수백 년 전의 관계로 되돌아갔으니 대통령이 그 나라에서 혼밥을 하고, 기자가 그 나라의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군주제가 그리운 사람들인지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까지 떠받드는 행태를 보면 이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정상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좋지만 과거를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특이하다. 세월호 피해자도 돈으로, 5.18 피해자도 돈으로, 4.3 희생자도 돈으로, 위안부 피해자도 돈으로, 동학혁명 참여자 후손들에게도 돈으로, 김정은에게도 돈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돈을 퍼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 같다. 자신들이 땀 흘려 번 돈이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중국에 대해서도 퍼주기는 유사하다. ‘해외석탄발전금지 4법’을 발의하여 우리나라 회사들의 해외 발전소 수출사업을 법으로 막았다. 그 결과 중국은 큰 경쟁없이 이와 관련된 해외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탈원전을 외치며 원전 건설을 포기하는 바람에 현재도 20기 이상의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 중국이 향후 국제 원전 건설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가 될 길을 열어주었다. 어쩌면 미래에는 중국이 은혜를 베풀어 우리나라에 공급해주는 전기에 의존해야할지 모른다. 마치 조선시대에 조공을 바치던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다.

끝없는 피해자, 약자 코스프레로 여당의 50년 집권전략

끊임없이 과거를 파고들어 우리는 피해자이고, 약자이고, 패자이고, 가난한 근로자들이라고 강조한다. 또 이러한 요소를 다 갖고 있는 북한이 최대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집을 소유한 사람은 강자이고,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승자이고, 기업인들은 가해자라 강조한다. 미국과 일본도 가해자다. 미국 및 일본과 협력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가해자이며 심지어 이들을 토착왜구라 덮어씌운다.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겠다’며 피해자의 한을 자극한다.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도 모두 모진 핍박을 받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순교자가 되었다. 모두 약자이고 한이 맺힌 피해자로 만들어졌다. 노회찬은 ‘영원한 노동자의 친구’라고 했고, 박원순을 빼고 ‘한국 현대 여성사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조국과 정경심을 가시왕관을 쓴채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예수로 비유했다. 억울한 재판 결과라며 재판부 판사들의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는 40만 명이나 참여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우리 사회의 집단광기라고 했다. 이런 상황을 기획하고 광기를 연출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인 문재인도 희생자로 만들어 국민들로 하여금 그 피해의식을 나누어 갖게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분노와 원한의 힘으로 다시 정권 재창출을 노리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과거의 한 맺힌 사건들은 절대 잊혀지면 안 된다. 끊임없이 슬픔과 억울함을 자극해서 지속적으로 울궈먹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세월호, 5.18, 위안부, 4.3 문제, 동학까지 그 억울함이 끝이 나면 안 된다. 사람들의 피해의식과 그들의 분노의 수위를 일정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잘 살게 되어 맺히고 쌓인 한을 잊게 되면 안 된다. 구조적으로 못 살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 정책수석을 했던 사람은 ‘자기 집을 소유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투표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자가소유가 늘어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취등록세, 재산세, 종소세, 양도세 등 각종 부동산세금으로 주택 몰수 정책을 펼쳐야한다. 그리고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계속 자극하는 것이다. 50년 집권 전략 중 하나이다. 또 상속세로 기업 몰수 정책을 펼쳐야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세금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회사의 반 이상을 갖다 바쳐야하는 상속세 때문에 기업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면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고, 중산층이 생길 리도 없다. 실업자가 늘면 그들은 끝없이 부자들을 증오하게 될 것이고, 집 없는 서러움과 직장 없는 한맺힘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서로를 동지로 느끼며 억울함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한 억울함을 어루만져주면서 그들이 말하는 50년 집권을 계획한다.

용이 어떻게 가재, 붕어, 개구리의 친구가 되는가?

자유와 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근대시민사회가 될 가능성이 없다. 한 여당의원은 1가구 1주택 법안을 발의한다고 한다. 국가가 개인의 재산권의 사용을 한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여당의원은 상속재산을 4억 원까지로 하고 4억 원 이상의 재산은 모두 상속세로 거두어들이는 법안을 발의한다며 전국순회토론회를 하고 다닌다. 이는 사유재산을 국유화하자는 법안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서 나온 ‘높은 상속세와 누진소득세로 사유재산을 국유화하는 전략’이 2020년 우리나라에서 다시 등장했다. 압도적인 다수의 의석수를 가진 여당의 상상력은 끝이 없어서 헌법의 경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을 부라리며 민주적 통제라 말한다. 중국 문화혁명 때의 홍위병들 모습이 떠올랐다. 헌법이 방해가 되면 개헌을 하자고 나올 판이다. 개헌이 다음 시나리오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구조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재산 축적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근대시민사회의 가능성을 끊어버린다. 그리고 사람들의 억울함과 패배주의 등을 끊임없이 자극해 가재, 붕어, 개구리로 머물게 한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그들의 자녀들은 용으로 만들려고 용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가붕개’들에게는 끊임없이 과거를 들먹인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 무슨 투자, 기업, 취업, 희망이 있겠는가? 이제는 대학을 나와도 취업자리가 없다.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는 온갖 법을 만들어서 노동자와 서민의 정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을 할 회사가 없다. 중대재해 3법 같은 것을 만드는 정부여당이 자기들 편이라고 좋아하는 동안 그들이 일할 기업들은 폐업을 하거나 채용을 줄인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설 기업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다. 이를 두고 코로나 사태 때문이라며 핑계를 대곤 온갖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통과시킨다. ‘가붕개’들은 그 정책들이 자신들의 무덤인줄 모른다. 말해주고 싶다. “용이 어떻게 가붕개와 친구가 됩니까?”

아시타비의 여당, 구제불능의 야당, 몰락하는 우리나라

제 정신인 사람들로선 정부여당이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이해가 안 간다. 주택을 한 채만 가져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만들어 헌법가치인 재산권에 손을 대려고 하면서, 정작 그들 중에선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지고 있거나 아파트로 이미 돈을 많이 벌었던 사람들이 많다. 자기 자녀들은 특목고, 외고, 자사고 등에 보내 졸업을 시켜놓고, 다녀보니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그런 특목고들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을 원수를 보듯 하는 사람들인데 자녀들을 미국으로 영국으로, 심지어는 절대 안 보낼 것 같은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조국, 임종석, 김두관, 윤미향, 변창흠, 그리고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들의 자녀들도 유학을 보냈다. 이러면 우리 정신이 헷갈린다. 앞뒤도 안 맞고 모순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어떻게 지난 3년을 살았는지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이 정부와 더불어 안하무인인 여당의 광기와 적반하장과 아시타비를 얘기하기도 이제는 지겹다. 이런 광기에 끌려 다니는 야당이 더 한심하다. 그들은 외연확장이라며 좌파정당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그러면서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버린다. 그들은 자유우파의 가치를 지켜나가려고 투쟁하는 많은 인사들을 이미 공천에서 탈락시켜 죽였고, 자기 지역구를 버리게 하고 엉뚱한 지역으로 보내 죽였다. 정작 적보다 내부의 적에 더 복수심을 보였다. 이성을 잃은 공천을 했다. 그 결과 전봉민, 이주환 같은 사람들을 공천했다. 절차도 비상식적이었다. 왜 공천마감시간을 그 지역만 2시간을 연장해 주었는지 그것이 설명될 수 있는가? 지금도 그 당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막장 공천이었는데다가 영남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당선된 일부 의원들의 여러 비리가 드러나고 있는데, 아직도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왜 공천을 받은 것인지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공천을 받았는가 하면, 왜 탈락되었는지 설명이 안 되는 현역의원이 있었다. 왜 그 지역에서 공천이 되었는지 영문을 모르는 후보들이 있었다. 왜 그 후보가 연고도 없는 자기 지역에 출마하는지 의아해하는 유권자들이 많을 정도였다. 일부러 여당에게 지기 위해서 했던 공천이 아니라면 이 대체 무슨 공천이었던 것인가? 무슨 계획이 있었고 어떤 작업이 들어갔던 것일까? 지난 4월 총선에 대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 보궐선거를 앞두고 또 야당에 이런 조짐이 또 보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영원히 집권 가능성이 없는 정당인가?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당(미래통합당)이 어떤 공약을 내 놓았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당이 어느 방향으로 나가겠다거나, 어떻게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키겠다거나, 어떤 방법으로 기업을 활성화시키겠다거나, 어떻게 안보를 지켜 국민들이 안심하고 잠들 수 있게 하고, 기업들이 마음 놓고 고용을 늘리고, 외국 기업들이 희망을 갖고 투자하게 하는가에 대한 어떤 얘기도 없었다. 그저 잘못했다는 얘기와 한번만 기회를 달라는 얘기만 떠오른다. 그러는 와중에 왜 공천을 하는지 모를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공천이 아닌 사천은 당연히 말썽이 났다. 기자들은 공천을 받게 된 배경을 찾기 위해 후보들과 공관위원장 및 공관위원들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추적을 했다. 그 결과 공천이 뒤바뀌거나 공천이 취소된 후보들이 여러 명 있었다.

다시 한 번 선택을 해달라거나, 혹은 지난번에 선택을 안했는데 이번에는 선택을 해달라고 하면서 무슨 다른 국가 비전을 제시한 적이 있는가?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야당에 투표를 안했지만 지나보니 그 때 야당이 제시한 그 대안이 옳았을 것 같다는 그런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는다. 내용은커녕 왜 그 사람을 공천했는지 아직도 혼란스럽다. 세상을 보는 야당의 자세가 그렇게 한가했다. 절박함이 전혀 없었다. 혹은 절박함이라는 것이 말뿐이었다는 것을 공천 결과가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의석수는 개헌선까지 무너질 지경까지 왔다. 그럼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국힘당이 망해야 야당이 산다’는 얘기를 자주, 또 많은 사람들에게 듣는다.

이번 공천도 지난 총선 때의 공천과 비슷하게 가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총선의 대참패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출마한다고 한다. 후안무치는 이럴 때 쓰는 단어이다. 또 오거돈 시장과 함께 물러났던 여당의 예결위 수석전문위원 출신 부시장은 그만한 사람이 없고 성과가 많다며 며칠 후 다시 재임용되었다. 이 사람이 부시장으로 내려왔을 때 그는 낙하산이라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국민의힘 시장후보로 출마하겠다고 한다. 지역 언론에서는 벌써 ‘화려한 젊은 경제전문가, 다크호스’라는 단어로 띄워주고 있다. 다 좋은데 왜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난 시장과 함께 부시장을 하다 물러난 사람을, 그것도 정부여당 쪽에서 임명한 사람을 왜 야당에서 공천해야하는지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비대위원장이 민다면서 자가발전으로 떠들고 다니는 것인지, 어떤 음모나 거래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사람이 공천을 받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 그러나 당내에서 이런 사람을 공천을 줘야한다고 작전을 꾸미는 세력들이 있고, 그런 것이 허용되는 야당의 상황이 너무 한심해서 하는 얘기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든 출마할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인사가 갑자기 야당후보로 출마한다는 비상식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비상식과 꼼수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해서 하는 얘기이다. 전봉민 의원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공천이 될 것이다. 지난 총선 패배 후 국힘당이 달라졌는가? 달라졌다면 어떻게 총선에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다시 출마를 얘기할 수 있는가? 어떻게 책임정당이라 할 수 있나? 정당 이름을 부르기도 힘들게 바꿨다는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지난 20대 때가 훨씬 나았다. 자유한국당이라는 당의 이름이 훨씬 나았다. 그 때는 정부여당의 실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공격하는 의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의원들 대부분 잘려 나가고 그야말로 2중대 소리 듣기 딱 좋은 그런 당이 되고 말았다. 망한 국가에서라도 의원 하면서 세비를 받아먹고 보좌진들 부리고 신흥 귀족으로 대접받고 살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일들이 많다. 공부도 하지 않는다. BLM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로텐더 홀에서 무릎을 꿇고 쇼를 했다. 정작 홍콩보안법과 관련된 민주화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관심도 없다. 왜 그렇게 무릎을 꿇었냐고 한 의원에게 물었다. “그냥 동료 의원이 부탁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야당의 수준이다.

정부여당의 한심한 작당에 분개하다가도 야당이 하는 짓들을 보면 더 한숨이 나온다. 야당이 여당과 뭐가 다른가? 몇 명이 탈당하고 남아 있는 102명 의원 중에서 누구 한 명 이래서는 안 된다며 의원직을 내걸고 저항하는 의원이 있는가? 그러면 그들도 모두 공범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않나? 당이 중도좌클릭한다고 국민들이 국힘당 지지로 돌아설 것 같은가? 꿈 깨시라! 이번 보궐선거도 지난 총선처럼 치른다면 답은 뻔하다. 정부여당 실정 때문에 할 수 없이 야당에게 표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현재 야당은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 같아 보인다. 그래서 여당이 여러 방법으로 장난치기 좋은 환경이다. 백신카드도 있고, 지원금카드도 있고, 북한카드도 있다. 또 세작 카드도 있을 수 있다. 여당의 누군가가 정부여당의 독선을 비판하면서 탈당을 한다면 그는 즉시 야당의 시장 후보가 되는 그런 상황이다. 야당 의원들은 자기 집 안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손님처럼 구경만 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 때부터 권력투쟁에 이골이 난 운동권 출신들이 그런 야당을 파트너 취급 하겠는가?

희생과 감동의 세대교체 드라마 없이는 불가능하다.

외국에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해 위기에 처한 정당이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었는지를 교훈삼아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이 1990년 통일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고 통일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자 기민당의 헬무트 콜 수상은 인기를 잃었고 1998년 총선에서 슈뢰더의 사민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25년 동안 당 대표를 지낸데다가 16년 동안이나 정부여당을 이끌며 독일의 통일까지 이뤄낸 헬무트 콜 수상은 정치적 양녀라 불릴 정도로 자신이 지원해온 앙겔라 메르켈을 당 사무총장에 임명한다. 2000년 그녀는 당 대표 겸 원내대표가 된다. 앙겔라 메르켈의 당 대표 취임은 당시에 파격이었다. 여성이고, 동독출신이고, 물리학 박사로 연구원 출신이고, 40대 중반의 나이이기도 했다. 콜 전 수상의 지원 말곤 당내 기반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메르켈이 당 사무총장이었을 때 콜 전 수상의 과거 통일 과정 중 불법 관련 스캔들이 터졌다. 메르켈은 콜 당 대표의 사퇴와 정계 은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메르켈은 정치적인 독립을 이루고 당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5년 후인 2005년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쥐면서 메르켈은 독일 수상에 선출된다. 자신을 키워준 정치적 대부의 등을 밟고 당 대표가 되어 그 힘으로 수상에까지 오른 경우이다. 메르켈 수상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새로운 세대로서 기독민주당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분명히 한 번은 헬무트 콜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현역 정치인으로서의 헬무트 콜의 시간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새 시대의 정치는 새로운 세대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영국 보수당을 이끈 마가렛 대처 수상이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자 보수당은 47세의 메이저 총리를 내세워 돌파했다. 이후 토니 블레어 수상도 44세에 영국 노동당 대표가 됐고, 캐머런도 39세에 보수당 대표가 된 뒤 44세의 나이로 영국의 총리가 되었다. 외국에선 언제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대교체라는 카드를 선택한다. 프랑스의 마크롱도 40세에 대통령이 되었고,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도 44세에 총리가 된 경우이다. 변화에 있어서 반드시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2016년 미국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좌파정책에 지친 미 국민들이 위싱턴 정가의 핵심 밖에 있었던 뉴욕 출신의 사업가 트럼프를 지도자로 선택함으로써 변화를 꾀했다. 변화하는 시대를 대변하는 적절한 인물이 앞장서 국민들에게 그 변화를 이해시키고, 그 변화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줄 때 비로소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과 함께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우리의 옛 격언도 있다. 지금 우리의 야당은 어떤가?

혹자는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실패한 원인을 공천 실패, 부정선거, 재난지원금 살포 등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 것보다 앞으로의 선거를 위해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야당의 패배 원인은 ‘중도좌클릭’과 ‘보수꼰대 이미지’이다. ‘수구보수 이미지’와 ‘중도좌클릭’이 서로 모순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 바로 그 모순 때문에 진 것이다. 그래서 지지자들이 이탈한 것이다. 수구보수세력이 좌클릭 정책을 내니 혼란이 생긴 것이다. 어려움에 빠진 서민층을 도와주더라도 미래에 갚을 기회까지 만들어주는 것도 생각해야하는 것이 우파이다. 그러지 못했고 차별화하지 못했다. 중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원래 우파에 있다가 우파정당의 여러 가지 실정에 실망하여 떠난 사람들이다. 결코 우파적 가치가 옳지 않다고 해서 떠난 사람들이 아니다. 이제 우파적 가치를 수구보수의 이미지를 가진 세대가 말하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와 시장을 새롭게 해석해서 신상품으로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당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던 분들은 엎드려서 등을 내밀고 자신의 등을 밟고 올라가도록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희생만이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고, 그 감동의 드라마가 재미로 연결될 때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헬무트 콜은 40대 동독 출신 여성인 앙겔라 메르켈을 발굴하여 그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등을 내어주었다. 그 거인의 등을 밟고 올라간 메르켈은 빼앗겼던 정권을 되찾았고 독일 총리이자 15년째 EU 리더로서의 역할까지 다하고 있다. 야당의 지도자 여러분! 당신은 지금 망해가는 나라를 위해 새로운 세대가 당신의 등을 밟고 올라가도록 엎드려 등을 내어줄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를 구할 새로운 주인공 세대의 탄생을 위해, 또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조연으로 당신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

황승연 객원칼럼니스트(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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