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연준 칼럼] 2020년, 몰락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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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12.23 09:25:57
  • 최종수정 2020.12.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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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역사가는 2020년을 ‘몰락의 시작’이라고 쓸 것이다. 다만 이것이 좌파의 몰락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몰락인지는 아직 결정나지 않았다. 다만 지금으로선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인사는 차마 못 하겠다. 긴 겨울을 앞두고 있다. 아무쪼록 새해에도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한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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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의 정치 세력화’는 한국 좌파가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보편적 방식이다. 좌파는 역사적 비극이나 사건·사고를 소재로 대중에게 피해의식을 인위적으로 주입하고 자신들이 그 대변자임을 자처함으로써 자기를 지지하는 대중에게 자신들이 도덕적 집단에 속해있다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정치적 반대파를 악(惡)으로 규정한다.

이를 위해 상징자산을 적극적으로 동원한다. 친일(親日), 5.18광주민주화운동, 일본군 위안부, 노무현, 세월호, 미투(#MeToo)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상징자산을 동원한 피해의식의 정치세력화가─비록 자신들의 운동을 전개하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국가경영의 우선순위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국가 권력이 여기에 편승할 경우 기념사업 지원을 남발하며 정치는 ‘제사’(祭祀)가 된다. 억울함에 따라 사람의 가치 평가되고, 저마다 한(恨)풀이와 보상을 요구하며, 정치인은 이들을 대변한답시고 무당 노릇을 한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현실이 그렇다.

국가경영 능력이 부재한 좌파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운동과 상징자산을 활용하고 있다. 우선 운동은 명백한 피아식별을 전제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백하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특유의 ‘갈라치기’가 그렇다. 시종일관 ‘토착왜구’와 ‘적폐’가 발어사(發語詞)처럼 튀어나온다. 지지자가 아니라면 ‘비(非)국민’이라는 식이다. 그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슈마다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 임차인과 임대인, 의사와 간호사, 검사와 판사 등으로 편을 나눠 갈라치기 해왔다. 전형적인 운동권 습성이다.

아울러 현재 집권세력은 여전히 언더도그마에 매몰돼 있다. 거대한 권력을 쥐고도 약자 행세를 한다. ‘야당독재’와 같은 형용모순과 반대파에게 ‘기득권’ 딱지를 남발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한국 좌파는 집권 세력으로서 능력과 안정감을 보여준 바가 없다. 대신 기존의 상징자산의 효능에 기대어 정치적 캠페인을 남발하며 지지층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상징자산도 자산이다. 오용과 남용을 반복할수록 상징의 힘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좌파는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겠다는 전체주의 알리바이로 써먹고 있다. 좌우를 떠나 양심적 지식인들은 이 악법을 비판하고 있다.

세월호 역시 그렇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앞두고 여당·더불어민주당은 또 언론플레이를 했다. 민주당은 180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법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들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협조를 요구하며 엄포를 놓았고, 박주민 의원은 노숙을 선언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민주당에 국민의힘을 핑계거리로 삼지 말라고 비판하기 까지 했다.

이와 별개로 세월호 진상조사의 진짜 목적이 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수 년 동안 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면 특조위야말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무능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유가족에게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주겠다고 속삭이며 자리 보전을 하겠다는 계산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세월호라는 말만 들으면 피로감이 몰려온다.

지난 일 년 동안 문재인 정권은 ‘검찰개혁’을 외쳐왔다. 이 때 노무현이라는 상징은 검찰을 악마화하는 도구였다. 검찰개혁의 구체적 내용과 사회적 합의가 뭐였나? 그저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아니었나? 자신의 부정(不正)을 감추는 가림막이자 자기편을 모으는 깃발에 불과했다. 그 끝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무소불위의 조직을 만든 것 아닌가? 노무현이라는 상징으로 피해의식을 집결시키고 공수처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얻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서 오늘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습니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도 ‘촛불’은 어김없이 등장했다.(사진=연합뉴스)

정치적 상징자산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징을 전유하는 자가 ‘억울한 약자’라는 사회적 공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주류좌파는 이제 약자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올해 5월 터진 정의기억연대 사태도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를 가장 비극적으로 묘사한 집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가장 비열하게 이용해 먹었다. 각종 기부금과 자금집행 관련한 의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더구나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없는 위안부 생일파티를 열어 지탄을 받고 있다.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은 대표적 위안부 운동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얼마나 습관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투’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성과 관련된 비위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관악구 민주당 이경환 의원은 성추행 문제로 제명됐고, 강동구 민주당 임인택 의원은 젊은 여성과 ‘몸캠’을 했으며, 경기 김포시 민주당 유승현 의원은 골프채로 아내를 때려 숨지게 했다. 스스로 ‘여성의 정당’이라 외쳤던 민주당을 두고 ‘더듬어 만지당’이라 조롱이 세간에 파다하다.

피해의식을 정치화하는데 ‘촛불’이 빠질 수 없다. 2002년 촛불시위가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좌파는 모든 정치투쟁에서 이 상징을 활용해왔다. 예컨대 반미, 세월호, 위안부, 탄핵 등 이슈에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런 점에서 촛불을 앞서 언급한 좌파의 상징자산을 하나로 이어주는 상징 중 상징이고 상장 위에 상징이다. 좌파는 촛불을 드는 순간 약자성과 순수성을 선점한다. 메시지의 정합성과 관계없이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한다. 지난 20여년 좌파는 이와 같은 촛불의 효능을 알뜰하게 써먹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대변자를 자임하며 출발했다. 정책을 펼 때마다 ‘촛불의 명령’이니 ‘촛불의 뜻’이니 하며 상징을 상투적으로 박아 넣었다. 급기야 대깨문으로 대표되는 극단적 지지층은 ‘조국수호’와 공수처에까지 촛불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촛불을 떠받들면서 당파적 팬덤과 정적제거 알리바이로 써버렸다. 스스로 성스럽게 만든 상징을 상스럽게 소비한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업적이 전무하지만 ‘피해자 팔이’로 연명해왔다. 그런데 올 해가 지나면서 그 상징자산마저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항상 슬픔에 빠진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손에는 철퇴를 들었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표정이 아닌, 손을 보기 시작했다. 한 해 동안 존재와 상징의 기괴한 불일치가 발가벗겨졌다. 이것은 한국 좌파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원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좌파의 위기는 우파의 기회로 직결되지 않는다. 현재 우파는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탄핵 이후 정치적 이슈마다 분열을 거듭하고, 좌파의 프레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져있다. 이러한 우파를 상대로 좌파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돌일킬 수 없는 몰락의 길을 맞을 것이다.

먼 훗날 역사가는 2020년을 ‘몰락의 시작’이라고 쓸 것이다. 다만 이것이 좌파의 몰락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몰락인지는 아직 결정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인사는 차마 못 하겠다. 긴 겨울을 앞두고 있다. 아무쪼록 새해에도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한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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