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여당의 입법 강행처리를 막지 못했다며 사의를 표명했던 주호영 원내대표가 재신임됐다. 당내 의원들의 대다수 의견이란다. 참 비겁하신 분들이다. 어떤 조직이든 앞날이 불투명할 때 기존 대표를 유임시키는 게 생리다. 반대로 뚫고 나갈, 치고 나갈 방도가 있을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든다. 그러니까 다들 하기 싫은 거다. 마땅한 방책은 없고 욕먹을 일만 기다리고 있는 그 자리 맡기 싫은 거다. 그래서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또 떠넘긴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다시 추대하는 자리에서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부 여당에 투쟁을 해야 할 시기에 당내 분열이 있으면 안 됩니다.” 원내대표를 바꾸면 그게 분열인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간다. 대표를 바꾸는 건 의지를 다지고 전열을 가다듬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게 분열이라니. 당이 분열된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냐는 얘기도 나왔단다. 이건 좀 웃긴다. 설마 국민이란 이름이 당 이름에 들어가 있다고 국민들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국민들은 여러분을 보지 않는다. 국민들의 눈에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다. 미워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가장 슬픈 여자는 잊힌 여자라는 말이 있다. 여러분은, 그러니까, 잊힌 거다. 정권과 맞장 뜰 투사로, 정권을 찾아올 대안으로 여러분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거 내 주관적인 판단 절대 아니다.

5분의 1

일단 국민의 힘은 지역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냥 영남 정당이다. 2008년 37%였던 전체 당선인 대비 영남 지역구 당선인 비율은 2020년 66%로 높아졌다. 10년 만에 거의 두 배 증가다. 이게 정상으로 보이시는가. 전국 정당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수치다. 수치가 높아지면 당내 의견도 영남과 영남 아닌 지역으로 갈리기 십상이다. 어차피 지역구 표를 먹고 사는 분들이다. 영남 지역의 이익을 위해 당의 이익을 기꺼이 포기할 의원들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로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놓고 부산ㆍ경남과 대구ㆍ경북의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이 분들은 그 우려를 증명했다. 전체 세勢가 영남으로 쪼그라들었다면 서울에서는 강남 3구와 용산을 빼고 나머지 지역을 모조리 내줬다. 의원 숫자로만 보면 2008년에는 40석이었다. 현재는 8석이다. 역시 10년 만에 5분의 1로 의석수를 줄이는 쾌거를 달성했다. 국민의 힘 여러분은 전국 정당 맞는가. 정치학자가 아니라서 장담은 못하지만 아니라는 진단 충분히 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0분의 1

2020년 12월 현재 10대ㆍ20대 유권자의 국민의 힘 지지율은 7%다(한국 갤럽). 그나마 4%에서 오른 거라고 한다. 10대ㆍ20대 유권자의 대통령 지지율이 77%에서 40%로 빠지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37%가 이탈했는데 그 중 10분의 1인 3%만 국민의 힘 지지에 합류했다. 비정상도 보통 비정상이 아니다. 내 일도 아닌데 슬퍼서 눈물이 난다. 그러니까 청년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 정권이 싫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힘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표현은 당으로는 치욕이다. 70년 보수 정당의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내년 4월에 웃고 싶다면

그런데도 국민의 힘은 사태를 낙관하는 모양이다. 정권의 실정이 워낙 심각하여 어부지리로 얻을 것이 있다고 믿는 눈치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국민들은 국민의 힘이라는 당을 기억에서 지운 지 오래다. 국민의 짐, 국민의 암 등으로 조롱하는 것도 이제 지겨울 지경이다.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부탁한다. 국민의 힘은 잃을 것이 없다. 이미 기둥이 내려앉고 서까래가 무너져 내린 집안 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그리고 싸워라. 살이 터지고 뼈가 드러날 때까지 사생결단의 자세로 싸워라(은유법 아니고 직유법이다). 제일 무서운 게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그걸 현실에서 증명하라. 그리고 내줘라. 10대ㆍ20대 유권자들에게 가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을 다 내줘라. 정당이라고 스타트업 정당이 없을 이유가 없다. 아예 당 하나 차려 청년들에게 내주시고 공천권까지다 양보하시라.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가 뭔지를 찾게 하고 문제와 싸울 수 있도록 지원을 하시라. 지금 말씀 드린 거 말고도 당내에서도 좋은 의견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건 너무 과격한데? 그건 너무 급진적 아닌가? 이런 생각 마시고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국민들이 다시 국민의 힘이라는 존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과감하게 수용하고 시행하시라. 서울, 부산, 지역구 보궐까지 이제 겨우 4개월 남았다. 그 다음에는 아예 기회 자체가 없다. 예전에도 한 번 이런 말씀 드린 적 있다. 애매하게 사망하면 죽어서도 치욕이다. 치욕의 아이콘으로 남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빈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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