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집권 세력 스스로 법치주의를 짖밟아 인치의 시대를 여는 추미애 사태는 이 시대의 집권 세력인 신주류의 생각과 행동 방식의 민낯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과거의 주류인 보수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은 구주류가 시대를 이끌어나갈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일치된 신념에 기반한 세력으로서 결집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안으로써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민심은 단순한 반대를 넘어서서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그 방향에 헌신하며 행동하는 세력을 요구한다.

구주류의 일부는 오늘의 문제의 원인으로서 가깝게는 탄핵 사건, 멀어야 이명박 정권시의 광우병 선동 사건을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멀게는 탄핵 무효를 주장했고, 가깝게는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415총선 결과를 부정한다. 최근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으로 혼돈에 빠져있다. 구주류의 일부는 당면한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탄핵 당시부터 있어 온 미국의 북한폭격설을 인용하고 과거의 사고방식의 정치지도자가 혜성같이 등장하여 민심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있다. 한마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묘책이 외부로부터 주어지고 정권이 교체되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간을 거슬러가서 모든 상황이 문제 발생 이전으로 원상회복되고 과거가 복원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소원의 제시다. 답답한 현실은 희망을 품게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심정을 뒷받침하는 정도에 그치는 희망만으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지난 3년간 구주류를 대상으로 희망의 메시지만을 제공하는 매체와 보수우파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보고싶고 듣고싶은 메시지만을 전달함으로써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구주류는 희망의 게토에 갇혀 있다. 만들어진 현실 속에서 갇혀있는 구주류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음은 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문제는 탄핵 사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7년 제6공화국의 탄생은 86년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따라서 제5공화국 집권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타협에 의해서 성립되었고 제6공화국 헌법이 이러한 타협의 산물이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제6공화국 헌법에 근거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 시간이 흘러서 세대 교체가 있었다. 과거의 세력이 대체된 현재는 시대 변화의 결과다. 사람이 바뀌고 사조가 변했다. 70-80년대의 민주와 독재라는 프레임은 잊혀져 가고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 역시 일반 시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정치인 출신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대선에서 시민들은 보수와 진보가 돌아가면서 집권하였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그만큼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새천년 이후에 한국 사회의 화두는 “공정”이다. 탄핵 시기에 배경에 있던 정서 중의 하나가 공정이었고 조국 사태에서 다시 거론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화두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 제기된 공정이라는 가치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그리고 이념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요청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보수와 진보나 민주와 독재라는 프레임이 전제하고 있던 집단 정서의 배경에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문제의 제기가 공정으로 표현되었다. 공정의 문제 제기는 97년 금융위기와 이어진 한국사회의 구조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실에서 민주화 이후의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도 세상은 아직 선배 세대의 이념의 전쟁터였다. 대치되는 전선에서 공정이라는 문제는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단지 신주류로 세력이 교체되었을 뿐이다. 탄핵 이후 등장한 신주류 세력은 민주라는 가치를 내세우지만 조국 사태와 추미애 사태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권력을 사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공정을 짖밟는 것을 민주라고 말할 수 없다. 구주류 세력이 부르짖는 자유라는 가치는 그동안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의 대중적 용법이 초래한 자유에 대한 오해와 함께 자유를 부르짖는 구주류의 구체적인 개인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태도로 인하여 가치로써 대접을 받지 못했다. 현실을 전제하지 않고 자유가 공부를 통해서 이론적으로 가르치게 되는 경우라면 자유는 오히려 이해되기 어렵다. 민주와 자유가 대립되어 싸우는 전선에서는 가치 문제가 다루어지기 어렵다. 민주는 타락하고 자유는 개인과 동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현실에서 공정이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공정 주장의 배경에는 개인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국가가 개인의 현실적인 요구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건국이후 세월이 흘러서 개인은 국가란 무엇이며 어떻게 공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었다. 이는 공적인 것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며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요청이다. 그동안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해 오던 서로 대치하던 진영은 탄핵 사건과 그 이후의 조국 및 추미애 사태에 이르러 정신적 파산을 하였다. 견고해 보이는 진영은 사실은 인기인과 추종하는 팬으로 되어있고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공정의 요구는 권력이 사적으로 이용되어서 안된다는 것인데 그런 요구가 우려하였던 바로 그런 상황에 지금 우리 모두가 놓여 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의 가치를 만들고 이것을 공감의 토대로 삼으면서 그 터전위에서 정치 세력을 구축하여야 한다. 하지만 구주류는 아직 탄핵의 덫이라는 최근 3년간의 경험에 매몰되어 앞서 나가지 못하고 과거의 복원만을 기대하고 있으며, 신주류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터무니없이 백년 집권의 장담을 하면서 권력의 사유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길을 잃었다.

정치적 가치가 행동으로 나아가고 정치 운동의 주체가 그 가치를 지지자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넣어서 그것이 체화될 때에 내면화된 가치의 기반위에서 정치세력이 만들어진다. 민주화 이후의 가치로서 오래 전부터 나온 공정이라는 주장을 다시 생각하면서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돌아 보아야겠다. 추구하는 이념이 없으며 이념을 토대로 한 세력이 없고 오로지 권력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세태는 견고한 듯이 보여도 정신적 기반이 없는 허공에 세운 집이다.

현실을 망각한 진영의 게토에서 나와서 현실을 보고, 과거의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 공정을 요구하는 시대의 주장을 들으면서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그러한 가치에 헌신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다, 구주류의 문제만이 아니고 대한국민 우리 전부의 과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자. 밤은 깊지만 다가오는 새벽을 준비해야 한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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