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원순 10년'을 결산할 때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시민사회의 복마전이자, 좌파의 병참, 전근대로 회귀하려는 반동의 본영(本營)이다. 그러니 폭로하고 폭로하고, 또 폭로해야 한다. 반격의 효시(嚆矢)를 여기서 쏘아야 한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과 싸움이다.

야권에서 '누가 후보로 나오느냐' 만큼 중요한 점은 '어떤 아젠다로 선거를 치르느냐'다. 고(故) 박원순 전(前) 서울시장은 단순히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한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좌파 시민운동의 야전사령관이었고, 지방정부에 새로운 시스템 이식한 장본인이었다. 이제 정치인 박원순은 없지만, 박원순식 정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원순식 정치는 조직 방식과 정치적 방향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조직 방식에 관해 말하자면 '정치투쟁과 보급투쟁의 일원화'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운동 단체는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돈을 구하는 일련의 행위를 은어로 '보급투쟁'이라고 부른다. 보급투쟁은 후원자 모집, 기획상품 판매, 기부행사 등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박원순은 정치 쟁과 보급투쟁을 일치시켰다. 필자는 시민사회 원로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여연대가 삼성을 때리면 '아름다운재단'에 돈이 들어온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생전 모습.(사진=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전(前) 서울시장의 생전 모습.(사진=연합뉴스)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재벌을 비판하면서 재벌로부터 기부를 받았다. 이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경선(競選) 맞상대였던 박영선 후보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재벌은 왜 박원순이 이끄는 단체에 기부를 했을까. 아마 비판 세력을 적당한 관리할 수 있다는 낙관, 기업 이미지 쇄신, 나름의 선의(善意) 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업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묘혈꾼을 먹여 살렸다.

서울시장 취임 이후 보급투쟁은 질적으로 변화했다. 과거 운동권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수많은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들은 인권·생태·보존·감성·상생 등의 구호를 내걸고 사회적기업, 도시재생사업을 한다며 서울시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혈세로 기껏 한다는 사업이 담벼락에 벽화 그리기, 카페·박물관·기념관·공원 조성하기 만들기나 기념사업 개최 내지는 유통 따위다.

예컨대 도시재생 1호로 지정된 '창신숭인'을 보자. 봉제역사관은 가위, 재봉틀, 과거 사진, 옷 몇 벌 정도를 전시 중이다. 이런 역사관에 건설비 39억원이 들어갔고, 연간(年間) 운영 예산이 7억 7000만원에서 15억원 정도 소요되고 있다고 한다. 산마루 어린이 놀이터에는 26억 8500만원이 투자됐다. 그러나 정작 이 지역에 어린이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마을탐방로 및 여성안심도로에는 20억원 이상 예산이 소요됐다. 도로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도시재생사업이 서울시에 46개나 진행됐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일관된 특징이 있다. 첫째, '생산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이들이 내세운 정서적 가치는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전문성이 없다. 겨우 시설관리 수준이다. 셋째, 자생력이 없다. 꼬박꼬박 혈세가 입금되는데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그저 '갬성'('감성'을 비꼰 말) 포장만 잘 하면 된다. 넷째, 상당수 협동조합이 운동권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졌다. 결국 이처럼 쓸모없는 사업의 본질은 운동권과 시민단체의 돈줄 역할이라는 것이다. 서울시에 등록된 사회적기업은 2020년 7월 기준 총 2559개소로, 고용인원은 4만9281명에 이른다.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은 시민사회가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시민단체는 지원에 목을 멜 수밖에 없으며, 지원을 보장받기 위해 좌파를 지지해야만 한다. 이들은 시민단체라는 외피를 뒤집어 쓴 관변단체이며, 선거 때 동원되는 정치투쟁 예비군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를 사유화했다면, 박원순은 시민사회를 국유화했던 것이다. 나아가 박원순식 정치는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이 석권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로 이식됐다.

또한 박원순은 시장권한을 남용하여 운동권에게 ‘자리’를 만들어줬다. 《신동아》(新東亞) 2020년 7월호 기사 〈"정권에 붙어 해먹고 있다" 권력집단 된 NGO 네트워크〉에 소개된 어느 시민단체의 한 인사는 "고정적 월급이 주는 안락함도 있고, 비상근이더라도 공적 지위를 갖게 됐다는 명예가 생겼다"고 한다. 권력자의 간택으로 '어공'이 된 이들이 안락함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충성'뿐이다.

물론 출신을 떠나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에너지 시책(施策)을 종합적으로 마련하는 에너지정책위원회에 방송인 김미화, 작가 공지영,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등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도대체 이런 인사들이 에너지에 대해 무엇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사람 챙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원순은 서울시장 취임 4년 만에 이런 위원회를 무려 62개나 신설했다.

당파적 행태는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TBS 교통방송을 빼놓을 수 없다. 출연료 505억원 가운데 388억원이 서울시민의 혈세로 지출됐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음모론을 난사(亂射)하는 프로파간다의 요람이었다.

정치투쟁와 보급투쟁의 일치가 조직 방식이라면, 정치적 방향성 따로 있다. 그것은 근대와 발전에 대한 거부다. 서울시청 옥상에서 양봉(벌치기)을 했고, 도시 한가운데에서 농사를 짓는다. 서울시는 '도시농법', '도시텃밭' 등 사업에 2020년 한 해에만 보조금 10억8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 중 최악은 노들섬이다. 2005년 당시 이명박 시장은 오페라하우스급(級) 랜드마크를 계획했고, 후임인 오세훈 시장은 '한강예술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1년 박원순시장은 이를 전면 백지화하고 주말 농장용 텃밭을 만들었다.

한강 노들섬.(사진=연합뉴스)
한강 노들섬.(사진=연합뉴스)

도시재생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재생은 도심의 낙후된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낙후함'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그 낙후성을 유지하는 것을 사업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허접한 박물관이나 기념관, 알량한 벽화 등이 그 방증이다. 이런 시설이야말로 빈한(貧寒)한 시절을 목가적이고 낭만적으로 소환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심의 낙후함은 해결해야할 과제가 아니라 사업 지속의 에너지원이 될 뿐이다. 발전하지 못한 지역이 많을수록 시민단체의 먹거리는 늘어난다.

이들에게 타인의 가난은 조직의 자산이다. 서울시는 영화 〈기생충〉의 촬영지였던 반지하주택 일대를 '기생충 탐방코스'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려 했다. 2018년 박원순 시장은 '현장시장실'을 설치한답시고 한여름에 삼양동 옥탑방으로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게 선풍기까지 보내줬다.

동네 주민들의 고단한 삶마저 권력자의 인자함을 돋보이게 무대 소품이 됐다. 빈자에게서 가난마저 빌려와 정치쇼의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빈자를 위하는 척하며 빈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협동조합·도시재생사업·사회적기업, 그리고 '옥탑방쇼'의 본질이며, 한국 좌파의 타고난 정무감각이다.

그러니 박원순은 단순히 성추행 의혹 때문에 자살한 정치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인 박원순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정치로 보급투쟁을 했다. 서울시장 돼선 혈세로 시민사회를 길들였고,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키웠다. 돈과 지위의 당파적 배분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연출을 위해 타인의 빈한함을 팔았다. 그렇게 만들어낸 권력은 목가적 낭만의 헛짓을 자행하다가, 마침내 발전의 질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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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전(前) 서울특별시장의 영정.(사진=연합뉴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 10년'의 결산과 박원순의 정치적 퇴장이 목적이 돼야 한다. 이것은 야권에서 누가 출마한다고 해도 공유해야 할 핵심 아젠다다. 특히 이듬해 치러질 대선까지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야권은 별다른 투쟁을 보여주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야권 지지자들 역시 탄핵책임론, 이른바 '부정선거' 공방(攻防),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대한 찬반과 여기서 파생된 '신당창당론' 등으로 사분오열 중이다. 그나마 '조국 사태'와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벌어졌던 시기가 그나마 야권이 공세를 취하고 상대적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한 때였다. 모두 문재인 정권의 부패와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대중(大衆)의 공분을 응집시킬 수 있었던 사건들이었다.

서울시 지원을 받은 사회적 기업과 도시재생사업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패와 위선의 종양이다. 이미 복수의 단체에서 추적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방만과 위선을 폭로한 근거로, 야권 서울시장 후보는 1년 동안 모든 협동조합 위탁사업을 감사하고 시정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것은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지만, 그와 동시에 여권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권에게 정치적 타격이자 보급투쟁의 상실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박원순 10년'을 결산할 때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시민사회의 복마전이자, 좌파의 병참, 전근대로 회귀하려는 반동의 본영(本營)이다. 그러니 폭로하고 폭로하고, 또 폭로해야 한다. 반격의 효시(嚆矢)를 여기서 쏘아야 한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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