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은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의 반면교사
과거에 보았던 미 대통령 선거의 깨끗한 승복과 승자의 화합 메시지가 어우러지는 멋진 종결 되기는 힘들어 보여
이제는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단순히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아니었던가
우리가 진정한 중견국이라면 정치와 경제의 현실 자체도 선진국이 본받고 싶은 선례들 만들어나가야

차두현 객원 칼럼니스트
차두현 객원 칼럼니스트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현재 여전히 개표가 진행 중이고, 워낙 접전이 계속되고 있어 속단은 어렵지만,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가 예측한대로 바이든 후보의 당선 쪽에 무게가 실리는 추세이다. 다만, 누구의 승리가 이루어지든 우리가 과거에 보았던 미 대통령 선거 이후의 과정 즉 패자의 깨끗한 승복과 승자의 화합 메시지가 어우러지는 멋진 종결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개표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우편투표 개표 이후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하자 트럼프 후보 측에서는 선거의 관건을 쥔 일부 주에서의 개표에 의혹을 제기하였고, 또 개표중단과 우편투표의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이든 후보가 신승(辛勝)하는 것으로 대외적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당선인 확정과 원활한 정권인수 절차가 지연될 수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의 개표 과정이 ‘이변’으로 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는 2016년에 이어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또 한 번 빗나갔기 때문이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적게는 4% 이내 크게는 8% 이상을 앞서갔으며, 이는 미국 특유의 각 주별 선거인단 할당방식과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변수를 무난히 극복하는 수치일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막상 개표가 이루어지자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에게 유리한 현장투표 결과와 바이든에게 압도적인 우편투표 결과의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누구도 흔쾌히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양측 지지자들 사이의 극한 대결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 선거에서만 빗나간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하원에서 여유있게 승리하고 상원도 경우에 따라 다수당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은 틀린 것이 되어버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많은 정치학자와 선거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개인이 지니는 득표효과의 뚝심을 무시했다는 점,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샤이 트럼프’의 예상 밖의 집요함과 단결력, 그리고 ‘트럼프를 몰아내자’(Kick Trump out) 이상의 비전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바이든 캠프의 한계 등이 예상밖의 개표결과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 분석의 방향성은 틀리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가 있다. 이제는 미국 정치에서도 선거는 더 이상 선의의 경쟁이 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고, ‘우리’보다는 ‘내 편’과 ‘다른 편’의 편 가르기가 횡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인종과 다양성의 용광로로 알고 있던 미국 사회에서도 서로 은근히 반목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라는 특정 개인이 이런 현상의 이익을 봤고, 선거전략 면에서 이를 활용해온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트럼프라는 인물은 이러한 현상의 촉진자였을 뿐 그 원인은 되지 못 한다. 아니, 트럼프의 대척점에 섰던 사람들도 정도와 유형만 틀릴 뿐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어쩌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상황은 비디오와 SNS 정치로 인해 극심해진 대중영합주의와 열심당원들에 대한 선동, 그리고 ‘편 가르기’에 편승하는 정치인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현대 민주주의의 어두운 면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민주주의의 원리들, 공정한 경쟁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 단순히 다수만을 따지는 1차원적 정치가 아니라 전체 사회를 함께 끌어안기 위한 소통과 화합의 정신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들어야 할 정보”보다는 “듣고 싶은 정보”에만 집착하고 나에게 불리한 정보들을 ‘가짜 뉴스’로 매도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애써 부인하는 순간 남는 것은 진영논리와 증오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해 낸 자랑스러운 존재로서 우리 자신을 인식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과연 이번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현상을 우리는 경험하지 못 하였던가, 단순한 의석상의 승리나 내가 지지하는 이의 당선에 집착하여 더 중요한 가치를 깨닫지 못 했던 것은 아닌가. 어떤 방법이든 누구를 단순히 이기기만 하면 되며, 그로 인해서 얻어진 승리의 판에서 나와 다른 의견은 얼마든지 무시되고 기계적 다수로 눌러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아니었던가. 우리가 진정으로 중견국이고 성공한 경제와 만개한 민주주의를 성취한 존재라면 이제 정치와 경제의 현실 자체도 선진국이 본받고 싶은 선례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 대선은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의 반면교사일지도 모른다.

차두현 객원 칼럼니스트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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