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폐기, 북한의 대남전략 폐기, 남북 군사관계의 안정화'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종전선언 촉구는 경솔한 언행
북한의 대미전략은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로 인정받는 것...대남전략의 핵심은 한미동맹의 와해 또는 무력화
종전선언이 위장평화의 수단이었던 역사의 교훈 상기해야...이스라엘의 철저한 안보정신 배워야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2018년 제7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를 위한 관련국들의 조치들이 실행되면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병행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020년 9월 22일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영상으로 발표한 기조연설에서는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했고,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이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으므로 비핵화와 무관하게 종전선언부터 하자는 논리였다.

서해에서 북한군이 표류 중인 한국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직후에 종전선언 발언이 나오면서 “지금이 종전선언을 촉구할 때인가”라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보름 후인 10월 8일 문 대통령은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화상 연설에서 재차 종전선언을 촉구했다. 그러자, 여당 정치인들은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자는 움직임을 보였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7대 종단의 일부 지도자들도 전 세계 1억 명을 목표로 “종전선언과 평화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서명운동을 벌이자고 호소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들 종교지도자들이 종전선언-평화협정에 내포된 함정들과 관련한 역사의 교훈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 마디로, 종교 지도자들이 북핵 폐기, 북한의 대남전략 폐기, 남북 군사관계의 안정화 등 3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상과 같은 ‘평화 이벤트’를 촉구하는 것은 경솔하기 짝이 없는 언행이다.

북한의 대남전략과 핵무기를 그대로 두고 종전선언?

북한은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통해 신형 대륙간탄도탄(ICBM)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포함한 신무기들을 선보였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코로나바이러스, 태풍·수해 등 3중고에 시달리면서도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는 핵무기들을 만들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온 배경은 불변의 대미(對美)·대남(對南)전략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행동을 억제하여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로 인정받는 것, 한반도로부터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 등의 대미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미국과 핵전쟁을 벌일 처지가 되지 못하면서도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온 주된 이유다. 남쪽을 향해서는 비대칭적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여 경제적으로 우세한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남조선 혁명’과 주체통일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강력한 대남전략을 구사해왔다. 당연히, 대남전략의 핵심은 한미동맹의 와해 또는 무력화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동맹이 건재하는 한 전쟁도발, 남조선 혁명, 주체통일 등이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한미군의 미사일방어(MD)를 무력화할 수 있는 공격수단들을 추구해왔다. ICBM, SLBM, 변칙기동 탄도미사일(북한판 Iskander 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등은 이런 목적에 부합하는 무기들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기존의 대남전략들을 폐기하거나 수정할 그 어떤 징후도 없다. '주체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명시한 유일영도 10대 원칙, '전국적 범위의 민족해방 혁명과업 완수'를 명시한 노동당규약 등도 그대로이고, 대남전략을 수행하는 체제와 기구들도 그대로이며 사상교육도 불변이다.

이스라엘을 벤치마킹하라

남북 간 군사관계도 안정화와는 거리가 말다. 북한은 핵무기, 화생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한 상태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한국에 대해 일방적·비대칭적 우위를 누리고 있고, 재래 군사력에 있어서도 양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한국의 군사적 목표들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방사포 등 신형무기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공세적·침투적 대남 군사전략도 불변이다. 개성 남북공동사무소 폭파, 서해 한국 공무원 사살, 한국을 위협하는 성명과 발언 등 도발적인 언행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대로이다. 반면 한국군은 이런 상태에서도 군대를 줄이는 개혁아닌 개혁을 추진 중이며, 지금까지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동맹의 활용할 수 있는 ‘핵심고리’가 되어 온 현 전작권-연합사 체제를 해체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안보원칙에 비추어 이해가 되지 않는 한국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탄탄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주변 아랍국들과 평화협정을 추진해온 이스라엘과 크게 대비된다.

이스라엘은 한국의 1/5에 불과한 작은 국토를 가진 국가이지만 안보태세는 그 어떤 나라들보다 확고하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들과 네 차례의 전쟁을 치루면서도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동맹국 미국의 중재에 힘입어 이집트, 요르단, UAE, 바레인 등과 평화협정 또는 수교협정을 맺어나가면서 스스로의 활로를 넓혀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협정(1974~5)과 캠프데이비드 협정(1978)을 통해 이집트와의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며, 라빈 이스라엘 수상과 아라파트 PLO 의장 간의 역사적인 오슬로 협정(1993)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고 팔레스타인과의 상호인정 공존체제를 구축했다. 1994년에는 요르단과의 수교협정을 체결하여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며, 2000년 9월 15일에는 UAE 및 바레인과 수교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더하여 이스라엘이 오만, 수단,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수교를 위한 물밑 활동을 하고 있음도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이스라엘이 공개적으로 핵보유를 천명한 적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제3차(1967)와 제4차 중동전쟁(1973) 사이에 핵무기를 완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의 핵보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Osiraq) 원전을 공습했고, 2007년에는 북한의 지원을 받아 건설중인 원전으로 의심되었던 시리아의 군사시설을 공습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도 주변 세력들로부터 자국을 방어하는 데에는 철두철미하다. 한국은 한국군이 운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미군의 사드(THAAD) 체계 등 2중 방어막을 구축한 상태이지만, 북한이 이 방어망을 돌파하는 신무기들을 만들고 있어서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THAAD 도입을 놓고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미사일을 방어하는 Arrow-3, David Sling, 그리고 PAc-3 체계라는 3중 방어막에 로켓탄과 포탄을 요격하는 4차 방어막인 아이언돔(Iron dome)을 합쳐 4중 방어막을 구축한 상태이며, 최근에는 무인기 공격을 막아내는 5차 방어막인 드론돔(drome dome)을 구축하고 있다. 요컨대, 이스라엘은 안보 우위를 토대로 주변 아랍국들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안보 우선’ 원칙을 고수한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면 나라는 비극을 자초한다

남북 간 공존과 상생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남북 간 교류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어떤 정부든 이를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당연히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도 확고한 안보와 여건 충족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으며, 그런 상태가 되면 사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전쟁 걱정을 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평화협상이 있어서가 아니며, 평화협상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반면 여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종전선언과 그것이 가져올 평화의 허상(虛像)들은 나라의 안보를 허물고 망국(亡國)과 공산화를 견인할 수 있다. 자고로, 불순한 생각을 품은 일방이 포함된 평화협정들은 예외 없이 파기되었고 그 경우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상대의 안보태세를 이완시키고 방심하게 만드는 위장평화 수단이었을 뿐이다. 1938년 9월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을 양해하는 조건으로 나치독일과의 평화를 성취했다고 자랑했지만, 6개월 후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째로 점령하고 이어서 폴란드와 프랑스를 차례대로 침공했다. 나치 독일은 독소불가침조약을 깨고 1941년 소련을 침공했고, 2차대전 중 원폭 두 발을 맞은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소련은 4년전에 체결한 일소중립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소련군은 만주를 거처 단숨에 한반도의 38선까지 내려왔다.

북핵과 북한의 대남 전략이 온존하고 남북 간 군사관계가 안정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종전선언이 체결된다면, 한국내 좌파들은 “이제 평화가 왔으니 한미동맹, 주한미군, 유엔사 등은 필요가 없다”고 소리칠 것이며, 공산주의의 무서움도 망국의 설움도 경험해보지 않은 순진한 젊은이들은 6·25 전야에 그랬듯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쳐댈 것이다. 이런 식의 평화쇼가 대한민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알려면 멀리 볼 필요도 없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베트남 전쟁은 종식되었지만, 2년 후인 1975년 월맹(북베트남)은 협정을 깨고 전면 남침을 재개했다. 좌파들이 ‘민족, 평화 그리고 반미’를 외치는 중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던 자유월남(남베트남)은 56일 만에 붕괴했다. 미군이 떠나면서 남겨준 수많은 군사장비들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남베트남군이 무기를 버리고 도주해버린 탓에 남베트남의 전투기는 날아 오르지도 못했고, 북베트남군은 미국제 M-48 Patton 탱크를 타고 사이공 시내로 진주했다. 이후 수백만 명이 숙청·처형되었고, 백만여 명이 보트피플이 되어 바다로 나갔지만 상당수는 상어밥이 되었다. 놀랍게도, 혼란의 시기 동안 ‘민족·평화·반미’를 외치면서 남베트남의 패망을 재촉했던 대부분의 좌파인사들과 총을 들고 미군과 싸웠던 배트콩들도 ‘인간개조학습소’에 갇히거나 숙청되었다. 그중에는 극력 데모에 앞장섰던 짠 후탄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베트남의 이런 역사를 아는 종교지도자들이라면 그리고 6·25 전쟁을 전후하여 공산치하에 수많은 성직자들이 순교당했던 한반도의 역사를 기억하는 종교지도자들이라면 종전선언이라는 ‘쇼‘를 촉구하기보다는 종전선언을 위한 여건 충족을 촉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