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 중국은 우리를 무엇으로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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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10.28 10:56:29
  • 최종수정 2020.10.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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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의 대표적 친한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Korea Society)가 주는 밴플리트상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방탄소년단 대표는 미국은 6.25 전쟁 때 우리와 큰 시련을 함께 극복한 혈맹이었음을 상기시키는 말을 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에 발끈하고 나섰다. 자기들의 ‘항미원조(抗米援朝)’를 무시하고 미국을 치켜세웠다는 것이다. 곧 이어 중국의 한국전 개입 70주년을 맞으면서 시진핑 주석부터 일반 언론 기관에 이르기까지 ‘항미원조’ 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세계 전체가 들으라는 듯.

중국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을 도대체 무엇으로 알고 있는가? 항미() 원조가 틀린 말은 아니다. 6.25 당시 마오쩌둥은 중국 본토를 장악한지 겨우 일 년 조금 넘은 상태였다. 그는 입록강 유역으로까지 밀려나고 있는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한반도에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폄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다. 당시의 북한군이나 북한의 위정자들, 특히 김씨 왕조의 입장에서 본다면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부족한 일이다. 그런데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사흘 만에 수도를 점령당했고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미군의 참전을 요청했으며 유엔군의 지원까지 받았던 우리 대한민국 국민도 저들 침략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항미원조’를 고마운 마음으로 상기하라는 말인가? 6.25 전쟁에서 (당시는 중공군이라고 불리었던) 중국군은 대한민국 국민과 생사를 걸고 승부를 겨루는 적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그 사실을 잊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세계 제일의 패권 국가를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하니 이제 오만으로 이성을 상실하여 이웃나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도 갖출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인가?

중국이 ‘화평굴기’ ‘도강양회’ 등을 넘어 ‘중국몽’이니 ‘일대일로’니 하는 구호를 내세우며 세계 패권 국가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패권 국가의 대열에 끼어들 것은 감히 꿈조차 꾸지 못하고 기껏해야 약소국가 처지를 벗어나 중견국가의 지위라도 유지하고자 하던 우리는 중국의 궐기를 흠모 섞인 마음으로 바라보는 여유를 가졌었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중국몽’이 마치 우리의 꿈이라도 되는 듯 적극적으로 반기는 객기까지 보였다. 그런데 이제 ‘중국몽’이니 ‘일대일로’니 하는 거창한 추상적 구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분명히 드러났다. 70년 전의 일이었던 ‘항미원조’ 전쟁에 대한 중국의 자랑스러운 강조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역사는 변화의 연속이며 특히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70년 전 일이었던 6.25 전쟁에서 현재의 중국이 우리의 적이었고 미국이 혈맹이었다고 해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미국으로부터 원자폭탄 세례를 두 번이나 받으며 전례 없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던 일본은 지금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 아닌가. 하지만 70년 전 일이었다 해도 중국은 우리의 주적을 도우며 우리에게 적대 행위를 한 일을 당시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미안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아직도, 아니 어쩌면 다시 새롭게,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마치 자기들이 큰 희생을 감수하며 우리를 도와준 일인 양 오만불손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런 상대인데 우리에 대한 그 나라의 의도가 이제는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믿을 근거가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나는 중국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을까 이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모시며 살아야 했던 먼 과거는 뒤로 하고 잊는다 하자. 그리고 우리 한반도의 분단은 중국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일과 일본을 패배시키기 위해 손을 잡았던 소련과 미국 사이에 전 후 균열이 발생한 데서 비롯된 일일 뿐이었다고 하자. 하지만 단순한 군사분계선으로 갈리었던 남북한이 두 개의 적대적 정치 체제로 고착된 데 대한 현 중국, 전 중공의 책임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6.25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우려하여 매우 주저하던 스탈린을 김일성이 집요하게 설득하여 적극적 지원 약속을 얻어낸 후 면밀한 준비를 거쳐 촉발한 전쟁이었다. 이는 이미 다 드러난 사실이다. 하지만 스탈린을 설득하는 데에는 김일성이 마오쩌둥으로부터 스탈린이 수락한다는 조건부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미리 얻었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은 덜 잘 알려져 있다. 곧 냉전을 열전으로 폭발시키며 남북의 우리 민족 모두에게 결코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힌 6.25 전쟁이라는 재앙을 촉발시킨 데 공산주의 중국이 결정적 기여를 했던 것이다.

강대국들의 힘에 휘둘리는 역경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가졌었다. 하지만 두 번 다 공산주의 강대국들의 반대와 간섭으로 놓쳤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유엔의 감시 하에서 남과 북이 인구 비례로 동시 선거를 치러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키자고 유엔총회가 결의했을 때이다. 이때 스탈린과 그 지시를 받던 김일성의 반대로 북한에서는 유엔감시하의 선거를 치를 수 없었다. 통일 국가 탄생이 무산되고 남북한이 이념적으로 적대적인 두 개의 정치 체제로 고착되었다. 두 번째 기회는 소련과 중공의 내락을 받은 김일성이 유엔이 개입된 국제협약이었던 38선을 무시하고 기습 남침한 탓에 한 달 만에 대한민국이 종말을 맞을 뻔했던 6.25 동족상잔의 전세가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역전되었을 때이다. 우리 국군이 평양을 점령하고 유엔군이 압록강 국경 지대까지 진출함으로써 대한민국 중심의 민족 통일 가능성이 목전에 다가왔었다. 그런데 그 때 중공군이 한반도로 쳐들어옴으로써 통일의 그 두 번째 가능성이 무산되었다. 우리 민족 모두의 최대 비극인 분단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짓밟은 것이 중공군의 개입이었다. 그런데 철천지한으로 남을 그 일을 중국을 지금 ‘항미원조’라는 말로 미화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은 그 때 이미 없어졌어야 할 나라였거나 아니면 분단은 항구적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앞에서 중국은 서슴지 않고 그 말을 하고 있다.

더욱 침통한 일은 중국의 이런 지극한 무례에 대해서 우리 정부는 강력한 항의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70년이 지난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했던 일들 까지 트집 잡아 우호적 국가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정부이다. 과거가 미래 보다 더 중요한가? 국제관계 운영 방침이 왜 이처럼 달라야 하는가? 중국이 지금 와서 다시 ‘항미원조’라는 말을 강조한다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북한 체제에 대한 지지와 한미동맹의 와해, 한반도 분단 상태의 고착이나 아니면 친중적 친공적 북한 중심의 한반도 통일과 중국의 영향권으로의 한반도 편입이야말로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요, 전략이라는 것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인터넷에 투시된 어떤 미래 지도를 보면 중국은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의 남부 일부까지도 중국의 영토로 간주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고구려 역사는 중국사의 일부로 여긴다는 증거는 사방에 널려 있다.

이 모든 일의 배경에는 물론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다툼이 격화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 거인들 사이의 패권 싸움은 냉전으로 끝난 미소간의 세력 다툼과도 다르다. 군사와 경제력의 대비뿐 아니라, 어느 쪽이 자국민만 아니라 세계인들 전체의 의식과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것이 오늘날 일고 있는 패권 전쟁의 특성이다. 그 점에서 볼 때는 선동과 선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데 이미 이골이 난 중국이 단기적으로는 미국보다 더 큰 이점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다. 중국은 여러 나라의 정치인이나 전문가 집단을 친중 쪽으로 회유하기 위해 천문학적 자원을 투자하고 있을 뿐 아니라 IT 기술을 활용하여 과거에 출판된 학술지 까지 감쪽같이 재편집 할 정도이다. 인터넷 부대를 동원하여 남의 나라 선거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내포하는 위험은 사실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중국의 힘이 커지고 오만해 질수록 친중 쪽으로 기우는 것이 우리가 독립국가의 국민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인가? 중국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알려면 지난 10여 년 사이 우리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분석해 보면 된다. 우리는 이미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서둘러 반성해 보며 거족적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할 일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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