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경향', '남을 속여 넘기면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잘 한 일로 생각하는 품성'이 우리 민족 DNA에 자리잡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다. "(조선인은)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은 되지 못합니다"라는 하멜의 말이 어쩌면 우리 민족에 대한 정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그 가족들이 심각한 비리를 저지르고 상식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서도 이리저리 구멍난 곳을 막으려 구차한 변명을 둘러대고 있다. 심지어 그들을 옹호한답시고 또 다른 유력 인사들이 되지도 않는 ‘막말 릴레이’를 줄지어 펼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이 잘못하고 있음을 아는 지지자들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지지를 거두지 않는다. 그 가장 큰 명분은 “전(前) 정권 사람들은 더 했다”라는 근거 없는 비교다.

설사 전 정권 사람들이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그것을 이유로 부정(不正)과 비리에 대한 면죄부가 지금 정권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도둑질해도 나만은 도둑질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겠다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이다.

더구나 지금 정권은 전 정권 사람들이 잘못했다며 부정과 비리 없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자는 감언이설로 국민의 호응을 얻어 세워진 정권이 아니던가. 그러나 세상을 바꿔보자는 비장한 각오는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지지받는 사람들이나 모두 까맣게 잊은 듯하다. 지금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리도 좀 해 먹자는데 그게 어때서?” “우리 편이니까 나쁜 짓 조금 저질러도 다 눈감아줄 수 있지”라는 식의 이중잣대가 난무한다. 이쯤 되면 우리 국민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지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과 비리의 피해자가 바로 가해자를 지지하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가? 우리 민족은 원래 이렇게 사리 분별없고 비루한 사람들이었을까?

우리의 민족성을 최초로 서양에 알린 기록은 그 유명한 《하멜표류기》다. 1653년(효종 4년) 네덜란드 무역선 스페르베르 호(號)는 대만(포모사)에서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가던 중 심한 풍랑으로 난파돼 제주도 대정 바닷가로 표류해왔다. 선원 64명 가운데 생존자 36명은 무려 13년 하고도 28일 동안 조선에 억류돼 있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선원은 16명이었는데 그중 여덟 명이 일본으로 탈출했다. 이로써 억류 사실이 알려지자 조선은 그제서야 나머지 여덟 명도 석방하여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해 줬다. 탈출한 선원 중 헨드릭 하멜은 13년 이상 밀린 봉급을 동인도회사에 요구하기 위해 보고서를 썼는데, 그 보고서가 《하멜표류기》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해안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해안에 지난 2017년 8월16일 설치된 하멜 일행(一行) 난파 희생자 위령비.(사진=연합뉴스) 

《하멜표류기》는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난파와 표류에 관한 내용이고 제2부는 ‘조선왕국기(朝鮮王國記)’라는 제목으로 조선의 지리, 산업, 기후, 정치, 군사, 풍속, 형벌, 종교,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하멜 일행은 14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제주도와 한성부(漢城府)와 전라도 등 여러 곳으로 끌려다니며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을 했으므로 조선의 실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이 책은 조선을 서양에 알리는 최초의 저서라는 점에서 크게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조선 시대 우리 민족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으므로 그 가치를 높게 살 수 있다.

17세기 유럽 사람의 눈에 비친 조선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왕국기’에 실린 25개 분야 중에 ‘민족성’ 항목에 하멜은 조선 사람들의 민족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코레시안(조선인)은 훔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은 되지 못합니다. 남을 속여 넘기면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잘 한 일로 생각합니다. (중략) 한편 그들은 착하고 남의 말을 곧이듣기를 잘 합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그들에게 우리 말을 믿게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들은 여자같이 나약한 백성입니다. (중략) 네덜란드 인 얀 얀스 벨테브레(박연)는 타르타르인(청나라 사람)이 얼음을 건너와 이 나라를 점령했을 때, 적과 싸워 죽은 것보다 산으로 도망해서 목매달아 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고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살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식으로 그런(비겁한) 병사들을 오히려 동정해줍니다. (중략) 그들은 피를 싫어합니다. 누군가가 전투에서 쓰러지면 곧 달아나고 맙니다. (후략)”

하멜은 조선인을 그다지 우수한 민족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하멜 일행은 오랜 세월 조선에 억류당하면서 군역(軍役)·감금·태형·유형·구걸 등 모진 풍상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을 친절하게 대해준 관리(官吏)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하멜 일행에 대한 대우는 좋지 못했다. 표류 초기 이들의 목에 쇠사슬을 채워 네 발로 기게 했고 철을 얻기 위해 난파선과 거기서 나온 나무를 모두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조선 조정은 청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이들을 여기저기 끌고 다녔고 관리들은 표류자들에게 지급된 부식을 다 빼앗기도 했다.

하멜이 타르타르인이라 부른 청나라 사람들이 와서 서양인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까 두려워 조선 조정은 이들을 이리저리 감추기에 정신이 없었다. 《하멜표류기》에는 “1656년 연초(年初)에는 조정 대신들과 그밖의 고관들은 우리의 존재가 넌더리가 난 나머지 국왕에게 우리를 제거해버리라고 촉구했다. 당국은 이 안을 놓고 사흘이나 토론했다. 훈련대장은 우리를 그냥 죽이는 것보다는 각자에게 동등한 무기를 주어 조선인 병사 두 명과 죽을 때까지 싸움을 붙인다면 국왕이 공공연히 외국인을 죽였다는 비난도 나돌지 않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라는 기록도 있다. 이런 논의 내용은 하멜 일행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이 은밀히 알려줬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얼마나 비겁한 처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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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죄인을 다루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심지어 당시 조선은 하멜 일행에 신세를 져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854년 11월, 청나라 사신이 와서 예폐(禮幣)를 바쳐야 하는데 시중에서 녹피(鹿皮·사슴 가죽)를 구할 수 없었다. 효종은, 하멜 일행이 녹피를 많이 가져왔다는 제주목 목사(牧使)의 장계를 거론했고 영의정 정태화는 그 녹피를 받아 청나라 사신에게 바치고 대신 하멜 일행에게는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목화를 지급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효종은 이에 동의하였다. 표류해 온 사람들에게 물건을 빌린다는 민망함과 구차함보다 청나라에 바칠 공물이 더 급했던 것이다.

예폐는 외교적으로 보내는 선물을 말한다. 그런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정 물품을 반드시 구해서 보내야 했다면 그것은 이미 선물이 아니라, 바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공물인 것이다. 병자호란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조선은 여전히 청나라에 바칠 공물 조달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표류자들의 녹피를 빌리는 것이 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의견이 있었다. 승지 서원리(徐元履)가 “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표류해와서 의지하여 머무를 곳이 없으므로 조정에서 돌보고 회유해 주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한데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문득 서로 사고 팔며 장사꾼처럼 한다면 어찌 나라의 체면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라는 상소를 올렸다. 효종은 의정부에서 논의해보라고 했지만 별다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원리가 자존심 있는 조선의 관리인 것 같지만 그도 대책 없는 사람이긴 마찬가지이다. 조정에서 그만한 생각 없이 표류자들에게 손을 벌렸겠는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지…….

이런 상황에서 하멜이 조선에 대해 호의적인 기록을 했을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에 보도된 ‘사기·무고·위증’ 등 3대(大) 거짓말 범죄가 역대 최다(最多)라는 기사는 하멜이 쓴 우리의 민족성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 수긍하게 만든다. 기사에는 “우리 사회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사용하는 것에 둔감해지고 있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둔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거짓말을 잘했던 아닐까?

이 기사를 접한 후 ‘훔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경향’, ‘남을 속여 넘기면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잘한 일로 생각하는 품성’이 우리 민족의 DNA에 자리잡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더 절실히 하게 됐다. ‘(조선인은)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은 되지 못합니다’라는 하멜의 말이 어쩌면 우리 민족에 대한 정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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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신뢰자본…‘거짓말 범죄’ 판친다〉라는 제목으로 한국경제 2020년 10월17일 1면에 실린 기사.(출처=한국경제) 

“나는 우리 국민을 믿는다.”

내가 아는 팔순의 경제학자께서 늘 하는 말씀이다. 그는 미군 수송선 귀퉁이에 몸을 싣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 인천항까지 배웅 나온 할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반드시 돌아와서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그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그는 연일 감격과 기쁨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자신이 출국할 때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조국에 돌아와서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교육의 진보를 위해 80평생을 헌신했고 지금도 그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공이 우리 국민의 힘에 있다는 그분의 말씀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또 우리나라와 함께 발전해 온 그분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반복하여 들어도 늘 가슴이 벅차고 희망에 부풀게 했다. 그러나 요즘은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정말 우리 국민이 믿을 만한 존재일까? 자꾸만 의혹이 생기고 심각히 회의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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