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과 변칙으로 먹이사슬과 지위 챙기려는 노골적 수탈행위
일반 국민은 기회에 있어 희생자로 전락하는 현대판 음서제

모든 문명국가 헌법에는 자기책임의 원리가 명시적으로 선언되어 있다. 자신의 선택과 자기 행동에 따른 책임 그 이상을 져서 안되고, 또 한편으로 자기의 선택과 기여 행위가 없음에도 불공정한 혜택을 누리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3조 제3항의 연좌제 금지이다. 후자는 특수계급 창설의 금지로 나타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1조 제2항, 그리고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같은 조 제3항이 그것이다. 죄의 연좌도 안되지만, 공의 상속도 허락되지 않아야 진정한 민주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1세기 어떤 정치체제도 사회적 특수계급이 있어야 한다거나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새로운 수탈계급으로 등극하여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없는 특별 구역에서 온갖 호화사치를 누리면서 그 직위를 세습하였던 소비에트의 노멘클라투라 계급도, 태자당으로 상징되는 중국 공산당의 특수계급도, 북한의 소수 지배계층도 그 체제 내에서 공식적으로 그 특권적 지위를 인정받은 바 없다.

따라서 사회적 특수계급이란 그 명칭의 유무, 여하를 불문하고, 계급적 특수성이 현실적으로 인정되는지 여부를 따져야 하며, 명목과 형식을 기준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여기서 특수함이란 보통의 국민들보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획득・유지함에서 우월함을 누리는 것이고, 계급성이란 본인의 능력과 역량, 타인들과의 공정한 기회를 통한 경쟁과 무관하게 혈연・지연・정파・이념성에 따라 그러한 특수성을 갖는 동질적 집단이 만들어짐을 의미한다. 거기에 세습성까지 더해지면 완벽한 특권 계급이 생겨나는 것이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2020. 9. 23. 대표발의한 이른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은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민주유공자”가 아니라 “민주유공자 자녀”에 대한 예우를 핵심으로 하는 법안으로, 음서제의 도입을 통해 특별한 대우를 받는 집단을 또 하나 만들어 내려 한다는 의구심을 씻을 수 없다.

이 법안에 따르면 등록신청을 받으면 국가 보훈처장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민주유공자, 그 유족 또는 가족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사실상 특권을 누리는 대상과 범위를 정권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 특권의 핵심은 그 누군가를 입시, 교육, 취업, 공직에서의 특별하게 처우하도록 법으로 강제하여 일반 국민들이 누리지 못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데 있다.

우선 교육기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지원 대상자를 취학시켜야 하는데, 교육부장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역별로 취학비율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교육지원 대상자에 대한 입학고사, 입학의 결정 등 입학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함으로써 남들과 다른 통로로 입학할 수 있는 별도의 길, 그 누구도 잘 모르는 길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제19조). 그리고 입시를 우회하여 들어가면 수업료가 면제되는데, 교육지원 대상자에게 수업료등을 면제하거나 지원하는 연한(年限), 기준 및 교육지원을 하는 교육기관에 대한 보조 등에 필요한 사항 역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 견제 밖이다. 이른바 ‘고(高) 퀄리티’ 교육도 보장해 준다. 이들이 외국인학교 등에 취학하는 경우 예산의 범위에서 수업료등의 일부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유학시의 수업료도 국가가 지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제20조).

사회에 나오면 취업의 특권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군부대, 국립학교와 공립학교, 상시고용인원 20명 이상인 공ㆍ사기업체 또는 공ㆍ사단체는, 사립학교는 이들이 지원하는 경우 채용시험에 가점을 주어야 하고(제23조, 제24조),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군부대, 국립학교와 공립학교에는 의무 채용 비율이 정해지고, 신규 채용시 특별채용이 의무화된다(제27조). 사기업체에도 우선고용의무를 지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으로 취업지원 대상자를 우선하여 고용하여야 하고, 사립학교는 교원을 제외한 고용인원의 10퍼센트 이상을 이들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각 기관은 이러한 채용 의무 이행 실태를 신고하고, 국가보훈처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업체에 출입하여 설명을 요구하거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제29조, 제30조). 이들을 해고, 해임할 경우는 물론, 자진해서 사표를 낸 경우에도 국가보훈처에 통보해야 한다(제36조). 철밥통을 만들어 줄 뿐 아니라, 혹시 철밥통에 녹이라도 슬까 봐 국가로 하여금 사법권까지 발동하여 감시, 감독하여 철저하게 특정 집단의 울타리가 되는데 복무하도록 하는 법이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우원식 의원은 이 법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 받자 대상자가 800명 조금 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였다. 그의 말대로 구체적으로 숫자가 특정되는 그룹이 그 수혜대상자라면 굳이 이렇게 별도의 거창한 특별법을 만들어 대한민국 입시와 좋은 일자리에 꽂아 넣을 자리를 그렇게 널찍하게, 그리고 시행령에 숨겨서 은밀하게 만들 이유가 조금도 없다. 필요하다면 기존의 법률에 이 대상자들을 특정하여 혜택을 받도록 하면 된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민주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하겠다면 그 명예를 기리는 것으로 족하고, 피해가 있다면 국가가 금전으로 일시 배상하면 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헌법 제11조 제3항은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다.

우원식 의원을 비롯한 김승원, 박홍근, 신정훈, 양정숙, 우상호, 위성곤, 윤관석, 윤미향, 윤재갑, 이성만, 이용빈, 이원택, 인재근, 임종성, 전혜숙, 정성호, 정청래, 정춘숙, 최종윤 의원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사람들조차 그 자녀는 물론 본인에게도 어떠한 특권이 허락되지 않는데, 당신들이 말하는 민주유공자는 훈장 포상자들 이상의 어떤 기여를 하였다고 보기에 그 자녀에 대한 세습적 특권을 허락하려는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우원식을 비롯한 20명의 의원들은 대한민국 곳곳에 민주유공자라는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는 기준으로 특권층을 만들어 세습시키려는 법안을 당장 철회하여야 한다.

민주유공을 빙자한 세습 특권법안에서 레닌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정치에 있어서 언제나 기만과 자기 기만의 어리석은 희생자이다. 그리고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인 상투적 어구, 언명, 약속 등의 배후에 있는 각 계급의 이익을 알아내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언제나 희생자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행히도 어느 시민단체에서 저 스무 명의 법안 발의 국회의원 지역구와 그 사무실을 찾아 1인 시위 등으로 악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반칙과 변칙으로 내 편의 먹이사슬과 지위를 챙기려는 노골적 수탈행위를 국민이 눈치채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 빨대를 꽂아 놓으려는 기생세력 양성 시도가 참으로 집요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특수계급은 잠깐의 달콤함을 누린 끝에 언제나 심판을 받고, 멸망의 길을 걸어갔다. 욕된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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