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지금의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상황이 그렇게 '탑-다운'과 소그룹 결정에 매달려야 할 위기상황일까?"
"껄끄러운 이야기까지 듣는 제대로 된 소통과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 이상의 '대못' 없어...종전선언 추진에 그런 과정 있었나?"

차두현 객원 칼럼니스트
차두현 객원 칼럼니스트

2018년 이후 일반에도 익숙해진 대외협상 방식이 하나가 있다. 이른바 '탑-다운' 접근(top-down approach)라는 것인데, 이는 실무선에서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어 온 협의나 합의들을 최종적으로 최고정책결정자 즉 해당 국가의 정상(頂上)들이 마무리 짓는 방식인 '버텀-업' 접근(bottom-up approach)과는 구분된다. 한 마디로 '탑-다운' 접근은 실무선에서의 합의가 쉽지 않고, 또 그 파급영향 때문에 중견 관료들이 과감한 결정을 꺼리는 사안에 대해 정상들이 '통 큰' 합의를 하는 방식이다. 과거 미ㆍ소간의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이나, 중동평화협정과 같은 중대한 결정들이 바로 이 '탑-다운' 접근을 통해 이루어졌고,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도 이 '탑-다운' 방식이 주로 사용되어 왔다. 분명, '정상회담'을 통한 사안의 속 시원한 타결은 국가 대외정책의 백미(白眉)라고 꼽힐 만하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하나가 있다. '탑-다운'이라고 해서 이것이 모든 분야에서의 '탑-다운'은 아니라는 점이다. '탑-다운' 방식을 통해 최고지도자들이 타결한 사항을 실무선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효과를 지니려면 광범위한 여론수렴이 필요하다. 즉, '탑-다운'은 중요 협상의 타결과 이행에 관한 것이지, 정책결정과정을 최고지도자나 특정그룹이 독점한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왜 자기 멋대로의 정책결정과 그 스타일을 짐작하기 힘들다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도 2019년 하노이에서의 '노딜'을 택했을까, 그의 개성대로라면 그냥 볼튼 회고록이나 우드워드의 『격노』에 나온 것처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협상을 타결했으면 더 모양새가 나고 '사진 찍기'에도 더 좋지 않았을까? 트럼프도 여론을, 의회의 분위기를, 그리고 참모들의 견해에서 완전히 눈을 돌리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그게 민주적 정책결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외교정책결정 이론가들은 흔히 대외정책이 결정되는 방식을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한다. 하나는 '소그룹 결정'(small group decision)으로 최고지도자와 그의 핵심참모들을 중심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지는 것이 정부 부처들 간의 협의와 조정에 따라 정책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가장 광범위한 여론수렴을 필요로 하는 마지막 방식에서는 의회, 시민단체까지가 이에 참여함으로써 말 그대로 초당적ㆍ범국가적 합의를 이루려 한다. '소그룹 결정'은 일상적이지 않으며, 위험한 상태를 유발할 수 있는 사안 즉 위기 시에 빛을 발한다. 여론수렴의 시간이 제한되고 때로는 국가존망이 걸린 사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외의 방식에서는 좁게는 정부부처간 넓게는 국가 전체를 포괄하는 여론수렴이 필요하다. '소그룹' 결정은 많은 경우 "국가가 꼭 이루어야 할 일"보다는 "특정 그룹이 좋아하는 일"을 택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종전선언'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현재의 남북대치나 불신이 '종전선언'의 부재 때문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남북 간의 신뢰를 쌓아나가고 경색된 한반도 정국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이 간다. 그런데, 그 방식이 반드시 '종전선언'일 필요는 있을까, 그리고 그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어보려는 노력을 얼마나 해 봤던가. 지금의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상황이 그렇게 '탑-다운'과 소그룹 결정에 매달려야 할 위기상황일까? 가끔은 우리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어느 정부나 자기의 정책노선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며, 그래서 '대못 박기'라는 말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껄끄러운 이야기까지 듣는 제대로 된 소통과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 이상의 '대못'은 없다는 사실이다. '종전선언' 추진에 과연 그러한 과정이 있었는가.

차두현 객원 칼럼니스트(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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