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읽은 책 중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게 있었다. 제목 때문에 읽었다. 제목이 너무 슬펐다. 제목은 그래서 아직도 기억 속에 있다. 얼마 전 이 제목이 다시 떠올랐다. 어떤 남자의 죽음 때문이다. 이 남자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그냥 40대 공무원이라는 게 이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이름 대신 사회적 지위와 소속으로 남은 이 남자는 외롭게 죽었고 아마 외롭게 잊힐 것이다. 사건은 간단하다. 북한이 바다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사살하고 시신은 태워버렸다. 이후 사과인지 유감 표명인지 알쏭달쏭한 편지 한 장을 달랑 보냈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반북 정서를 증폭시키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갈까 궁리하던 정권은 감읍하는 중이다. 사살, 소각, 유감, 감사 딱 네 단어다. 이 정부 들어 하도 이상한 일을 많이 겪다보니까 다들 둔감해진 모양인데 사이즈를 줄여보자. 우리 아이가 다른 집 아이한테 ‘이유 없이’ 맞고 들어왔다. 그 집에서는 유감이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게 전부다. 그럼 나는 “매우 이례적인 사과”이고 “전화위복의 계기”라며 폭행사건을 마무리하는 꼴이다. 그저 맞고만 들어왔어도 매우 이상한 전개인데 심지어 아이가 죽었다면? 게다가 죽은 아이 시체를 그 쪽 집에서 대충 처리했다면? 눈이 돌아가지 않을 부모가 없을 것이다. 이성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면 부엌칼을 들고 그 집으로 쳐 들어갈 일이고 이성이 감정을 눌렀다 해도 최소한 경찰서부터 달려갈 사안인 것이다. 이 상황이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그냥 슬슬 묻히는 중이다. 아직도 안 놀라우신가.

흑인의 생명만 소중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은 안 소중하니

이 사태에 대한 정부와 여당, 친정부 세력들의 말인지 똥인지 구별 안 되는 언급 비판은 안 하련다. 망나니가 망나니짓 하는 거나 인간쓰레기가 쓰레기 같은 소리 내뱉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화가 나는 건 국민의 힘인지. 짐인지, 암인지 하는 당에서 하는 짓이다. 미국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했을 때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며 뜬금없는 퍼포먼스까지 펼치더니 정작 제 나라 국민이 개처럼(이 표현만큼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이 말만큼 딱 들어맞는 게 없다. 정말 죄송합니다) 죽은 이 상황에서는 정말 하는 일이 없다. 죽인 놈을 향해 비수를 들이대야 하는데 대통령만 물어뜯고 있다. 유치하고 졸렬한 정쟁이다. 대통령 어디 계시느냐 따위의 시위가 세월호, 박근혜, 몇 시간, 뭐 했냐와 뭐가 다른가. 죽은 자식 부모 심정으로 생난리를 쳐야 맞다. 내 형제가 죽었다고 생각나서 나서야 맞다. 그냥 정권 비판 몇 마디하고 끝이다. 그걸로 할 일이 끝났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이 정권 못지않게 한심한 집단이고 가끔은 더 미운 것이다.

이름에서 제발 국민을 빼라

다 이해한다. 당신들이 숨기는 당신들의 본명이 ‘가마니 당’이라는 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전략의 전부라는 거. 뭘 잘해서 지지율을 올리는 게 아니라 여권, 청와대가 삽질을 해야 지지율이 올라가는 정당이라는 거.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게 있다. 야당 소릴 들으려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민주당 2중대인지 호위대인지 소리 안 들으려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자존심 관리도 포기한 당신들은 뭐하는 집단인가.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다더니 그 전철을 그대로 따라간다. 당신들의 당에는 ‘국민’이 없다. 그러니 제발 부탁인데 당신들 이름에서 국민을 빼라. 보는 국민 스트레스 받아 혈압이 올라가니 제발 국민은 잊으시라. 사살 소각 40대 공무원은 만날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는 이 정권에게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감히 이름에 담고 있는 국민도 아니었다. 사람도 아니고 국민도 아니었던 40대 공무원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소멸해간다.

월북이면 죽어도 되나

사건 초기부터 정권은 40대 공무원을 월북으로 몰아가기 바빴다. 월북이라면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우리 국민을 사살한 적이 없다. 당연히 대통령이 책임 질 이유도 없어진다. 이걸 노렸다면 성공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아무리 가족이 나서서 부인해봐야 월북의사를 포착했다면서 군사비밀이라 더는 밝힐 수 없다고 우기면 끝이다. 사실상 그렇게 마무리 되는 중이다. 덕분에 이제 우리는 혹시 남북관계가 부드러워져 금강산 여행이 가능해져도 절대 여행길 못 나서게 됐다. 산책 하다가 총 맞아 죽어도 항의할 방법이 없다. 월북으로 몰리면 그걸로 그만인데 무슨 강심장으로 북한 여행씩이나. 우리 쪽에서 월북이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망명이다. 북한은 망명을 허용하거나 불허 통보 후 돌려보내야 정상이다. 돌려보낸 후에는 대한민국 정부 소관이다. 배신자든 반역자든 여기서 처리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이 정상적인 과정이 사라졌다. 북한이 수고를 덜어주겠다며 총질을 해도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40대 공무원은 다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었다. 만만하다 못해 밥이나 다름없는 남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혹시 그 사람이 미국인이었다면? 하다못해 중국인이나 러시아인, 심지어 시리아 난민이었다면? 북한도 최소한의 계산은 하는 집단이다. 후폭풍을 우려해 일단 구조부터 하고 봤을 것이다. 적어도 말 같지도 않은, ‘해상에서의 도주’ 운운하면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 존재니까 쏜 거다. 정권에서 아무 소리 안 할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 쏜 거다. 40대 공무원은 나라를 잘 못 만난 죄로 죽었다. 죽여도 되는 나라가 국적이라 죽었다. 그래서 더 억울한 죽음이다. 어느 쪽에서도 보호 받지 못하는 존재, 그 40대 공무원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현재의 모습이자 미래다. 대한민국은 또 다시 새로운 영역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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