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3법'에 견제는 커녕 동조하는 야당 대표 믿을 수 있나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시장을 정치권력으로 통제하자는 독선적인 기업관에 불과
시장 권력의 본질은 '기업경쟁력'...과거 초일류 기업들의 운명도 결국 소비자 선택에 따라 좌지우지
경제 권력의 탐욕이란 무지의 산물이거나 시장을 오독한 결과...탐욕적인 것은 정치일 뿐
'경제민주화' 정치 상품 팔기 위해 文정부에 동조한 김종인...이념 정체성 분명히 해야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O ‘경제가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는 약자 고스프레

경제민주화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유령은 생명력이 끈질기다. 잊을만하면 나타난다. 더 이상 배회하지 못하도록 ‘경제민주화’라는 관(棺)에 대못을 박아야 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9월 16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 및 제정에 대해 ‘원칙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로나 19 펜데믹과 미·중 무역갈등으로 기업의 운신의 폭이 크게 좁아진 때에 야당 대표 그것도 보수정당 대표가 정부 여당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조하는 행태를 보인 것은 그 자체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 ‘경제민주화’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정치상품을 정책에 반영시킬 호기(好期)라고 보지 않았다면 설명하기 어렵다.

9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기업을 “국가경제의 합리성이란 개념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시대가 달라져 기업들의 행동 방식이 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과거에 한번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상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김종인의 말을 되받으면, “그에게 정책의 합리성이란 개념은 안중에 없었다. 경제민주화는 절대선(絶代善)으로 경제민주화를 빼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가 된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이미 머리에 한 번 박힌 이상 그렇게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기업관은 독선에 차있다.

그의 경제민주화 지론은 간명하다. “경제력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보이지 않게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넓어져 경제세력을 정치세력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다. 경제 세력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경제력이 강해지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경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로 경제권력에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씩 짚어보자. 시장권력이 탐욕적인가.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해 줘야 생산비가 회수되고 투자자가 주식과 회사채를 보유해야 생산설비를 위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 권력은 ‘기업경쟁력’의 다른 표현이다.

과거 초일류 기업이었던 노키아, 코닥, 소니의 몰락을 보면 기업 경쟁력, 즉 시장권력은 ‘상수(常數)’가 아남울 알 수 있다. 정치와 달리 경제에서는 상시적으로 소비자의 투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권력이 다른 경제권력을 견제한다. ‘경제 권력의 탐욕’은 무지의 산물이거나 시장을 오독(誤讀)해서다. 시장은 ‘비인격적 자원배분기구’이기 때문에 탐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오히려 정치가 탐욕적이다.

김종인 류(類)의 경제민주화론자들은 ‘금권정치’(plutocracy)를 들먹인다. ‘지대추구’가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정치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금권정치’는 축적된 부를 이용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이 같은 상황인식은 과장된 것이다.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정치적 소득을 얻으려는 정치인에 의해 ‘경제의 합리성’은 압살(壓殺)되어왔다.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 한다’는 김종인의 주장은 강자의 ‘약자 코스프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 검찰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불법승계혐의’로 기소를 강행했다. 그에 앞서 ‘수사심의원회’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참석 위원 13명 가운데 10명이 같은 의견을 내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음에도 무시됐다. 수사심의원회는 검찰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는 사안에 대해 수사 계속 및 공소제기 여부 등을 결정함에 있어 ‘외부 전문가들에게 심의를 받아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2018년에 검찰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간 8 차례에 걸쳐 심의위원회의 권고가 검찰에 의해 수용됐다. 하지만 이재용 사건만은 예외였다.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쥐락펴락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 가.

O 헌법 제119조 2항에서 경제민주화를 빼고 적더라도..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헌법 제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이다.

119조 2항에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를 빼고 적으면 어떻게 될 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가 된다.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를 빼더라도 의미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헌법 제119조 제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이다. 1항과 2항을 연결해 보면, “자유와 창의를 경제상의 기본질서로 하되, ‘필요한 경우’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로 압축될 수 있다. 이는 전형적으로 ‘원칙과 보칙’의 관계이다. 이때 유의할 것은 보칙이 원칙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의 ‘필요한 경우’는 ‘경제의 조화’로 대표될 수 있다. ‘민주화라는 정치용어’를 쓰지 않고서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헌법 제119조 2항의 ‘핵심 구절’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이다. 이들 목표는 “소득재분배 및 공정거래정책” 등 개별정책을 통해 추구되고 있다. 만약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개별정책의 강도를 높이면 된다. 따라서 이를 ‘경제민주화’로 통칭할 이유는 없다. “필요하면 규제와 조정할 수 있다”로 해석하는 것이 정도다. 경제민주화는 오도된 개념이다.

O 외화내빈 한 경제민주화 논의

원래 경제민주화 개념은 독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노동자의 경영참여’ 내지 노사정 합의에 기초한 ‘협조적 행위’(concerted action)이라는 구체성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경제 민주화’는 정치용어로서,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었던 적은 없었다. 비유하면 일종의 신앙으로 논증 없는 확신이었다. 그러다 보니 ‘본질과 논거’가 제시되기보다 ‘당위성’이 강조되었다. 부족하다싶으면 ‘패러다임, 시대정신, 헌법 가치’가 동원 되었다. 논의가 추상적으로 흘러가다보니 경제민주화는 ‘울림’만 컸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논의에 함몰돼 3년을 끌면서 한국경제의 구조를 업그레이드 시킬 기회를 놓쳤다.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는 좌파들이 우파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다. 좌파들은 문제 제기는 능하지만 문제 해결은 별개의 차원이다.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선에서 ‘정책 어젠더’가 되었지만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로 이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무딘 손으로 초정밀 시계를 수리하겠다고 덤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저임금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은 “분배개선을 통해 경제의 선순환을 꾀하려했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와 맥을 같이 한다. 주지하다시피 소득주도성장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무리한 임금인상으로 저학력, 미숙련, 종사상 지위가 취약한 계층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났고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은 정규직에게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O 기업을 심(心)정지 상태로 몰고 갈 기업규제 3법 독소조항

초미의 관심이 된 기업규제 3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지만 타당성을 담보하지 못해 폐기 된 것이다. 유사 법안이 과거에는 옳지 않다가 지금 옳을 수는 없다. 세모는 세모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기업 3법은 ‘공정거래 3법’으로 칭해지지만 비상한 시기에 ‘기업을 심(心)정지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독소조항을 품고 았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이 국회의원 176명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이는 ‘다수의 폭거’다. 다수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라는 정치 상품을 팔기 위해 이들 대열에 합류한 종범(從犯)인 것이다.

그가 반대하지 않은 기업규제 3법 중 ‘공정거래법개정안’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20%에서 30%로 높이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추가 지분 매입을 위해 투입되는 돈은 ‘자격 유지’를 위한 지출로 경제효과를 가질 수 없는 ‘매몰비용’이다. 투자를 독려해도 모자랄 판에 엉뚱한 곳에 돈을 쓰게 한 것이다. 그리고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는 상호 충돌한다.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는 자·손자회사 지분을 높이라는 규제이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는 자·손자회사의 지분을 줄이라는 규제다. 어느 장단에 맟줘 춤을 춰야 하는 가.

‘상법일부개정안’에는 감사를 분리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이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의결권 제한은 1주1표의 자본주의 근간을 허무는 악성규제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도 하에서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연합하면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 해외 투기세력에 기업의 경영권을 공격할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는 ‘기업 내부에 적군(敵軍)이 들어오는 격’이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 방어벽을 허무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의결권제한과 소수주주의 권리신장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해외투기자본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법안인 것이다.

다중대표소송제도 역시 문제가 많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자회사 이사가 임무 해태 등으로 자회사에 손해를 입혔을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춘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지주회사(또는 모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면 그룹경영 전체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O 에필로그 문재인정부는 반(反)자유주의 정부이다. 철지난 이념에 경도되어 자신들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독선적 정권이다. 권력 장악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경쟁을 통한 규율은 사장(死藏)될 위기에 처해있다.

김종인은 이 같은 상황에서 “이제 국민의힘을 보고 보수정당이란 소리 하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지키기 위해선 변해야 하는데 지금 보수는 진짜 보수가 뭔지를 모른다”고 했다. 보수의 색깔을 빼는 것이 변하는 것인 가. 창조적 실용을 주창해 실패한 이명박 정부가 오버랩된다. ‘유권자 요구에 맞춰 정권을 가져오겠다’는 발상은 치명적 인식오류이다. 정권을 되찾아 오려면 이념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규제완화, 노동개혁 등을 통해 “관료·노조 등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 권력을 시장에 돌려주는 경제운영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없이는”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을 기약할 수 없다. 정치권이 움켜쥔 경제 권력을 놓는 것이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김종인이 주장하는 재벌규제 일변도의 경제민주화로는 청년실업과 일자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국민의짐이 되는 길을 가고 있다. 보수와 자유를 부끄러워해서는 절대로 재집권할 수 없다. 수장을 잘 뽑아야 한다. 그리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통탄할 일이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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