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율 시민기자
김원율 시민기자

마르크스와 사탄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랑이라는 추상적(抽象的)인 관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인민이 자기 몫을 찾아오겠다는 정의감을 무력화시킨다. 그러므로 사랑과 용서를 주장하는 종교야말로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 부자의 자선이야말로 인민이 각자 자신의 몫을 찾아오면 전혀 불필요하며 부자가 착취의 대상인 가난한 자의 고혈을 빤 후, 그 일부를 단지 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자는 자선을 한 대가로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덜고 인민의 정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야 말로 20세기 세상 사람들을 질곡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사탄이다.

이는 인간이 오로지 빵 만으로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인간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배려와 온정, 사랑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풍요로운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사회에서 사랑과 배려,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공동체란 존재하지 아니한다. 사탄은 인간 사회에 증오심과 질투심, 적개심을 불어넣음으로서 무산계급이 통제하는 사회를 유토피아의 형태로 제시한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이 선해지지 않고서 인간이 사회구조나 체계만으로서 더불어 사는 사회, 사람냄새가 나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한갓 구두선(口頭禪)이며 거대한 사기(詐欺)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권력을 장악한 인간들이 하나같이 내로남불의 전형이며 위선과 거짓으로 일관하는 것을 볼 때 이는 명백한 진리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태어났다

하느님은 인간의 육신을 진흙으로 빚은 다음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영혼을 창조하였고 이로써 형상(形象)과 성상(性象)이 모두 하느님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였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였음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과 악을 선택하여 행함을 뜻한다. 인조인간이나 기계는 감정이나 의지가 없으므로 또한 사랑도 할 수 없다. 사랑은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당시 산업혁명 후 도시빈민과 공장 노동자등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노동착취 등의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부르주와를 타도함으로써 새로운 예루살렘이 도래하리라 예언하였다. 그리하여 러시아에서 노동자와 농노가 주축이 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여 그가 말한 유토피아가 세워지는 듯 했으나, 종국에 그의 혁명은 비참한 파괴만을 남기고 실패하였다.

왜 그랬을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으나 마르크스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였다. 그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무슨 말인가? 인간은 자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이 자유라는 것이 하느님을 향한 것, 선을 향한 것일 수도 있으나 정반대로 무한대의 악을 추구하는 자유도 될 수 있음을 몰랐다. 이념에 몰입한 인간들이 이념의 성취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얼마나 인정이 없고 뻔뻔한 가는 문재인이란 인간을 보면 알 수 있다.

재화의 공유라는 허울 좋은 명분의 달성을 위하여 모든 정치권력을 한줌도 안 되는 인간들이 독점한 국가,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박탈된 사회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몰고 오는 것인지 마르크스는 알지 못하였다. 재화의 균등배분,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전제였다. 개인은 창의와 열정으로, 자본가 정신으로 일할 때 남보다 행복한 생활을 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목표로 자신의 두뇌, 체력을 쏟아 일한다. 그리고 한 개인의 재산형성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한이 서리고 많은 사연을 가지는지 모른다. 이를 모두 무시하고 개인이 가진 것을 전부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내어놓으라고 하니 반발을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이러한 반혁명분자, 반동분자는 모두 인간개조캠프에서 굶주림과 구타로 죽어갈 수밖에 없다. 러시아, 중국, 북한에서 대량살육이 일어난 이유이다.

그러니 공산주의는 성인(聖人)을 위한 제도이고 자본주의는 죄인(罪人)을 위한 제도라고 일컫는다. 성인은 우리 사회에 몇 명 되지 않으나 인간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다. 남보다 더 가지려하고 더 누리려 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한다. 타인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몽땅 내어놓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공산주의는 동물농장의 사회이다

이 세상에 지고지선의 체제가 있더라도 그 체제를 운영하는 사람의 마음이 선해지지 않으면 지고지선의 체제라도 폭압적이고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인간이라도 권력의 정점에 서는 순간 권력이 주는 마성(魔性)에 휩쓸리고 자신의 아집과 독선으로 나라를 이끌고 가서 종국에는 나라를 파멸시키기 마련이다.

문재인이 집권초기부터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 민주주의로 헌법 개정을 밀어 붙인 것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염두에 둔 것이다. 김정은 일가를 제외하고 북한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광장에 모인 인민은 유일신교 주체교의 교주에 열광하고 배급에 목을 매고 있다. 한국도 점점 북한을 닮고 또 사회주의국가 베네수엘라를 닮아가고 있다. 국가 재정을 국민에게 푼돈 나누어주는 데 탕진해도 국민은 종만 울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처럼 몇 푼 보조금에 주권(主權)을 팔고 집권여당에 표를 몰아주고 있다.

집권당은 인민민주주의의 완성단계에 있다고 흥분하여 철면피 같은 뻔뻔스러운 행각을 계속하고 있다. 나치의 게슈타포나 북의 보위부같은 조직이 이제 사법체제를 장악할 것이고 국민은 생각 없이 먹방TV, 3류 연예인의 토크쇼나 감상하며 현실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제외할 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불어 넣어준 영혼의 작용으로서 사랑과 배려는 사라지고 이 사회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사회, 돼지 나폴레옹의 감시아래 있는 동물농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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