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지 못하게 몰래 드나드는 곳, 보통 사람들은 이걸 ‘개구멍’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 전반에 이런 개구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주류로 올라선 소위 민주화세대는 개구멍을 괴상하게 만든다. 개가 앞발로 개구멍을 판다면, 이들은 세 치의 혓바닥으로 개구멍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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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는 공정(公正)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조국 사태’는 이들의 공정이 허상에 불과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상당수 국민들은 특혜와 불법의혹으로 점철된 조국 자녀 입시를 보며 분노했다.

반면 여권인사들은 ‘조국 감싸기’에 나섰다. 이철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분들에게 열려 있는 기회”라고 했다. 《조국백서》의 공저자 최민희는 “초엘리트 사이 맺은 인간관계 등으로 일반 서민이 갖지 못한 관계 속에서 불법적이진 않지만 어떤 특혜가 있을 수 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말을 참 완곡하게도 둘러댄다. 떳떳하지 못하게 몰래 드나드는 곳, 보통 사람들은 이걸 ‘개구멍’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 전반에 이런 개구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주류로 올라선 소위 민주화세대는 개구멍을 괴상하게 만든다. 개가 앞발로 개구멍을 판다면, 이들은 세 치의 혓바닥으로 개구멍을 판다.

한국 대학 입시의 흑역사라고 불릴 만한 이해찬 세대를 보자. 암기 위주 교육이 문제라는 둥, 주입식 교육을 탈피해야 한다는 둥, 하나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면서 다양한 전형을 만들었다. 수험에 지친 한국 사회에 솔깃한 제안이었다. 이후 수시 전형 비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제도가 복잡해지면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서민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는 입시 전형에도 ‘민주화 운동 관련자’를 끼워 넣었다. 이철희 전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분들 자녀에게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지위’란 운동 경력과 운동권 네트워크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공공의대는 더 나아갔다. 시민단체가 대놓고 학생 선발에 영향을 행사하겠단다. 한전공대는 시험 대신 캠프를 열어 학생을 뽑겠다고 했다. 이들은 조국 사태를 통해 특이한 교훈을 얻었던 것 같다. 특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혜를 제도화하겠다고 말이다.

민주화 세대가 파놓은 개구멍이 국가에 기생을 넘어 국가를 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표적으로 탈원전과 태양광이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근간이다. 이들은 후쿠시마 사고를 핑계 삼아 생태, 환경, 안전을 외치며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빈 공간을 태양광 사업으로 치고 들어왔다. 고려대 삼민투(三民鬪,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의 약칭으로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산하 학생 운동 조직) 출신 허인회는 감사원으로부터 태양광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혜를 입었다고 지적 받았다.

과거에도 국가 정책에 기생하는 여러 비리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 기간산업을 해체하면서 착복했던 사례가 있었나. 또한 그 착복을 그럴싸한 정의로 포장했던 뻔뻔함이 있었나. 나라를 외국에 팔아넘긴 것만이 ‘매국’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출세와 화폐로 교환한 것 역시 ‘매국’이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시민사회 사이의 유착도 심각하다. 시민단체는 협동·자치·연대·평등·마을·문화·로컬 등등 온갖 달콤한 말을 속삭이면서 사회적 기업, 마을공동체, 지역 문화행사 등을 내걸고 혈세를 축내고 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강물을 팔아먹었다면 이들은 말을 팔아먹는 중이다.

아름다운 말은 듣기는 좋아도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 투입된 예산이 어떤 효과를 냈는지에 대한 검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사업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인 시민단체 용돈벌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민주당이 지방의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견제도 할 수 없다.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의 폐해는 단순 혈세낭비를 넘어선다. 지방자치단체의 급식 위탁 사업이 대표적이다. 원래 유치원, 어린이집은 주변 마트, 청과물상, 정육점에서 먹거리를 구매했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사회적 기업에게 급식을 위탁하면 시민단체가 먹거리 유통망을 독점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다. 즉 시민단체의 발호(跋扈)가 시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부터 모든 권력은 비리를 저질렀다. 그러나 신주류로 불리는 민주화세대는 앞 세대와 여러모로 다르다.

첫째, 앞 세대가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면, 이들은 시스템 자체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꿔버린다. 그런 점에서 특권과 반칙을 없애겠다는 이들의 공언은 상당부분 사실이다. 자신의 특권과 반칙을 법과 제도로 보장해버렸기 때문이다.

둘째, 전문가 집단에 대한 증오를 자극한다. 원자력 종사자를 ‘핵(核)피아’(핵과 마피아의 합성어)로, 의사를 ‘기득권’으로 낙인찍어 악마화했다. 대신 자신들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만들겠다고,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시키겠다고, 지역사회의 자치와 협동, 공동체적 가치를 심어주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자기의 새로운 특권을 대단한 명분처럼 포장한다.

셋째, 전문가 영역을 축소시키면서 그 빈 자리를 당파적 인물로 채운다. 서울시는 에너지 시책(施策)을 종합적으로 마련하는 에너지정책위원회에 방송인 김미화, 작가 공지영,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등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 4년 만에 이런 위원회를 무려 62개나 신설했다. ‘전문분야’를 ‘정무분야’로 대치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세대가 그 어떤 언어로 정책 명분을 치장하더라도 그 본질은 하나다. 의료공공성, 학생선발의 다양성, 신재생에너지, 사회적 기업, 마을공동체, 친환경급식의 원래 이름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이것은 개구멍이다. 개구멍이 법과 제도로 확고해진 사회, 우리는 이것을 신분사회라고 부른다.

민주화 세대는 젊은 시절 줄기차게 ‘혁명’을 떠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외친 혁명이란 결국 ‘역성혁명’으로 귀결되어 가는 중이다. 민주화세대의 꿈은 봉건왕조의 지배층이었을 뿐이다. 민주화세대라는 말도 아깝다. 저들은 전근대를 열망하는 ‘개구멍세대’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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