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양아치와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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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9.02 14:26:07
  • 최종수정 2020.09.03 09:38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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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까지 야간통행금지라는 게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는 제도였는데 없어지고서야 알았다. 우리가 얼마나 답답한 생활을 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네 시간을 빼앗기고 살았는지. 통행금지 직전인 23시 무렵에는 귀가하려는 사람들로 택시비가 따따블까지 올라갔고 대안이 숙박업소뿐인 데이트 족들은 길거리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심야에 아픈 사람이라도 생기면 파출소로 뛰어야했다. 경찰이 119를 불러주면 환자와 가족들은 병원을 가릴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감사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이없고 웃기는 일인가. 하루의 무려 6분의 1을 강탈당하고도 우리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었고 의례 그러려니 당연시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게 자유다. 욕구를 추구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없고 다만 그 책임만 다하면 되는 것, 이제는 제약이 거의 없어 이념으로 주장해봐야 도무지 와 닿지 않는 공기 같은 것이 바로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중한 자유를 그로부터 40년 만에 위협받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계엄이다. 코로나에 대한 경계와 방역의 중요성에는 100%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방역을 핑계 삼아 이 정권이 벌이는 짓은 ‘자의적 해석에 따른 계엄’이라는 비판을 비껴가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지 말입니다

이번 주는 이른바 ‘천만 시민 멈춤 주간’이다. 수도권 음식점과 제과점의 경우 밤 9시부터는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다. 헬스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등 실내체육시설은 운영 아예 중단이다. 요양시설은 면회 금지에 버스도 야간에는 적게 다닌다. 이 일주일 간 우리는 자유를 반납해야 한다. 전 세계가 겪는 고통이고 우리나라도 심각해질 수 있으니 토 달지도 따져 묻지도 않고 그저 정부 시책을 따르겠다는 국민들과 자영업자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은 착한 걸까. 다 이상하지만 대표적으로 딱 한 가지만 묻자. 수도권 음식점은 밤 9시부터는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9시 이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다가 그 시간부터 깨서 활동이라도 한다는 얘기인가. 9시 이전까지 술 마시며 침 튀겨가며 말해도 안전하고 이후부터는 불안하다는 말인가. 이유를 대라. 근거를 대라. 다른 행정명령도 다 마찬가지다. 죄다 자의적이고 즉흥적이다. 체온 체크하고 마스크 쓰고 거리 두고 실내에 앉는 것이 9시 전 음식점보다 더 위험한가. 말이 안 된다.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섬세함 같은 건 하나도 없다. 자유? 그럼 자유 찾다가 죽을래? 따위의 겁박만이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방역이 중요하긴 하지만 감염 병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근거도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정명령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실외에서까지 마스크를 착용하는 건 과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마스크 정책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무조건 착용이다.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보장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왠지 핑계를 만들려는 수작으로 보인다.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면 이제는 동네 산책 나갈 때도 마스크 안 쓰기 어렵다. 엄청난 공세에 다들 휘둘려 이제는 민간이 민간을 통제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대통령이 개신교 목사들과 간담회를 했을 때 목사 한 분이 종교의 자유를 너무 쉽게 ‘공권력’으로 제한할 수 있고 예배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서 크게 놀랐다고 했는데 이 목사님은 너무 늦게 놀란 것이다. 이 정부는 헌법에서도 ‘자유’를 빼고 싶어 하는 자유 알레르기 환자다. 자유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그래서 침해라는 생각도 전혀 안 드는 분들인 것이다.

생활 속의 파시즘

꼭 무솔리니처럼 검은 셔츠 입고 깡패처럼 로마로 진군해야 파시즘이 아니다. 히틀러처럼 사냥개 으르렁대듯 짖어대야 파시즘이 아니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시즘도 있다는 걸. 다른 점? 앞의 것이 몽둥이로 뒤통수 갈기듯 한 방으로 승부하지만 뒤의 것은 가랑비에 젖듯 사람을 천천히 마비시키고 옭아맨다. 역사적 연원으로 따져 파시즘을 볼셰비키에 대한 반동으로만 이해하기 쉬운데 정확히 말하자면 파시즘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이성이라는 자유주의 신념에 대한 부정이다. 물론 이중에 가장 앞서는 것은 자유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나라인가. 아시다시피 헌법 제 2장은 권리와 의무의 장이다. 39조나 되는 조항 중 현재 훼손되지 않는 조항이 몇 개나 되는가. 종교의 자유는 안녕한가.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자유는 엉망이고 통제는 일상이다. 국민의 일상을 멋대로 통제하는 나라가 정상인가. 민간영역에서 활동하는 자유로운 개인 의사들에게 대통령이 명령하고 통제하는 나라가 정상인가. 그리고 통제의 방식은 왜 이리 고압적인가. 권고도 아니고 무려 ‘명령’이다. 여기가 군대니. 왜 멋대로 명령이니.

부역자들 혹은 양아치들

파시즘은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꼭 들어가야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체제 내 야당의 협조다. 이 야당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야만에 호응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을 때 비로소 파시즘은 완성된다. 8.15 광화문 집회와 관련된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발언 몇 개만 추려보자. “공동선에 반하는 무모한 일을 용서할 수 없으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 당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과잉 행동으로 손해 보는 게 있다. 앞으로 더욱 확실하고 명확하게 선을 그을 것이다.” 8.15 집회가 어떤 집회였는가. 3권 분립 망가뜨리는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나온 집회였다. 국민의 자유를 누르고 밟아서 나온 집회였다. 부동산 세금으로 피를 말리고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해 사람들이 뛰쳐나온 집회였다. 당신네들이 안 해서, 책무를 회피해서 나온 집회라는 얘기다. 전광훈 목사가 잘못한 것은 마스크 부실 착용 하나 뿐이었다. 여기다 대고 선을 그으시겠다고? 이 집회를 공동선에 반하는 무모한 일로 몰아 정권에 면죄부를 주시겠다고? 댁들이 하도 놀고먹어 할 일을 대신 했더니 이젠 이런 소리까지 태연하게 하신다. 그리고 선은 국민들이 당신네들한테 벌써 그었다. 이걸 댁들만 모른다. 이해는 한다. 그 어떤 일도, 절대로 결사적으로 하지 않아야 지지율이 올라가는 가련한 운명인 것을. 싸워서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 싸워서 지지율을 올리는 비굴한 존재라는 것을. 다 감안하고 봐줄 테니까 입은 좀 그만 놀리시면 좋겠다. 파시즘의 최종적 부역자라는 타이틀을 안기도 버거울 텐데 입방정 떤 죄과까지 떠안으려면 체력이 되시겠나. 가뜩이나 헬스장도 문을 닫은 판에.

자유가 사라지는 풍경

우남은 건국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정체政體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영훈 선생은 이렇게 멋지게 바꿨다. “건국의 의미는 자유인의 공화국 성립” 이렇게 자유는 70년 전 우리가 그것을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짧은 시간 우리와 함께 하다가 다시 멀어지는 중이다. 자유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자유를 누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반발과 저항이 너무 극심하다. 그래서 조금씩 사라진다. 오늘은 이걸 양보하고 내일은 저걸 양보하는 동안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손 안에 남은 자유가 얼마 없구나. 자유는 유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그 공작을 하는 것은 저들과 저들의 파트너 하수인이고 그걸 결사적으로 막는 것은 바로 우리의 할 일이다. 합리적인 저항이 필요한 시기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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