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는 한국인들
남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생각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미국에 갔을 때였다. 삼거리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없을 때 우리와는 낯선 광경이 벌어진다. 각 도로에서 오던 차들은 모두 일단 멈춘 다음 가장 먼저 교차로에 왔던 차가 진행하고 그다음 교차로에 도달해 멈췄던 차량이 진행한다. 1-2-3-1-2-3 이렇게 순서대로 착착 진행하여 통과하는데, 깜박 누가 먼저 교차로에 와서 섰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서로 잠깐 눈치 보다가 (내가 먼저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량에게 먼저 가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다시 순서가 정해지면 다시 1-2-3-1-2-3 순서로 차량이 진행한다.

삼거리 중에 한쪽 차로는 아예 차가 없고 다른 쪽 차로는 두어 대 있으며 나머지 차로는 차량이 죽 늘어서 있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두어 대 먼저 빨리 보내고 나머지 차로 차량들이 줄줄이 한 번에 빠져나가는 게 효율적이라거나, 다수가 되었다면 그 다수의 이익이 더 중요하니 두어 대 차량은 기다려야 하고 나머지 많은 차량이 우선권이 있다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일까.

어쨌든 경험적으로 우리나라 삼거리에서는 차량컨트롤이 공격적이지 않거나 안전운행을 중시하는 운전자가 있으면 그 차 뒤에 있는 차량은 손해를 본다. 다른 차로의 운전자는 덜 공격적인 운전자가 서행하는 순간 바로 자신의 차량을 교차로에 진입시키고 그렇게 한 번 진입하면 뒤의 차량들이 바싹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진행을 한다. 다른 차로의 차량이 교차로를 벗어나는 기회가 오는 때는 이쪽에서도 공격적이지 않거나 안전운행을 중시하는 바보(?)운전자가 나타날 때뿐이다.

암튼 미국의 거리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슬슬 서행하다가 눈치를 보며 지나가는 습관에서 일단 무조건 멈춘 다음에 순서에 맞춰서 지나가는 버릇이 몸에 밸 때까지 일주일은 걸렸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배와 차를 타고 가다 나는 불쑥 물었다. “이거 도로교통법에 있는 규칙인가요, 어기면 형사처벌 하나요?”라고 묻자 어이없게도 선배는 “어 모르겠는데, 이게 법에 있는지 처벌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다시 내가 “이런 건 한국에선 법으로 만들어 강제하지 않으면 절대 못 받아들일 문화에요”라고 하자 선배는 “이런 문화가 없는 상태에서 법을 만들겠다 하면 미국인들은 오히려 그걸 못 받아들일 걸~”하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이게 법치주의의 본질일 것이다.

종종 법률 강의를 나갈 때 한국인들의 법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느끼곤 한다. 법률가들은(물론 요즘엔 극히 일부에 해당하지만) 법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의 마지노선을 지키는 수단으로 바라보나 대다수 국민들은 법은 으레 남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영역을 좋은(?) 법으로 규율해서 통제해야 좋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악법의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은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시민사회에서 자연스레 형성한 합리적이고 조화적인 관행이 있다 하더라도 특정 이익집단(대부분 시민단체다)이 나서서 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장하길 요구한다. 그리고 한 번의 선거에서 권력을 잡으면 미래세대까지 그 한 번의 선거 결과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법을 만들거나 바꿔도 된다는 것이 이젠 우리나라에선 상식이 되어버렸다. 더 나아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총칼로 남의 재산을 뺏는 것은 나쁘다고 하지만 총칼 대신 법으로 뺏으면 용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법은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멋지게 포장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다른 이에게서 빼앗는 것)이라 말한다.

어쨌든 그럼에도 그동안은 우리는 법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협박을 받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에서는 나오는 법마다 국민을 협박하는 법이다.

역사에 대해 조금만 이견이 있어도 처벌받아야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적폐가 되어 세금폭탄을 앉아서 맞아야 하며, 특정 기득권의 자식이 검증 없이 대학을 가고 직업을 가지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또 처벌받아야 한다. 자칫하면 죽어서도 무덤에서 끌려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 국민은 코로나로 인해 일을 안 해도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강력한 노조가 있어 회사 실적이 바닥이 나도 잘릴 위험이 없으며, 일에 열정을 쏟기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에 열정을 쏟을 수 있어 천국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특권층이 아니어도 전부가 아니라 특정한 국민 일부를 대상으로 하니까 마음대로 해도 뭐 나는 괜찮다고 안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우리들이 언제까지 적폐에서 제외될지는 궁금하다. 적폐 아니면 마르고 닳도록 칭송만 해야 하지만(요즘엔 말 한마디 잘못하면 법원에서 바로 처벌한다) 그렇게 아무리 해봐야 아무런 권력도 떨어지지 않고 ‘나으리’들만 배가 불러간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적폐로 둔갑하게 되는 국민들이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법무법인 에이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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