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모호한 기준...기업들에겐 경영상 '최대 리스크'
'통상임금 범위' 기준도 불분명...2013년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 난립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지 않는다"

지난 20일 기아자동차가 막대한 금액을 기아차 노조 소속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대법원의 논리다.

이날 대법원 1부는 기아차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기아차 노조 소속 약 300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기아차 근로자들은 2011년과 2014년에 연 700%에 이르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임금채권 청구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3년치 임금을 요구했다.

이에 법원은 2심에서 "이 사건 청구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측이 근로자에게 약 422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노조원 약 3000명에 대해서만 진행됐으며, 소송 참여자가 줄어든 비율대로 단순 계산하면 3000명에게 지급될 추가 임금은 약 500억원 내외로 추정된다.

통상임금이란 초과근로수당으로 불리는 연장, 야간, 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등을 산정하는 데 사용되는 기준임금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지급한 금액'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어, 통상임금 범위와 관련된 판결은 그동안 기업 경영에 있어 최대 리스크 중 하나로 지적되어 온 요인이다.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소송은 2013년 대법원의 모호한 정의로부터 쟁점화되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기준을 1개월 내에 지급되는 임금 등으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금품을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94643 전원합의체 판결).

나아가 정기상여금에 대해서는 '신의칙'이 적용된다고 했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좆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말한다. 이 또한 그 적용 기준이 모호해 쟁점이 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심급에 따라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모호함은 기업들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사측을 상대로 한 노조측의 추가 임금청구를 가능케했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금호타이어 등은 2013년 이후 신의칙이 핵심 쟁점이었던 통상임금 소송에서 1심과 2심의 각각 다른 판결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같은 사건임에도 심급에 따라 정반대의 판결이 선고되는 등 판결이 일관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성토해왔으나,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소송은 여전히 기업들의 최대 리스크로 남아있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따른 예외 적용을 인정하지 않아 기존의 노사 간 합의한 임금체계를 성실하게 준수한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추가적인 시간외수당을 부담하게 하는 것으로 경영계는 심히 유감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판결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하는 신의칙의 판단 근거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한 것에서부터 비롯됐다"면서 "법원은 통상임금의 신의칙 적용기준을 주로 단기적인 재무제표를 근거로 판단하고 있지만 이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전략적으로 경영을 추진해야 하는 기업의 경영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코로나19로 초유의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들도 막대한 경영·고용 위기에 처해 있지만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판결이라 국가적 차원에서 사법부 판단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마저도 든다"고 꼬집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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