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파괴하는 작업은 지금도 유치원 또는 그 이하의 아이들에게서부터 집요하게 진행중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망가지고 부서지기 전에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바로잡는 데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청년부터가 아니라 그보다 더 어린, 또 그보다 더 어린,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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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 현황을 보노라면 이런 한탄이 절로 나온다. 해묵은 얘기 같지만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의 기미가 보일 때까지는 들추고 강조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내가 실제 겪은 사례만 봐도 역사 교육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몇 년 전, 역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 왜곡에 대한 논란이 한창일 때 일선 학교 교사이던 친구가 의외의 말을 했다. 학교 밖에서는 현대사를 가지고 설왕설래하지만 정작 학교 안에서는 그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한국사를 배우는 학년의 2학기말 시험의 진도는 1894년 갑오개혁 정도에서 끝나는데 일단 시험이 끝난 후 수업 시간에는 제대로 듣는 학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어려서부터 대한민국에 대해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고 자라는 것보다는 철들기 전에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최근 또 다른 묘한 얘기를 들었다. 5학년 때 한국사를 처음 접했던 초등학교 6학년생의 말이다. 학교 역사 시간에 조선의 건국만 가르치고 바로 근현대사로 넘어가버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조선의 역사는 모두 건너뛰고 골치 아픈 내용만 배웠다는 볼멘 소리였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교사가 험담만 했다고 했다.

“그 선생님도 짜증 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돈을 떼먹은 건 잘못이잖아요.”

“그건 또 어디서 들은 얘기야?”

“네, 아무개 선생님 책에서 읽었어요.”

그 아이 입에서는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강의를 휩쓸고 있는 인기 강사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학교 담임 선생님보다, 부모님보다 그 강사의 말을 더 신뢰하는 듯했다.

언젠가 대학생들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날 참석했던 대학생들은 한결같이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 세미나의 주제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일단 그 주제가 그들의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시종일관 화난 목소리로, 혹은 비아냥거리며 발언을 이어가던 학생들 중 한 학생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공칠과삼(功七過三)’에 대한 이야기를 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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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 단결하여 힘을 모을 것을 요청했다(충남 천안시 소재 독립기념관).

“박정희는 그래도 공(功)이 조금 있지만 이승만은 공은 전혀 없고 과(過)만 있잖아요!”

너무나도 당당하고 확신에 찬 그 학생의 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는 세칭 명문 대학 재학생이었다. 대체 그 아이는 누구한테 그런 얘길 들은 것일까? 부모일까, 교사일까? 어쩌면 그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더욱 심각하게 여겨졌던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일수록 교사의 왜곡된 역사관에 더 쉽게 동화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은 어차피 교사가 무슨 말을 하든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왜곡의 피해를 덜 입게 된다. 그러니 더욱 큰일이다. 이 나라의 엘리트로 성장해야 할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관, 비뚤어진 인물관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 중심 인물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사 교과서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독립운동과 건국 과정에서의 활약보다는 4.19 때 부정 선거로 물러났다는 얘기가 더 부각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얘기보다는 10월 유신이 더 크게 다뤄지고 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에는 “장면 정부에서 시작했던”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 그 공을 희석시키고 있다. 이런 술책들은 교묘하고 철저하여 웬만해서는 집어내기도 어렵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조차도 유아용 역사 그림책을 쓰면서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서술해야 하는 부분에 이르면 조심스러워진다. 두 대통령의 얼굴을 사실화에 가깝게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게재하면서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아주 잠깐.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몽매 중에 헤매고 있던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데 앞장 선, 그리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국가의 기초를 다진 건국 대통령과 세계 최빈국까지 떨어졌던 대한민국을 세계 10위 권까지 오를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마련해준 부국 대통령의 업적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어떻게 대한민국의 아이들에게 현대사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두 대통령을 서술할 때는 한 번쯤은 고민하고 한 번쯤은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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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휘호(서울 마포구 소재 박정희기념도서관).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폄훼, 건국 시기에 대한 논란, 친일 청산 문제 등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모두 하나로 연결된 커다란 문제이다. 바로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이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부정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임을 인정받아 북한으로 나라를 합치자는 걸까? 남한에 대한민국이 아닌 전혀 새로운 나라를 다시 만들자는 걸까?

이 둘 중 하나는 아닐 것이다. 북한에 나라를 헌납하면 그 헌납한 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숙청될 것임은 역사가 분명히 말해준다. 하늘의 태양으로 여기는 지도자가 둘이어서는 안 되는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은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혀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것도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 어려움을 다시 겪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금의 번영한 나라의 위상에 편승해 그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누리는 게 더 낫다는 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왜 그들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첫째, 그런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 생기는 바로 눈앞의 이득을 위해서이다. 분위기가 안정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뭔가 끊임없이 ‘사업 거리’가 생긴다. 그 사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권이 그들의 목표일 수도 있다. 또 그 사업을 빙자하면 지금처럼 전방위로 세금을 올릴 수 있다. 결국 우리 국민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릴 것이고 국민에게서 짜낸 돈의 상당 부분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다. 그 와중에 힘을 발휘하는 쪽에 한 마디 거들면 요직이나 얼마간의 떡고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구직자’들도 양산된다.

둘째는 남이 잘 만들어놓은 것에 대한 배 아픔의 발로이다. 그래서 남이 멋지게 만들어놓은 것을 부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잔해로 뚝딱뚝딱 보수하여 대충 새로운 것을 만들어놓고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하는 심사도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은 기존에 나라를 만들고 발전시킨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자기 기만에 의한 만족감 때문에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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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 당시 중앙청에 게양했던 태극기. 대한민국은 이렇게 피 흘려 지킨 소중한 나라이다(서울 용산구 소재 전쟁기념관).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작업은 지금도 유치원 그 이하의 아이들부터 집요하게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망가지고 부서지기 전에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바로잡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청년부터가 아니라 그보다 더 어린, 또 그보다 더 어린,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대한민국을 바로잡을 미래의 아이들을 못 만나고 생을 마감하더라도 그 아이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을 심어줄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우리 대한민국은 소중한 나라이니까. 또 그게 내가 할 일이니까.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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