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라화 가치 76%나 떨어져...소득의 30% 사라져 버렸다
터키, 이란·북한·베네수엘라처럼 국제적 이단아로 변해
그래도 터키 국민은 에르도안 대통령 확고히 지지
한국도 터키와 매우 비슷한 길로 들어섰다
터키처럼 환율과 인플레 걱정하면서 살 가능성 높아
반미·반일 외교로 국제사회 외톨이돼도 국내에선 잘 한다고 박수까지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 중이다. 이 글을 쓰는 8월 17일 현재 터키리라화의 달러당 환율은 7.39로서 5.95였던 연초에 비해 19%나 가치가 떨어졌다. 원화에 빗대자면 달러당 1200원 하던 환율이 1500으로 치솟은 셈이다. 터키 중앙은행이 환율을 방어해 보려고 외환보유고를 다 털어가며 달러로 리라화를 사들였지만 국고만 바닥났을 뿐 환율 급등을 막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외채를 갚기도 어려워져서 터키에 돈을 빌려준 유럽의 은행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인데 그 때와 비교하면 무려 76%나 가치가 떨어졌다. 원화로 말하자면 달러당 1200원하던 환율이 5,000원으로 오른 격이다.

가치의 하락은 소득의 감소로 이어진다. 2013년 12,500달러이던 1인당 GDP 가 2019년에는 9,000 달러로 줄었다. 소득의 30%가 사라져 버렸다.

그 와중에 터키는 금 사재기에 나섰다. 작년까지 최대의 금 매입자였던 러시아가 유가하락으로 금매입을 중단하자 그 자리를 터키가 메웠다. 미국과 사이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경제 제재로 터키의 달러 거래를 중단시킬 경우 달러 대신 금을 주고 물건을 사기 위함이다.

주변국들과의 적대관계에도 불을 지르고 있다. 동지중해에서 석유 및 가스 탐사를 시작함으로써 같은 해역에 권리를 주장해 온 그리스, 키프러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프랑스와 연합군을 만들어 해상 군사대치까지 벌이기에 이르렀다. 중동 지역에서는 그나마 가장 현대적이고 안정적이었던 터키가 이제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처럼 국제적인 이단아로 변해가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터키 국민들의 태도다. 이 모든 소동을 벌이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해 터키 국민은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에로도안의 지지율은 52.5%로 경쟁자인 무하렘인제 의원의 30.7%보다 무려 21.8%나 더 높았다. 2020년 3월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8%가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에르도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이처럼 확고한만큼 터키는 이란, 북한 같은 나라로 전락해 갈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국이 터키와 매우 비슷한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떤 점이 그런지 찬찬히 따져 보자.

첫째는 차입이다. 2003년 에르도안은 총리가 되자 경제자유화와 더불어 해외에서 많은 돈을 차입했다. 문제는 그 돈이 쓰인 용도였다. 가장 많이 투자된 것이 쇼핑센터를 지어대는 일이었다. 전국에 쇼핑센터 건설이 늘어나는 만큼 경제성장률도 치솟았다. 하지만 종말이 정해진 성장이었다. 투자가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그것을 통해 구성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건설 과정에서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도 길러져야 하고, 공사 수주를 잘하는 비즈니스맨들도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고객, 특히 해외의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를 위해 끌어들인 빚을 갚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터키는 그렇지 못했다. 투자는 엄청나게 늘었지만 터키인들의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았다.[i] 그저 돈만 쓴 셈이다. 더 이상 빚을 끌어올 수 없게 되자 터키 경제에는 경고음이 켜졌다. 환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풀어내다 보니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지금 터키가 겪고 있는 문제다.

한국도 그런 길로 들어선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부채의 둑을 무너뜨렸다. 재난지원금이니 일자리 예산이니 하는 것은 그저 먹고 치우는 것일 뿐 그것으로 한국인의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는다. 그린뉴딜, 디지털 뉴딜 같은 사업에 170조원을 투입한다는데 이름만 요란할 가능성이 높다. 45조원을 투자한다는 혁신성장을 생각해 보라. 지난 3년간 도대체 무슨 결과가 있었는가. 그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어떤 한국인의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징후는 찾을 수 없다. 그린뉴딜, 디지털뉴딜, 도시재생 뉴딜 등등 수백조를 쏟아 붓지만 그 돈 받아 쓰는 사람은 신날 뿐, 그 뒤에는 산처럼 쌓인 국가부채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터키처럼 환율과 인플레 걱정을 하면서 살 가능성이 높다. 현 상황을 보면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하겠지만 터키도 흥청망청 돈 써서 성장률 10%를 달성하고 있을 때는 지금 같은 위기가 닥칠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는 반미 친중 외교다. 터키는 공화국으로 탄생할 때부터 친미 친서방을 표방했다. 그래서 한국처럼 미군 기지를 두어 왔고 강력한 군대를 가진 믿음직한 NATO 회원국이었다. 그런 터키에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고 터키 역시 반미 노선을 걷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쿠르드족 문제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미국은 시리아 내전에서 테러 단체인 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족 반군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터키 입장에서는 쿠르드족의 힘이 강해질 경우 자국 내 쿠르드족이 독립할 수도 있기 때문에 쿠르드족 반군을 쳐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터키는 미국과 충돌하게 되었고 터키에 머물면서 쿠르드족을 도와준 미국인 목사를 구금하게 되었다. 미국은 석방을 요구하며 터키에 경제제재를 가했다. 안 그래도 상승을 거듭하던 환율이 급격히 치솟았고 터키의 경제위기는 심각해졌다. 2018년의 일이다. 터키가 러시아산 미사일 도입을 강행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터키는 미국 대신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국인 것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터키는 제2의 이란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길로 들어섰다. 중국과의 결별을 선택한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미국과 중국 중에서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한발 코로나는 세계를 더욱 친중과 반중 진영으로 갈라 놓고 있다. 한국은 미국 진영이 아닌 듯한 행보를 보인다. 지난 7월 1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영국 등 서방 27개국은 중국의 홍콩국가안전법과 위구르 자치구 인권 탄압 등에 대해서 비판 성명을 냈다. 영국, 일본, 독일 등 웬만한 선진국들은 모두 여기에 서명했다. 한국은 참가하지 않았다. 또 미국 국무부가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들을 받기 위해 동맹국들을 연결해서 경제번영네트워크를 구성하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한국은 답이 없다. 중국 화웨이를 축출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끼리의 5G 통신망을 구성하자며 영국이 제안한 소위 D10 (Democracy 10) 연합체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서방이 제안한 연합체 중 문재인 정부가 확실하게 수락한 것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G7+ 모임이다. 기존 G7에 한국, 러시아, 인도를 추가한 모임이다.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 회의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고 걱정이다. 자칫하면 한국이 반미-친중 국가임을 선언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벌써 중국은 한국, 러시아 등이 미국편에 서지 않을 거라며 선수를 쳤다. 미국편에 가담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인 셈이다.

터키는 주변국들, 특히 그리스 및 프랑스와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직접적 발단은 터키가 동지중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탐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터키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그리스와 키프러스가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과 겹치는 해역에서의 탐사다. 당연히 충돌이 예상되었던 지역인데도 터키가 도발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는 프랑스와 연합해서 전함과 전투기를 파견했고 터키와 대치하는 중이다. 이처럼 터키는 점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가는 데 터키 국민은 오토만 제국의 영광이 되살아 난다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터키가 그리스, 프랑스, 키프러스와의 대치를 통해 지지를 얻어내듯이 문재인 정권은 일본을 적으로 삼아 국민을 결속시켜왔다. 일본 기업의 한국내 자산 몰수, 지소미아 폐기 시도 등을 거치면서 일본을 거의 적국으로 만들었다. 그럴수록 정권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지와 결속력은 강해지는 듯하다.

터키의 뿌리인 오토만 제국은 일종의 신정국가였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다. 1923년 터키의 국부인 케말 아타튀르크는 건국을 하면서 신정이 아니라 서구식 세속 국가로 만들었다. 3권 분립과 법치주의를 확립했고 이슬람 성직자들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했다. 터키 국민들도 지도자의 결정에 따랐지만 서구식 세속국가는 이슬람 신도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현재의 지도자 에르도안은 그런 국민의 마음을 읽었고 터키를 신정국가로 만들어가고 있다. 박물관으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던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한 것은 그것을 위한 큰 걸음으로 보인다. 서방 국가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터키 국민들을 환호했다.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터키와 비슷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했다. 보통선거와 법치주의, 시장경제를 선언했다. 터키인들이 그랬듯이 대다수의 한국인도 얼떨결에 그 체제를 받아들였다. 이승만과 미국은 한국인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안겼고, 박정희는 자기 책임주의와 개방경제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그 자유와 책임과 개방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의문이다. 자유는 좋지만 책임은 싫었다. 개방보다는 보호가 좋았다. 힘겹게 내 힘만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나라님이 나를 보살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버릴 수 없었다. 문재인은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겠다며 그들의 어버이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은 그 대통령이 자기 삶을 책임져만 준다면 반대파에게 무슨 탄압을 해도 지지하는 지경이 되었다. 현재 터키의 모습은 머지 않아 한국의 것이 될 것 같다.

한국인과 터키인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도 있다. 미국을 바라보는 태도다. 터키 국민은 매우 반미적이다. 2014년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터키인 중 미국에 대해 우호적이라 답한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73%는 우호적이지 않다고 답했다.[i] 반면 한국인은 매우 친미적이다. 2019년 아산재단이 1000명 대상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한국 정부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78%가 미국이라고 답했다.[ii] 그만큼 한국인은 미국에 대해서 우호적 태도를 가졌다. 문제는 행동이다. 문재인이 반미적 행보를 취할 때 그 78%가 안된다며 거리로 나설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재난지원금 몇 푼 쥐어 주면 그냥 입을 닫고 조용히 표를 주게 될까. 돈 몇 푼에 철학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한국이 터키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낱 같은 희망을 품어 본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서강대 겸임교수)

[i] 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14/07/30/turks-divided-on-erdogan-and-the-countrys-direction/

[ii] www.thechicagocouncil.org/publication/cooperation-and-hedging-comparing-us-and-south-korean-views-china

[i] Why Can't Turkey Stop Its Economic Nose-Dive? By Constantine Courcoulas, Onur Ant, and Tugce Ozsoy,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8-08-08/why-can-t-turkey-stop-its-economic-nose-dive-quicktake?sref=9fHdl3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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