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초기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현충원 묘 세워져
전쟁 끝나고 3년 뒤 복귀...철거 않고 방치하다가 뒤늦게 파묘
언론보도 통해 행정착오 파악...현충원 부실 관리 문제 드러나
박경석, 백선엽 6·25 무용 폄훼...친일 시비붙여 현충원 안장도 반대

박경석 예비역 준장의 사진과 그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던 자신의 가묘를 지켜보는 모습./연합뉴스, SNS 등 

국립서울현충원이 고(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6·25 전투 무용을 폄훼하던 박경석(88) 예비역 준장의 현충원 묘역을 파낸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서울현충원은 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국군묘지에 있던 박 장군의 가묘(假墓)를 철거했다. 육사 생도 2기 출신인 그는 6·25 전쟁 초기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현충원에 묘가 세워졌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3년 뒤인 1956년 복귀하면서 묘의 존속 여부 논란이 일어났다.

서울현충원은 “6·25 전쟁 후 전사자 파악의 행정착오 등으로 생존해 있는 귀하의 묘비가 조성돼 왔음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에 관련 법규에 따라 묘비를 철거하고 동 묘에 타 전사 유해 안장 여부 등을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박 장군의 묘비에 대해 “언론보도 사실로 처음 알게 됐고 이에 따라 국가보훈처 등을 통해 귀하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이에 따라 “60년 넘도록 가짜 묘가 국민 세금으로 관리돼 온 부실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립서울현충원이 박경석 예비역 준장의 가묘를 철거하겠다고 알린 통지서./박경석 예비역 준장의 개인 홈페이지

그간 박 장군이 어디서 어떻게 포로 생활을 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일각에선 “전투 중 수류탄 파편을 맞아 몸의 왼편을 다친 후 인민군 포로가 됐고, 인민군 10사단에 포로로 잡혀 심문받다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됐다”고 주장한다.

한편 ‘살아 돌아왔으면 행정 착오로 세워진 묘에 대해 자진해서 철거 요청하는 게 수순’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박 준장은 간혹 서울현충원에 들러 자신의 묘를 보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군은 지난달 10일 별세한 백 장군이 23세 청년 때 일본군 간도특설대에 들어가 2년여 복무한 것이 친일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백 장군이 복무한 1943년 2월 당시 간도특설대는 만주에서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을 퇴치한 후 남아 있던 도적떼를 소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동북항일연군조차 항일운동을 통해 중국을 구하기 위한 공산당 산하 빨치산 부대로 확인됐다. 이들이 조선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싸운 조선독립군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나온 바 없다.

아울러 박 장군은 백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도 반대하면서 “내가 후손이라면 극구 만류하겠다. (백 장군이 현충원 안장되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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